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 일기]블록체인을 통해 만난 이상한 사람들 2편

목적과 수단에 대한 고민

1편에서 말씀드린 분에 의해 블록체인을 공부하고 싶어진 저는 그가 소속해 있는 스터디그룹에 참여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참 별난 분들을 많이 만났던 것 같습니다.

학창시절에 선생님이 마음에 안 들어서 학교 사이트 마비시키는 법을 연구하다가 개발자가 된 사람
원래는 전혀 다른 업종에 근무하다가 블록체인을 알고 나서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직업을 탐색하는 사람
학생인데 블록체인이 삶의 우선순위가 된 사람 등등..

제가 보기에는 좀 이상해 보이는 사람들 투성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중에서도 유독 제 기억에 남았던 분이 있었습니다.

이 분을 생각하면 인기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다보스 시워스가 떠오르곤 했는데요. 왕좌의 게임 내에서 다보스 시워스라는 캐릭터는 생각해 볼 거리가 많은 입체적인 인물로 등장합니다. 그는 빈민가의 자식으로 글도 배우지 못한 채 성장했고 커서는 밀수업자가 되어서 돈을 벌지만, 어딘지 모르게 미워할 수 없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우선 밀수업이라는 비합법적 수단으로 영향력을 키웠으나, 자기 활동권 내의 성에서 방어전이 장기간 벌어져 성 안의 사람들이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하자 그동안 갈고 닦은 밀수기술을 이용해 몰래 성 안에 양파와 생선을 공급합니다. 이 성의 군주 바라테온도 전투가 끝난 뒤 그의 공로를 치하하여 기사 작위를 주지만, 밀수라는 수단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그의 손가락 일부를 자르는 형벌을 내립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양파기사라 칭해지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조롱과 칭송을 동시에 받게 됩니다.(극중에서 양파는 그의 밀수업을 상징하는 좋지 않은 의미로, 기사는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뿐만 아니라 다보스 시워스라는 캐릭터는 이후에도 바라테온 진영에서 유일하게 제정신인 인물로 나오면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시종일관 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 그의 경력으로 인해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마냥 곱지만은 않습니다.

그런데 블록체인을 통해 만난 사람 중, 이와 비슷한 인물이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흥미롭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스터디가 끝나고 식사를 함께 했을 때 다보스 시워스처럼 집이 가난해서 비주류는 아니었지만, 다른 요소로 인해 아웃사이더로 자라온 분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죠. 또한 그로 인해 수익창출을 목적으로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에서 노닐다가, 블록체인에서는 꽤나 어둠의 경로에서 활동하고 있었다는 점까지 공통점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수단이 그다지 깨끗한 분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수익을 통해 하고 있는 일이 놀라웠습니다. 여러 단체를 이미 지원하고 있는 상태였으며, 특히 환경과 영양에 관심이 많아서 그쪽과 관련된 일에 꽤 깊이 관여되어 있는 분이셨습니다. 이 분은 그 이후 얼마 안 있어 모임에 참석하지 않고 종적을 감추었기 때문에 지금 근황이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저에게 목적과 수단의 딜레마에 대한 영감을 던져준 분이었다는 점에서 기억이 많이 남습니다.

삶을 살다보면 인간은 굉장히 복합적인 패턴을 가진 존재라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돈을 남들이 보기에 더럽게 벌었지만 그 돈을 유의미하게 쓰는 사람, 돈은 건전하게 버는듯한데 타인을 좀 먹는 것에 그 돈을 쓰는 사람, 건전하게 수익을 창출하는 척 하는데 알고 보면 다른 사람을 착취해서 돈을 버는 사람, 그리고 가끔은 부정적으로든 긍정적으로든 목적과 수단이 일치하는 사람도 목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 속은 항상 이 모든 유형을 왔다갔다 맴도는 것 같습니다. 다만 그것을 실제로 실행하게 됐을 때, 그 중 하나의 유형이 남들 눈에 정해지게 되는 것이겠죠. mmmagazine 팔로워 분들은 이 중 어떤 유형에 속하시나요? 그리고 현실의 벽 앞에서 목적과 수단의 괴리를 절감할 때 어떤 선택이 옳고 그르다고 생각하시나요?

한편 저는 이 분을 만나서 영감은 얻었지만 여전히 블록체인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는 않았습니다. 그러기엔 아직 블록체인 공부도 막 시작하는 단계였고, 추상적인 영감에서 더 나아가 뚜렷한 비전을 확인할만한 무언가도 찾지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DASH로 블록체인을 처음 알아서 뭔가 다크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영감을 주신 분도 아이러니하게 다크다크.. 흐름에 대해서도 좀 공부하다보니까 딥 웹에 실크로드에 다크다크.. 어두운 이미지도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건 알지만 그냥 뭔가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았습니다ㅎㅎ 마음이 점점 돌아서게 된 건 여전히 한참 뒤의 일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