왜 우리나라에서 애를 키워야 할까.

in kr •  9 months ago 

연휴를 맞아 한국에 갔을 때의 일이다.

천진난만하게 잘 지내던 아들이 갑자기 아팠다.
저녁 내내 아프다 그러더니 결국 새벽에는 자지러지게 울고 난리가 났다. 속상하거나 자존심 상할 때 또는 슬플 때 외 아프다는 이유로는 웬만해선 우는 일이 없기에 바로 응급실로 향했다.

여기서 실수를 한 게,
119를 부르지 않고 자차로 이동한 것이다.

당시 경기 남부에 있었다.
따라서 소아 진료가 가능한 응급실 병원 3개가 타겟 레인지에 들어왔다. 그것도 일단 출발하면서 뒷자리에서 와이프가 검색해서 알게 됐다.

소아는 아무 병원 응급실이나 가면 안 되는구나.

여튼 용인 세브란스 병원, 아주대 병원, 분당 서울대 병원

3곳의 거리가 대략 비슷했다.
짧은 시간에 판단 하기로, 서울대 > 아주대 > 세브란스 병원 순으로 신호등 수가 적다고 판단했고, 고속화 도로까지 있어 용인 세브란스 병원이 제일 빠르겠다. 그렇게 달렸다.

예상대로 빠르게 도착했다.
응급실 입구에서 보안 요원이 근무한다.

요원 : 응급실 오신 거세요?
헬린 : 네. 아이가 이래저래 아픕니다.

요원 : 외상은 없죠?
헬린 : 네. 외상은 없습니다.

요원 : 외상이 없으시면 여기서는 진료가 안 됩니다.
헬린 : ??

요원 : 네. 외상이 없는 소아는 119에 전화하셔서 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알아보셔야 합니다.
헬린 : ..

그래. 그렇다고 하니 인정해야지.
119에 전화를 했다.

헬린 : 이렇다는데, 그런 건가요?
119 : 네, 맞습니다. 아주대 병원이나 분당 서울대 병원 가셔야 합니다.
헬린 : 네 감사합니다.

어쩌겠나.
달려야지.

분당 내로 들어가면 신호가 많고 대기 시간이 기니 아주대 병원으로 달린다. 가는 내내 아파하는 아이의 울음을 귓전으로 듣고 있자니, 나 때문에 아픈 거 같아 죄책감이 든다.

새벽 1시 40분이 됐지만,
그래도 도착했다.

접수를 한다.

접수 : 오래 기다리셔야 할 수도 있습니다.
헬린 : 네 기다리겠습니다. 얼마나 걸릴까요?

접수 : 00이는 4번 째인데, 더 위중한 환자가 오면 순서가 밀릴 수 있습니다.
헬린 : 네 그건 당연하죠.
접수 : 네 밀리지 않으면 8시간 정도 걸리실 수 있습니다.
헬린 : ..

/
솔직한 심정.
우리나라 큰일이다 싶습니다.

똑닥으로 진행되는 소아과 진료 예약 전쟁을 재작년에 처음 경험해보고 어이가 없었는데, 이번에 소아 응급 의료 체계까지 경험하고 나니 기가 찹니다. 애 어떻게들 키우시나요.

아니 왜 우리나라에서 애를 키워야 하는가라는 의문부터 듭니다.

호치민에서 새벽 1시 경 아이 중이염이 심해 응급실에 갔을 때입니다.
도착하는 택시 전조등 불 빛 보고 이미 간호사가 마중을 나오고 의사는 빼꼼 고개 들어 응급실 문 너머로 벌써 지켜보던 얼굴이 기억납니다.

아내는 접수,
저는 의사에게 설명.

도착부터 진료 시작까지 2분이 채 안 걸렸습니다.

/
아주대 병원에서 대기하던 시간은 참 슬펐습니다.
우리나라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 싶었어요.

심지어 의사들이 그만두니 마니 하던 때도 아니라죠.
지금은 얼마나 상황이 더 심각할까요.

그저 우리나라가 슬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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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그래도 우리나라 의료서비스 좋은 줄 알았는데 'ㅁ';;;

소아과 의사들의 부족때문인건가??
아님 응급실 체계의 개선이 필요한건가??

왜 그런거지... 궁금허네 ㅎㅎ

형..
태부족이야..
특히 소아과는 의사가 없어...
진짜 심각하더라. 나도 아이 생기기 전엔 이 정도로 심각한지 전혀 몰랐어.

주변 지인들에게 듣고도 저도 별로 실감을 못 했는데…참 심각하네요.

외상이 있어야만 진료가 가능하다는 말 듣고 잠깐 생각이 멈추더라고요. 응급실에서 이게 무슨 말이야.. 싶었네요ㅠ

8시간은 그냥 탄식만 나오고. 에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