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는 리더, 승리하는 리더십
- 인내와 믿음의 리더십 : 페리클레스 (13)
페리클레스는 우세한 병력의 스파르타를 상대로 아테네 해군의 장기인
신속한 기동력을 이용해 모택동 방식의 치고 빠지는 유격전을 구사했다.
스파르타는 페리클레스가 아테네에 팽배한 호전적 강경론의 진원지라고 생각하고는 그를 제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하였다. 그중에는 페리클레스의 외가가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성소 침범 사건에 대한 단호한 처벌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스파르타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이것은 아테네 안에서의 페리클레스의 위상만 오히려 강화시키는 역효과를 빚었다. 아테네인은 스파르타의 요구를 라케다이몬 사람들이 페리클레스를 무척이나 미워하고 무서워한다는 증거로 해석했다. 페리클레스는 스파르타가 동맹국들과 함께 아티카를 침범하자 자기의 영지를 국가에 헌납하는 것으로 민중의 신뢰에 보답했다. 사유지 헌납은 라케다이몬 군대가 다른 모든 농토와 과수원과 목초지는 황폐화시키면서 오직 그의 영지만은 파괴하지 않을 경우 발생할 수도 있는 민중의 오해와 의구심을 사전에 예방하려는 포석이기도 했다.
아르키다모스가 총사령관으로 지휘하는 스파르타와 보이오티아의 연합군은 중장보병의 숫자만 무려 6만 명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대군이었다. 페리클레스는 이 대병력에 정면으로 맞서면 승산이 희박하다고 판단하고는 성 밖의 주민들을 도시 안으로 불러들인 다음 성벽을 굳게 지키면서 장기간의 공격에 지친 적이 스스로 물러가기를 기다리는 작전을 택했다. 그는 나무는 베어내도 금방 자라나지만 백성은 한번 잃으면 다시 얻기가 쉽지 않다는 논리로 자신의 전략을 합리화했다.
성미 급한 자들, 전쟁이 길어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자들은 페리클레스의 수비 위주 전술을 격렬히 성토하면서 당장 성 밖으로 나아가 결전할 것을 채근했다. 그럼에도 페리클레스는 전략을 변경하지 않다. 그는 난바다에서 거센 폭풍우와 맞닥뜨린 배의 선장이 뱃멀미 때문에 선실에서 아우성치는 승객들의 불평불만에 개의치 않고 묵묵히 선박을 몰아가듯이, 당장의 불편을 해소하는 데만 정신이 팔린 변덕스러운 대중의 조급증에 굴복하지 않았다. 치욕과 오명을 묵묵히 감수하면서 나라의 미래를 차분히 열어가겠다는 심산이었다. 따라서 그를 겁쟁이로 풍자하는 합창단의 조롱 가득한 노랫소리는 페리클레스에게는 성가시고 하찮은 날파리떼의 시끄러운 윙윙거림일 뿐이었다.
페리클레스의 전략의 요점은 육지에서는 철통같이 방어에 주력하면서 아테네의 우월한 해군력을 이용해 적을 공격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1백 척의 전함을 동원해 아이기나를 점령하고는 그 땅을 아테네 사람들에게 제비뽑기를 통해 나눠줬다. 고대의 지중해에서는 해군력이 전격전의 선봉이자 기동전의 주축이었다.
함선에 탑승한 아테네 병사들은 신출귀몰했다. 그들은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상륙해 마을과 도시들을 약탈한 후에 반격에 나선 스파르타 군대가 몰려오기 전에 떠나곤 했다. 페리클레스 스스로는 육군을 이끌고 메가리스를 침략해 도시를 초토화시켰다. 바야흐로 전세는 그의 의중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인내와 믿음의 리더십 : 페리클레스 (13)
페리클레스는 우세한 병력의 스파르타를 상대로 아테네 해군의 장기인
신속한 기동력을 이용해 모택동 방식의 치고 빠지는 유격전을 구사했다.
스파르타는 페리클레스가 아테네에 팽배한 호전적 강경론의 진원지라고 생각하고는 그를 제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하였다. 그중에는 페리클레스의 외가가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성소 침범 사건에 대한 단호한 처벌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스파르타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이것은 아테네 안에서의 페리클레스의 위상만 오히려 강화시키는 역효과를 빚었다. 아테네인은 스파르타의 요구를 라케다이몬 사람들이 페리클레스를 무척이나 미워하고 무서워한다는 증거로 해석했다. 페리클레스는 스파르타가 동맹국들과 함께 아티카를 침범하자 자기의 영지를 국가에 헌납하는 것으로 민중의 신뢰에 보답했다. 사유지 헌납은 라케다이몬 군대가 다른 모든 농토와 과수원과 목초지는 황폐화시키면서 오직 그의 영지만은 파괴하지 않을 경우 발생할 수도 있는 민중의 오해와 의구심을 사전에 예방하려는 포석이기도 했다.
아르키다모스가 총사령관으로 지휘하는 스파르타와 보이오티아의 연합군은 중장보병의 숫자만 무려 6만 명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대군이었다. 페리클레스는 이 대병력에 정면으로 맞서면 승산이 희박하다고 판단하고는 성 밖의 주민들을 도시 안으로 불러들인 다음 성벽을 굳게 지키면서 장기간의 공격에 지친 적이 스스로 물러가기를 기다리는 작전을 택했다. 그는 나무는 베어내도 금방 자라나지만 백성은 한번 잃으면 다시 얻기가 쉽지 않다는 논리로 자신의 전략을 합리화했다.
성미 급한 자들, 전쟁이 길어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자들은 페리클레스의 수비 위주 전술을 격렬히 성토하면서 당장 성 밖으로 나아가 결전할 것을 채근했다. 그럼에도 페리클레스는 전략을 변경하지 않다. 그는 난바다에서 거센 폭풍우와 맞닥뜨린 배의 선장이 뱃멀미 때문에 선실에서 아우성치는 승객들의 불평불만에 개의치 않고 묵묵히 선박을 몰아가듯이, 당장의 불편을 해소하는 데만 정신이 팔린 변덕스러운 대중의 조급증에 굴복하지 않았다. 치욕과 오명을 묵묵히 감수하면서 나라의 미래를 차분히 열어가겠다는 심산이었다. 따라서 그를 겁쟁이로 풍자하는 합창단의 조롱 가득한 노랫소리는 페리클레스에게는 성가시고 하찮은 날파리떼의 시끄러운 윙윙거림일 뿐이었다.
페리클레스의 전략의 요점은 육지에서는 철통같이 방어에 주력하면서 아테네의 우월한 해군력을 이용해 적을 공격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1백 척의 전함을 동원해 아이기나를 점령하고는 그 땅을 아테네 사람들에게 제비뽑기를 통해 나눠줬다. 고대의 지중해에서는 해군력이 전격전의 선봉이자 기동전의 주축이었다.
함선에 탑승한 아테네 병사들은 신출귀몰했다. 그들은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상륙해 마을과 도시들을 약탈한 후에 반격에 나선 스파르타 군대가 몰려오기 전에 떠나곤 했다. 페리클레스 스스로는 육군을 이끌고 메가리스를 침략해 도시를 초토화시켰다. 바야흐로 전세는 그의 의중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