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와 믿음의 리더십 : 마르쿠스 카토 (16-完)

in kr •  6 years ago  (edited)

☐ 이기는 리더, 승리하는 리더십
- 인내와 믿음의 리더십 : 마르쿠스 카토 (16-完)


카토는 카르타고의 존재 그 자체를 결단코 용납할 수 없었다.
그림은 전성기 시절에 풍요와 번영을 만끽하던 카르타고 시의 상상도

카토는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 같은 인물이었다. 그는 젊었을 때는 농사와 근검절약을 통해 돈을 모으고 재산을 불렸다. 그러면서도 공부와 학습을 게을리 하지 않은 까닭에 나이를 먹은 후에는 농업을 비롯한 다양한 주제들에 관한 책들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박학다식해졌다.

카토는 식탁에서 내가 먹는 것은 아껴도, 남이 먹는 것에 대해선 인색하지 않았다. 그는 풍성한 식사자리를 수시로 마련해 지인과 이웃들을 초대했다. 손님들 가운데에는 카토보다도 한참 연배가 낮은 젊은이들도 여럿이었다. 자수성가를 바라는 청년들에게 카토의 성공담은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유익하고 흥미진진한 모험담이었다.

카토의 만찬은 먹을거리만큼이나 이야깃거리도 풍요로웠다. 대신에 한 가지 규칙이 있었다. 명예롭고 훌륭한 시민들의 덕성과 업적들을 찬양하고 칭송하는 얘기만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비천하고 쓸모없는 자들에 관한 시시콜콜한 소리들을 늘어놓아서는 안 되었다. 카토는 개처럼 벌어서 정승같이 썼다.

카토의 중요한 마지막 공적 활동은 카르타고를 완전히 멸망시키는 길을 연 것이었다. 로마인들이 카르타고와 세 번째로 싸우도록 부추긴 것이 카토였기 때문이다.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에게 패배한 카르타고는 영토의 대부분을 잃고서 평범한 도시국가로 전락했음에도 여전히 만만치 않은 경제력과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주변국인 누미디아와의 분쟁이 잦았는데, 카토는 양국 사이의 분규를 중재하려고 로마에서 파견된 사절단의 일원이었다.

지중해를 건너 북아프리카에 당도한 카토는 카르타고의 국력이 만만치 않은 사실을 발견했다. 물자는 풍부했고, 병사들은 많았으며, 시민들은 한니발 시절에 마음속에 품었던 자신감과 상무정신을 충분히 회복한 뒤였다. 카토는 카르타고가 머잖아 로마에 다시 도전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휩싸인 채 귀국길에 올랐다.

카토는 로마로 돌아오기 무섭게 원로원 단상에 올라 이참에 카르타고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놔 후환을 없애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카르타고와 누미디아의 전쟁은 카르타고가 로마를 또다시 공격하기 위한 준비운동과 같다고 강조했다. 토가 자락 사이에 숨겨두었던 무화과를 실수를 가장해 일부러 바닥에 떨어뜨린 그는 이 무화과가 자라는 곳이 로마에서 불과 사흘거리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고 말하며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카르타고를 멸망시켜야 합니다.”

카토는 로마가 와신상담한 카르타고에게 되치기를 당할 가능성을 경계했다. 반면에 카토가 지적한 바로 그 점 때문에 푸블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는 카르타고를 현재처럼 로마를 이기기에는 힘이 약하지만, 로마의 안중에 아예 없기에는 저력이 있는 상태로 존치시켜야만 한다는 견해를 역설하였다, 그는 로마를 위협할 만한 잠재력을 지닌 적국들이 지상에서 전부 사라지면 로마인들이 지나친 승리감에 도취해 방종과 무사안일에 치명적으로 빠질지도 모른다고 우려하였다. 푸블리우스는 카르타고는 로마의 정신적 타락을 막는 방부제 용도로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로마는 카르타고를 흔적조차 없이 깨끗이 지워버리기로 결정했다. 소 스키피오가 지휘하는 로마군은 카르타고를 함락시킨 뒤에 도시 전체에 불을 지른 것도 모자라 그 땅을 쟁기로 갈아엎고는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게끔 소금을 뿌렸다.

카토는 이러한 최종적 결말을 목격할 수가 없었다. 카르타고 절멸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군사 호민관 자격으로 작전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소 스키피오의 뛰어난 활약상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그 젊은이 혼자 제정신이고, 나머지는 전부 허당이로구나”라는 말을 유언처럼 남겼을 뿐이다.

카토는 재혼한 둘째 아내와의 사이에서 늦둥이로 태어난 살로니우스 하나만을 자식으로 남겼다. 살로니우스 대에 이르렀을 때 카토의 가문은 더 이상 평범한 서민 집안이 아니었다. 로마에서 손꼽히는 명문가가 되었다. 카토의 후손들 중에서 명성에서도, 실력에서도 단연 발군의 인물은 증손자인 소 카토였다. 손자 카토는 카이사르에게 맞서다 패배해 할복자살했다. 어떻게든 끈질기게 살아남았을 할아버지 카토와는 확연히 대조되는 극단적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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