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는 리더, 승리하는 리더십
- 위기 극복의 리더십 : 카밀루스 (7)
갈리아인들에게 포위당한 로마의 카피톨리움에서는
남한산성에 필적할 주전파와 주화파의 격론이 오간다.
카밀루스의 전령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원로원이 긴급 소집되었다. 그때까지도 원로원은 아르데아에서의 대승에 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원로원은 카밀루스의 요구를 받아들여 그를 독재관에 임명했다. 카밀루스만이 사방으로 흩어진 군대를 규합하고, 로마의 민심을 수습하는 일을 능히 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코미니우스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 카밀루스에게 원로원의 결정을 알렸다. 돌아기는 길 또한 오는 길 못잖게 위태로운 여정이었다.
카밀루스가 복권되었다는 낭보가 전해지자 곧바로 2만 명의 중무장한 병사들이 그의 휘하에 자발적으로 모여들었다. 이는 동맹국들에서 보내준 지원군과 상당한 숫자에 달했을 베이이의 패잔병들을 뺀 인원이었으니 카밀루스가 결집시킨 병력은 실제로는 훨씬 더 많았으리라.
그즈음 로마에는 마지막 위기가 찾아왔다. 코미니우스가 이용한 샛길이 갈리아인들에게도 발견되었던 것이다. 브렌누스는 그 즉시 병사들을 모아 카피톨리움 침투를 명령했다. 그는 이 세상에 난공불락의 요새는 없다는 훈시와 더불어 카피톨리움을 함락시키는 자들에게는 후한 포상을 내리겠다고 약속함으로써 부하들을 격려했다.
아무리 험한 길일지라도 여럿이 함께 가면 덜 힘들게 느껴지는 법이다. 갈리아인들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카피톨리움으로 연결되는 절벽에 난 샛길을 통과했다. 하지만 길이 원체 좁았던지라 많은 병력을 동시에 보낼 수는 없었고, 결과적으로 적진을 간단히 점령하기에 필요한 숫자만큼의 인원이 작전에 참여하지는 못했다.
발소리를 최대한 줄이며 방벽에 접근한 갈리아 병사들이 초병들을 제압하려는 찰나 거위떼가 먼저 적군의 침입을 알아챘다. 거위들은 굶주림으로 인해 신경이 매우 예민해진 터였다. 그 덕분에 로마인들은 무방비 상태로 기습을 당하는 화를 면할 수가 있었다.
곧 방벽 위에서는 양측 장병들 사이에 치열한 격투가 벌어졌다. 발군의 활약을 보여준 이는 집정관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만리우스였다. 그는 체구가 건장할뿐더러 강심장의 소유자이기까지 했다. 만리우스는 적병 두 명을 순식간에 해치우고는 다른 병사들과 힘을 합쳐 카피톨리움에 발을 들여놓은 갈리아인들을 모조리 물리쳤다.
로마를 구한 만리우스에게는 승리에 대한 보상으로 하루치 식량이 십시일반으로 주어졌다. 이는 장기간의 포위공격을 당하고 있는 배고픈 군대가 무공이 있는 병사에게 현실적으로 줄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이었다. 반면에 거위에게 보초 임무를 양보하고 만 셈이 돼버린 불운한 초병에게는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혹독한 형벌이 가해졌다. 작전에 실패한 잘못은 용서해도, 경계에 실패한 과오는 용서할 수 없었던 이유에서였다.
카밀루스의 군세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갈리아군이 카피톨리움을 함락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마저 무산되면서 전세는 로마 쪽으로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갈리아인들은 두 가지 일 때문에 크게 고통을 받았다. 첫 번째는 식량 부족이었다. 현지조달이 어려워진 탓이었다. 두 번째는 전염병의 창궐이었다. 북유럽의 차갑고 습기 찬 날씨에 익숙한 갈리아 족에게 덥고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는 체질에 맞지 않았다. 그들은 벌써 일곱 달째 카피톨리움을 둘러싸고 있었다, 남의 땅을 침략한 갈리아인들이 당하고 있는 어려움은 자신들의 영토를 유린당한 로마인들이 겪고 있는 고초와는 물론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로마에 갇힌 갈리아인들과, 로마 안의 카피톨리움에 갇힌 로마 원로원은 마지못해 협상에 나섰다. 갈리아에서는 브렌누스가, 로마에서는 군사 호민관 술피키우스가 협상 대표로 각각 회의장에 나타났다. 갈리아인들은 황금 1천 리브라를 배상금으로 가져오면 지체 없이 로마를 떠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로마인들은 제시된 화평 조건을 수락하고는 상응하는 양의 금을 갈리아 진영으로 운반해왔다.
무게를 달기 위해 금덩어리들을 저울에 올려놓자 갑자기 브렌누스가 저울의 균형을 마구 흩으려놓았다. 금괴를 더 많이 챙기겠다는 심산이었다. 로마 측이 이에 대해 격렬히 항의하자 브렌누스는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억울하면 이기든가….”
갈리아인들의 노골적인 엉터리 계측은 로마인들 사이에 혼란과 분열을 심어놓았다. 금을 더 퍼주기 해서라도 빨리 협상을 타결 짓자는 주화파와, 야만인들과는 더 이상의 협상이 불가능하니 결사항전만이 정답이라는 주전파로 국론이 분열됐다. 역시나 브렌누스는 카피톨리움에서 농성중인 로마인들만으로 당해내기에는 힘에서나, 꾀에서나 너무나 벅찬 상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