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와 믿음의 리더십 : 마르쿠스 카토 (11)

in kr •  6 years ago  (edited)
☐ 이기는 리더, 승리하는 리더십
인내와 믿음의 리더십 : 마르쿠스 카토 (11)


카토는 로마사회에 점점 만연해가는 사치풍조를 근절하기 위해
초강력 세금폭탄을 도처에 아낌없이 무차별적으로 쏟아 부었다.

카토가 원로원에서 추방한 유명한 인물로는 집정관을 지낸 루키우스 퀸티우스가 있었다. 루키우스는 마케도니아의 필립포스 왕에게 승리를 거둔 티투스 플라미니누스의 형제이기도 했다.

루키우스가 카토에게 미운털이 박힌 이유는 사생활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루키우스는 어린아이일 때부터 애인처럼 가까이 대해온 어느 버릇없는 젊은이의 부탁을 받고는 만찬장에서 사형수를 임의로 처형한 일이 있었다. 루키우스가 당시에 비록 현직 집정관 신분이었다고는 해도 평상시에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의 생사여탈권은 오로지 나라에만 있었다. 그는 검투사 경기에서처럼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한 철부지 청년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정식으로 국법을 밟지 않고 함부로 사람의 목숨을 빼앗았다.

루키우스의 형제들은 카토가 취한 제명 조치에 강력히 반발했다. 카토는 루키우스가 과거에 벌인 불미스런 사건을 원로원에서 상세히 설명하고는 루키우스의 가족들에게도 그래도 불만이 있으면 정식으로 재판을 걸어 보라고 응수하였다. 켕기는 구석이 많았던 루키우스 가문은 더 이상 카토에게 대들지 못했다.

카토는 집정관으로 유력시되던 마닐리우스를 원로원에서 몰아내기도 했다. 죄목은 대낮에 딸 앞에서 아내를 껴안았다는 것이었다. 카토는 “나는 천둥이 칠 때만 아내와 포옹합니다”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마닐리우스 제명을 정당화했다.

그는 정적인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형제인 또 다른 루키우스로부터는 기사 계급을 박탈했다. 루키우스는 개선행진의 영광을 누린 인물이었던 까닭에 카토의 처분은 너무나 가혹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카토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과는 앙숙관계인 대 스키피오의 명성에 흠집을 낼 수 있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카토의 뒤끝 작렬은 앞서 언급했듯이 대 스키피오의 손자의 대까지도 쭉 이어졌다.

카토가 적들의 미움을 산 결정적 이유는 그가 사치를 강하게 억누른 데 있었다. 이미 로마 사회에는 과소비 풍조가 널리 만연한 터라 드러내놓고 사치를 막기는 불가능한 노릇이었다. 카토는 직접적 공격 대신 간접적 접근법을 택했다. 그는 가격이 1천 5백 드라크마를 초과하는 모든 물품들의 가치를 일괄적으로 10배로 재평가한 다음 인상된 평가액에 조응하는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사치스러운 생활풍조에 재갈을 물렸다. 비유하자면 그랜저 가진 사람들에게 벤츠 소유자들이나 맞을 법한 세금폭탄을 투하한 셈이었다.

세금폭탄을 맞더라도 호화롭게 살고 싶어 하는 자들도, 사치를 누리고 싶은데 중과세 때문에 그렇지 못하게 된 자들도 하나같이 카토를 미워했다. 인간이 남들에게 자랑하기를 바라는 물건은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일상품이 아니라 쓸모없는 사치품일 경우가 많기 마련이기 때문이었다.

카토는 그를 향한 원성에 조금도 개의치 않고 더욱 강력하게 소신을 밀어붙였다. 그는 부유한 개인들이 집과 정원을 쾌적하고 아름답게 관리하기 위해 무단으로 끌어간 수도관을 모조리 절단했다. 공공용지에 불법적으로 들어선 모든 건물들을 남김없이 철거했으며, 공유지의 임대비용을 최대한 인상했다.

그러자 티투스 플라미니누스는 카토의 반대파들을 규합해 원로원으로 하여금 카토가 공공시설을 건설하려고 조성한 예산의 집행을 모두 취소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겁 없는 호민관을 사주해 카토에게 2탈란톤의 벌금까지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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