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1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원코리아 유스 오케스트라의 창단 연주회가 있었다. 지인을 통해 티켓을 얻어 가게 됐다. (사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뒤로 거의 음악회에 가지 않지만 가끔 들어오는 공짜표의 유혹이란...) 원코리아 유스 오케스트라는 롯데문화재단이 국내 젊은 음악가를 양성하기 위해 창단했다. 초대 음악감독은 정명훈. 서울시향 사태 이후 국내에서 맡은 첫 공식 직함이다. (서울시향 사태에 대해선 할 말이 많지만 오늘은 일단 넘어가자) 단원들은 모두 19~28세 젊은 연주자들이고 오케스트라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남북 교류에 대한 비전도 갖고 있다. 실제로 정명훈은 기자간담회에서 "언젠가는 이북 음악가들과 함께 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연주회는 두 곡으로 구성됐다. 첫 곡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 두 번째는 역시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이다. 모두 베토벤의 곡이면서 협주곡은 c minor, 교향곡은 E-flat major다. 하나의 조표를 가진(흔히 '나란한 조'라고 한다) 한 작곡가의 곡으로 연주회 전체의 통일성을 강조하면서도 단조에서 장조로, 비극에서 영광으로 이어지는 절묘한 선택이다.
우선 피아노 협주곡. 전반적으로 협주자 손정범의 연주는 딱히 흠잡을 데가 없었다. 강력한 타건을 바탕으로 곡의 주제를 명징하게 드러내며 음악을 이끌었다. 다만 곳곳에서 오케스트라와 호흡이 잘 맞지 않는 일이 벌어졌는데 내 생각에 이는 전적으로 오케스트라의 책임인 것 같다. 피아노 소리를 더 부각시키기 위해 지휘자가 의도적으로 오케스트라의 볼륨을 낮췄던 것 같은데 이것이 그리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의도치 않은 것이라면 젊은 연주자들이 아직 협주곡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탓일 것이다. 이러한 흠에도 불구하고 2악장에서 보여준 피아노의 아름다운 레가토는 찬사 받을 만하다. (그야말로 '귀 호강'이었다)
인터미션 후 교향곡 3번이 시작되자 젊은 연주자들은 순하고 내성적인 고양이에서 갑자기 사나운 호랑이로 변신했다. 조금 과장을 섞자면 마치 다른 오케스트라가 등장한 것 같았다. 정말 놀라운 집중력이었다. 1악장의 제2주제를 맡은 오보에와 플룻은 수준급 연주력을 선보였다. 목관은 연주회 전체에서 가장 빛나는 음향을 선사했는데 특히 바순은 기성 오케스트라 못지않은 실력을 보여줬다. 이 곡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호른은 몇 군데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전체적으로는 훌륭하게 중압감을 이겨냈다. 3악장 스케르초의 앙상블도 칭찬해주고 싶다.
교향곡 3번은 연주시간이 50분에 이르는 대곡이다. 베토벤은 이 곡으로 동시대 청중들에게 큰 고통을 안겼는데 초연 연주회장에서 어떤 사람이 "음악이 멈춘다면 은화 한 닢을 주겠소"라고 소리친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한 비평가는 "<영웅>의 부적절한 길이는 심지어 전문가들조차 감당하기 어렵게 하며 단순한 음악 애호가들은 정말 참기 힘들다고 인정한다"고 쓸 정도였다. 하지만 정말이지 어제 연주는 50분이라는 시간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나의 귀를 사로잡았다. 마에스트로의 조련을 받은 이 젊은 연주자들의 미래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