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솔직해서 좋다는 칭찬을 들었다.
솔직한 것(진솔한 것)과 그 솔직함으로 인해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것은(다 벗어버려서 당황스럽게 만드는 것) 다른 거라서, 글을 쓸 때 한번 더 ‘음..’하면서 그 수위를 고민하게 된다.
남편이 중국 사람이고 홍콩에 살고 있어서 아이들이 홍콩에 있는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다.
딸아이랑 친해지게 된 같은 반 러시아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그 러시아 친구를 등원시키는 엄마아빠를 처음 봤을 때 저게 바로 선남선녀구나 했다. 아빠는 훈남이고 엄마는 만삭임에도 불구하고 미녀였다. (딱 배만 나왔다)
나는 영어도 못하고 또 외국사람을 만나본 적도 별로 없어서(남편이 중국사람이지만 외국 느낌은 아니다) 그 선남선녀 부부를 멀리서 바라보며 흐뭇해(내가 왜? 잡지에 나오는 이상적인 가정처럼 느껴졌다.) 하고만 있었는데,
딸아이가 2학년에 올라가면서 전학 가는 아이들이 있다보니 딸이랑 친해지게 된 러시아 남자친구가 다른 학교에 가는지 아닌지 알고 싶었다.
그렇게 용기 내어 미녀 만삭 러시아 엄마에게 세상 부끄러운 영어 실력으로 말을 걸고 그 엄마와 메시지를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아이가 달리기 클럽에 참여하는 날에 러시아 친구 아빠가 아들을 데리고 달리기 클럽에 나온 것이었다. 미녀 만삭 엄마도 세상 불편하지만(외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아니, 사실 예뻐서 더 불편했다, 편하려면 모름지기 본인과 비슷하거나 내 기준으로 본인보다 못해야 한다) 훈남 러시아 아빠는 같은 여자도 아니니 더더욱 불편했다. (멀리서 보긴 좋은데, 잡지 구경하듯이)
아이들의 달리기가 시작되고, 훈남 러시아 친구 아빠(아따, 이름 길다)와 세상 어색하게 단둘이 잔디밭에 덩그러니 남게 됐고, 난 그를 배려하는 척 “가서 쉬세요^^(플리즈 take a rest)” 했다. 그런데 외국 사람 특유의 사교성을 발휘하며 “괜찮아요.^^ It's ok" 하는 것.
.... 난 오늘을 위해 초5부터 교재에 한글로 써져있는 애플 발음을 까맣게 지워가며 (애플은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영어를 배웠던 것인가..!
”어디서 와이프 만나셨어요?^^(웃는 입에선 미세한 경련이) 댄싱 클럽?“ (풉, 어디서 미드에서 본건 있어가지구, 미드에서 보면 꼭 졸업 무도회 같은 것을 하지 않는가)
댄싱 클럽은 아니었지만, 고등학교 졸업할 때 만났다고 했고, 그 뒤부터 그와의 잔디밭 대화는 생각보다 물흐르듯 흘러갔다. (내가 유일하게 아는 러시아 사람 도스토옙스키(줄여서 도끼)의 죄와 벌에서 보면 ‘소냐’가 나오는데 알고보니 러시아 사람들은 애칭으로 이름 뒤에 ‘냐’를 붙인다고 했다. 그의 아들은 “바냐”)
나는 태어나 처음 만나는 러시아 남자와 대화를 나누는 그 순간이 참 아름답게, 내 자신이 자신있게 느껴졌다. (생전 처음 보는 초록색 눈을 바라보며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나)
그(아름다웠던)날이 지나고, 나는 왠지 모를 생기에 가득 찼다. 그때부터 나는 눈썹을 그리기 시작했다.(푸하하)
안 사던 옷도 갑자기 잔뜩 샀다. 이제 츄리닝을 입고 등원시키는 대신에 빨간 원피스를 입고 등하원을 시키기 시작했다. 그가 멀리서 오는 것이 보이면 나의 마음(어떤?)을 들킬새라 그가 나를 보기 전에 방향을 바꿔 다른 길로 갔다.(다른 길로 방향을 틀었는데 딱 그순간 그에게서 메시지를 받았을 때는 이거슨 운명?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딸아이 절친 아빠와 대화를 나눈 후부터 나는 이전의 무기력한 내가 아니었다. 갑자기 수줍은 소녀가 된 느낌이었고 (남편 아니고 그에게) 예뻐보이고 싶었다. (근데 도둑이 제발 저렸는지 그때쯤부터 러시아 엄마가 나를 보는 눈빛이 차가워진 것 같았다..내 느낌이겠지..)
잔디밭 이후로 수영장에서 그를 만난 이후로 나의 가슴은 본격적으로 세차게(ㅋㅋ 내가 달리기 클럽에 들어간 것도 아닌데) 뛰기 시작했다. 외국 남자의 가슴에 털이 있는 것을 티비에서만 봤지 실제로는 처음 봤다. (띠용@_@)
우리의 아이들이 (왠지 섹시한 단어, 우리의 아이들) 수영장에서 티없이 맑게 뛰노는 것을 지켜보며, 그는 손을 머리 뒤에 얹고 (가슴의 털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나에게 이런저런 것을 물었다. 그때 신랑의 전화가 왔는데(왜 집에 안 오냐는 전화였다) 난 두남자 사이에서 행복한 고민을 하는 미드 주인공처럼 으쓱한 기분을 맛보았다.
그날 이후 나는 이 설레는 마음이 나에게 찾아온 것이 좋으면서도 아이 친구 아빠에게 이런 감정을 가진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남편이 싫은 것도 아닌데,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
그때 나의 감정을 대변할만한 책을 찾아보다가 에스터 페렐의 <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 욕망과 결핍, 상처와 치유에 관한 불륜의 심리학> 이라는 책을 읽었다. 내가 가지면 안될 것 같은 감정을 가진 것 같아서 죄책감을 느끼고 아무한테도 말 못했는데(나를 비난하지 않을거라고 확신이 드는 한명한테만 이 부적절한 마음 상태를 털어놓았다. 어디든 한군데는 털어놔야 더 크게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이 책을 읽고 내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나만 이상한가 라는 죄책감은 벗을 수 있었고, 바람직한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을 보며 얻은 나의 소녀 감성을 남편과의 뜨뜨미지근한 의무적이 되어버린 관계에서 다시 되살려보려했다.
이후 딸아이친구가 전학을 가면서 자연스레 친구아빠도 자주 볼 수 없게 되었고, 나는 다시 남편에게 돌아왔다. 나에게 아직도 소녀 감성이 있다는 것을 나도 여자라는 것을 발견하게 해준 그분에게 고맙다.
이제 가끔 오며가며 그분을 보게 되는데 다시 보니 그렇게 잘생긴 건 아니더라. 결국 내가 가진 게 최고지(^^)
@tipu cur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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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가 있습니다.
누구나 그런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여자이고 남자일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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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하게 살아 있는 글, 잘 읽고 풀보팅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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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ㅎㅎㅎ
제가 쓰면서 즐겁게 쓴 글인데 생생하게 살아있다고 표현해주시니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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