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파치노의 길

in kr •  3 years ago 

탱고 레슨을 받을 때마다 이미지를 떠올린다. 영화 '여인의 향기'의 알파치노. 그렇게 멋들어지게 젊은 여성의 아름다운 바디라인을 돋보이게 하는 그 중후한 움직임.

그러나 현실은 잔혹하다. 살리다, 오초 아뜨라스, 사까다 등 스페인어 용어들은 생경하고 움직임은 둔하기만 하다. 게다가 파트너의 동작 방향을 리드함과 동시에 다른 커플들과의 충돌을 방지해야 하니, 이것은 춤이라기보다 엉거주춤이다.

오늘은 사까다를 배우다 70세쯤 되어 보이는 분과 파트너가 되었다. 파트너를 바꿔가면서 연습하기 때문에 피해갈 수 없는 관문이었다! 마주 잡은 왼손과 겨드랑이 아랫 부분을 잡은 오른 손에 살짝 힘을 주며 '뒤로 가세요' 신호를 해도 레이디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레이디! 어서 뒤로! 안 밀린다. 역시나 코리안 올드 레이디는 잘 버틴다! 버티며 산 삶의 에너지로 똘똘 뭉쳐 땅게로의 의도는 아랑곳없다. 별 수 없이 '그럼 오세요' 신호를 보낸다. 오지 않는다. "에구, 몸이 둔해서"

올드 레이디와 나의 합동 엉거주춤을 보다 못한 강사가 "뭐 하세요?" 하고 묻길래, 나는 괴롭힌 아이를 선생님에게 이르듯 표정을 잔뜩 구기며 말했다.

"안 움직이세요. 제가 아무리 밀어도."

일순간 플로어가 웃음 바다가 되었다. 아, 멀고도 험한 알파치노의 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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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를 배우기 전엔 이 장면의 여배우도 춤을 배워서 맞춘 것이겠지 했는데, 요즘 보니 이 배우는 정말 탱고를 모르시는 듯한 느낌…
저도 탱고 입문한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제안과 승락… 같이 잘 걷는 것조차 신호를 주고받기 힘든…탱고는 어렵네요. 그래도 화이팅해요!

아, 그 말씀이 맞습니다. 신호가 80%인 것 같네요. '교감'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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