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는 리더, 승리하는 리더십
- 인내와 믿음의 리더십 : 마르쿠스 카토 (10)
카토는 로마 정계에서 결코 죽지 않는 질기디질긴 ‘다이하드’ 같은 존재였다.
카토는 로마 정치의 산증인이자 살아 있는 화석이었다. 그는 할아버지에서 시작해 손자에 이르는 3대에 걸친 정적들과 싸웠다.
스키피오 가문이 대표적 사례였다. 대 스키피오가 로마 정계의 새로운 실력자로 떠오를 즈음 정계에 입문한 카토는 대 스키피오의 손자로 입양된 소 스키피오가 연단에 설 때까지도 현역 정치인으로 남아 있었다. 그는 마케도니아를 최종적으로 정복한 파울루스 아이밀리우스의 아들과도 나란히 원로원 의석에 앉았으니 카토야말로 로마 정계의 불사조였던 셈이다.
카토는 10년 동안 집정관을 지낸 다음 감찰관 선거에 출마했다. 감찰관으로는 귀족 한 명과 평민 한 명이 각각 선출되었는데, 로마의 전면적 정화를 꿈꿔온 카토에게 감찰관직은 정치인생의 화룡점정을 찍어줄 수 있는 관직이었다.
로마인들은 관혼상제와 같은 개인의 일상사들도 국가가 제정한 엄격한 표준과 규칙에 따라야 한다고 믿어왔다. 감찰관은 이러한 표준과 규칙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를 감시하고 규찰하는 직책이었으므로 잔소리꾼 카토를 위해 만들어진 자리와 같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카토의 감찰관 출마를 반대하고 방해했다. 그들은 카토가 지나치게 경직되고 무자비하게 감찰관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할 것을 두려워했다. 반대파들은 카토에 맞설 경쟁자로 무려 7명의 후보자를 내보냈고, 이 후보자들은 시민들이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끔 감찰관의 임무를 유연하고 융통성 있게 수행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려고 했다.
카토는 정반대 스탠스를 취했다. 그는 때로는 유능한 의사처럼, 때로는 괴물 히드라를 불로 퇴치한 헤라클레스처럼 자신은 전통과 동떨어진 저속한 풍습과 행위들을 인정사정없이 단호하게 근절해나갈 것이라고 공약하였다.
플루타르코스는 이때의 로마인들이 위대한 지도자의 다스림을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는 찬사를 보냈다. 시민들은 대중의 비위에 영합하기 위해 가르랑말로 알랑거리는 후보들을 버리고, 대쪽 같은 자세로 시종일관 엄격하고 꼿꼿한 자세를 견지한 카토를 감찰관으로 선출했기 때문이다.
발레리우스는 카토가 마운드에서 던져대는 돌직구를 뒤로 빠뜨리지 않고 실수 없이 받아줄 수 있는 최고의 명포수였다. 두 사람은 러닝메이트 관계로 정치를 해왔고, 이제는 카토가 왕년의 후견인을 역으로 끌어줄 차례였다, 카토는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락쿠스를 원로원 의장에 앉힘으로써 오랫동안 받아온 은혜에 통 크게 보답하였다.
카토가 오직 결초보은 차원에서만 발레리우스에게 원로원의 사회봉을 맡겼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원로원에는 카토가 뽑아내고 싶은 잡초들이 많았다. 그가 구상해온 적폐청산 작업을 위해서는 원로원 의장이 카토와 코드가 일치하는 인물이어야만 했다.
- 인내와 믿음의 리더십 : 마르쿠스 카토 (10)
카토는 로마 정계에서 결코 죽지 않는 질기디질긴 ‘다이하드’ 같은 존재였다.
카토는 로마 정치의 산증인이자 살아 있는 화석이었다. 그는 할아버지에서 시작해 손자에 이르는 3대에 걸친 정적들과 싸웠다.
스키피오 가문이 대표적 사례였다. 대 스키피오가 로마 정계의 새로운 실력자로 떠오를 즈음 정계에 입문한 카토는 대 스키피오의 손자로 입양된 소 스키피오가 연단에 설 때까지도 현역 정치인으로 남아 있었다. 그는 마케도니아를 최종적으로 정복한 파울루스 아이밀리우스의 아들과도 나란히 원로원 의석에 앉았으니 카토야말로 로마 정계의 불사조였던 셈이다.
카토는 10년 동안 집정관을 지낸 다음 감찰관 선거에 출마했다. 감찰관으로는 귀족 한 명과 평민 한 명이 각각 선출되었는데, 로마의 전면적 정화를 꿈꿔온 카토에게 감찰관직은 정치인생의 화룡점정을 찍어줄 수 있는 관직이었다.
로마인들은 관혼상제와 같은 개인의 일상사들도 국가가 제정한 엄격한 표준과 규칙에 따라야 한다고 믿어왔다. 감찰관은 이러한 표준과 규칙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를 감시하고 규찰하는 직책이었으므로 잔소리꾼 카토를 위해 만들어진 자리와 같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카토의 감찰관 출마를 반대하고 방해했다. 그들은 카토가 지나치게 경직되고 무자비하게 감찰관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할 것을 두려워했다. 반대파들은 카토에 맞설 경쟁자로 무려 7명의 후보자를 내보냈고, 이 후보자들은 시민들이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끔 감찰관의 임무를 유연하고 융통성 있게 수행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려고 했다.
카토는 정반대 스탠스를 취했다. 그는 때로는 유능한 의사처럼, 때로는 괴물 히드라를 불로 퇴치한 헤라클레스처럼 자신은 전통과 동떨어진 저속한 풍습과 행위들을 인정사정없이 단호하게 근절해나갈 것이라고 공약하였다.
플루타르코스는 이때의 로마인들이 위대한 지도자의 다스림을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는 찬사를 보냈다. 시민들은 대중의 비위에 영합하기 위해 가르랑말로 알랑거리는 후보들을 버리고, 대쪽 같은 자세로 시종일관 엄격하고 꼿꼿한 자세를 견지한 카토를 감찰관으로 선출했기 때문이다.
발레리우스는 카토가 마운드에서 던져대는 돌직구를 뒤로 빠뜨리지 않고 실수 없이 받아줄 수 있는 최고의 명포수였다. 두 사람은 러닝메이트 관계로 정치를 해왔고, 이제는 카토가 왕년의 후견인을 역으로 끌어줄 차례였다, 카토는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락쿠스를 원로원 의장에 앉힘으로써 오랫동안 받아온 은혜에 통 크게 보답하였다.
카토가 오직 결초보은 차원에서만 발레리우스에게 원로원의 사회봉을 맡겼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원로원에는 카토가 뽑아내고 싶은 잡초들이 많았다. 그가 구상해온 적폐청산 작업을 위해서는 원로원 의장이 카토와 코드가 일치하는 인물이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