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불러야 할까?
가상화폐라는 용어가 사용되면서 공식적으로는 가상통화라고 하다가 최근에는 가상증표로 부르려고 합니다. 게다가 이 용어들의 의미에서 만들어진 프레임은 일종의 힘을 가지고 주장과 철학을 담고 있으며 그로 인해 많은 오해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용어들을 정리해보고 도대체 뭐라고 부르는 게 제일 적절할까에 대해 생각해보려 합니다.
우선 통화와 화폐, 그리고 가상에 대해서 알아보죠
통화? 화폐?
통화는 영어로 보면 Currency. 화폐는 money에 가깝습니다. 본위 화폐만 화폐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화폐가 조금 더 작은 의미라고 보시면 되요. 실질적으로 금본위 화폐의 시대는 끝났으니 통화나 화폐나 다름은 없습니다만, 이부분은 다른글에서 다시 논의해보도록 하죠. 이 "본위화폐"에 대한 이야기가 추가로 필요할 것 같네요.
가상?
가상은 영어에서 Virtual을 가져다 직역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일반 대중들이 기존의 통화, 화폐와 비교해서 인식하기 쉽게 하는 용어죠. 하지만 가상이라는 게 진짜가 아니라는 뜻과 연결되면서 많은 혼란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지금 만들어진 용어들은 가상통화, 가상화폐, 암호화폐, 가상증표입니다.
가상통화
가상통화는 말그대로 Virtual Currency라고 영어권에서 쓰던 용어를 가져온 겁니다. 오프라인 상에 존재하는 통화가 아닌 가상세계의 통화라는 의미겠죠. 그런데 사실 통화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것도 아니고 하니 좀 어색하네요.
가상화폐
통화라는 말이 평상시에 쓰는 말이 아니다보니 가상화폐가 훨씬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용어이기도 하고 말이죠. 게다가 직관적이죠.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화폐가 아닌 "가상세계"에서 만들어진 돈. 하지만 이건 화폐의 기본기능이라던가 국가가 발행하는 화폐와 충돌하는 등의 문제점을 보여주면서 지속적인 오해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암호화폐
암호화폐는 암호화 알고리즘을 사용한 지금의 비트코인, 리플, 이더리움같은 것들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중점을 둔 용어로서 영어권에서는 거의 이 CryptoCurrency라는 용어로 통일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사실 직역하자면 암호통화에 가깝지말 말이죠. 하지만 우리가 지폐에 들어가있는 위조방지 기능들 때문에 위조방지지폐라고 부르지 않듯이 암호화폐라는 용어로는 오히려 의미가 협소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본질보다는 사용처에 좀더 의미를 붙이는 쪽이 용어로서 활용되기도 좋죠.
가상증표
가상증표는 "화폐가 아니다"라는 국가의 입장이 반영된 용어입니다. 일종의 프레임에 대한 반대 역할을 위해 태어난 용어인데 거의 쓰지 않아서 대중에게 받아들여질지는 의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다른 용어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제가 이 가상화폐에 대한 논의를 하다보면 주로 나오는 말들이 변동성이 커서 화폐라고 할 수 없다라던가 화폐의 본래 기능에 부합되지 않는다 등인데, 이것은 기존의 화폐라는 용어에 새로 나타난 개념을 억지로 붙이려다보니 생기는 문제로 보입니다.
전 그래서 오히려 "디지털 토큰" 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제가 뭐 대단한 사람도 아니라 용어를 제안하기에는 미력하지만 기존의 용어가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오해들을 볼 때면 한숨이 나오다가도, 용어 자체가 만들어낸 프레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글로 올려봅니다.
디지털토큰이라는 용어의 유용성
디지털
우선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등은 모두 디지털 상으로 존재합니다. 디지털 세계가 없어진다면 모두 사라지게 되어있죠. 이 "디지털"이라는 용어로 기존 화폐와의 기본적인 차별점을 둘 수 있습니다. 시스템 운영의 보상으로 나온다는 본질적인 문제도 살짝 포함되어 있고 시스템의 존재는 디지털토큰의 이름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토큰
"token토큰"은 영한사전을 찾아보면 화폐 대용으로 쓰는 상품권, 교환권 같은 의미입니다. 화폐는 아니지만 화폐 대용이 된다는 점에서 기존의 많은 오해거리에서 벗어날 수 있죠. 화폐는 국가가 발행하는데 가상화폐는 누가 발행하느냐, 주인 없는 돈이다,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다 등의 문제에서 조금은 비껴설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디지털 토큰의 경제적 가치
물론 디지털 토큰으로 국가간 환전이 대규모로 일어날 시에는 국가의 경제정책에 변수가 생겨버리고 국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경제를 끌고 나갈 수 없기 때문에 디지털 토큰들은 국가적인 규제를 받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토큰들은 지구적 신뢰(global trust)를 바탕으로 세계를 좀 더 빠르게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이전의 어떤 시스템도 저와 지구 어딘가에 있는 다른 누군가를 경제적으로 이렇게 가깝게 연결시켜준 적이 없습니다.
디지털 토큰들은 화폐와 싸우기 위해 등장한 게 아닙니다. 화폐가 할 수 없는 것들을 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죠. 경제적인 부분만 본다면 말입니다. 여러분이 은행에서 다른 은행으로 돈을 보내면 당장에 돈이 들어왔다는 알림이 오지만, 진짜로 그 돈이 옮겨지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린 뒤에 양 은행이 정산을 시도해야 합니다. 비용도 큰 일이고 가운데에 두 은행이 신뢰하는 어떤 기관이 중재도 해야하죠. 이 모든 것에 들어가는 비용을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경감시킨 것이 바로 이 비트코인을 필두로 한 블록체인 시스템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세상의 경제 시스템의 백그라운드에서 뭐가 돌아가는지 모르시고 블록체인 시스템의 능력과 단순비교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절대로 아닙니다. 누가 와도 두 눈 똑바로 보고 얘기해줄 수 있어요. 누가 뭐라해도 가장 적은 수수료이며 적은 시간과 비용이라구요. 은행에 인건비를 없애버리면 어떤 세상이 올까요? 그래도 모든 게 잘 이루어진다면요? 게다가 지금 많이들 이루어지는 P2P투자가 활발해진다면? 은행 직원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예금자들에게는 적어도 지금보다는 많은 혜택이 올것 같습니다. 인건비가 빠지는 만큼 이자가 늘겠죠?
그래요,
디지털 토큰은 화폐랑 싸우기 위해 등장한 게 아니라,
은행 등의 신뢰 기관과 싸우기 위해 등장한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