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당(不知堂)의 차(茶)이야기 9
미국에 루스 베네딕트(1887~1948)라는 학자가 있었습니다. 인류학자인 이 사람이 일본인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여 한 권의 책에 담았습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난 직후에 발간된 이 책의 제목이 ‘국화와 칼’이었습니다. 이 내용을 살펴보면 일본인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중성(二重性)을 가진 종자(種子)들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예의바르고 착한 모습이었다가 갑자기 돌변하여 다른 사람을 잔인하게 공격하는 야만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볼 때 만약 그가 일본의 다도(茶道)를 좀 공부했더라면 그같은 미스테리를 쉽게 이해했을 것입니다. 왜냐구요? 이유를 간단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다도는 15세기 중반부터 16세기 후반까지 지역 영주끼리 죽기 살기로 쟁탈전을 벌렸던 일본의 전국시대(戰國時代) 직후에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풍신수길(豐臣秀吉)이 만들어 낸 작품이었어요.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자 일본에는 더 골치 아픈 문제가 생겼습니다. 전투를 벌렸던 무사들, 즉 사무라이들이 할 짓이 없으니까 동네 깡패로 전락되어 툭하면 칼을 휘둘러 대는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졌습니다.
풍신수길은 이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골머리를 앓던 중, 차(茶)를 폼나게 마시고 있었던 한 다인(茶人)을 만나게 됩니다.
센 리큐(千利休:1522~15991)라는 이 차인은 차를 마시며 선적(禪的) 명상을 즐겼는데, 이 모습을 목격한 풍신수길은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에게 다도(茶道)라는 형식을 만들게 하였고 결국 사무라이들의 흥분상태를 진정시키는 묘책을 완성시킵니다.
사실 차(茶)마시는 행위를 통해 도(道)에 이를 수 있다는 이론은 이미 중국 선불교(禪佛敎)에서 깨달음의 방편으로 잡았던 화두(話頭)였습니다. 따라서 당시 무식한 무사들에게 다도를 익히게 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였겠지만 힘들게 무술을 단련하는 것보다는 쉬운 문제였을 것입니다.
결국 다도는 무사들의 몸에서 피 냄새를 지우는데 기여함으로써 정국 안정의 공로자가 되었습니다. 다도 속에는 이처럼 ‘국화와 칼’로 표현될 수 있는 일본정신이 담겨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임진왜란 때였던 것 같은데,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본 문화의 중심으로 유지 될 수 있었는교. 납득이 잘 안됩니더.”
나이가 좀 많아 보이는 수강생이 던졌던 질문인데, 날카로웠습니다. 그녀의 말처럼 다도가 특정 계급을 위해 만들어졌던 것이라면, 수백 년이 지난 현재까지 일반 사람들의 생활문화가 되었다는 것이 이상다는 말이지요.
"그렇게 된 것은 신도(神道)라는 일본 종교 때문이라고 봅니다. 신도는 특별한 교주나 교리도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생활속에서 만들어진 어떤 생각에 일정한 형식을 입혀 이것을 믿는 짓을 잘합니다.
그리되면 그것은 종교의 형태로 발전되고, 대중에게 인기를 얻으면 결국 하나의 종파가 만들어집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다신교(多神敎)형태로 나타나지만, 모두 천신(天神)으로 통합된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일본인들은 종파간 충돌이나 갈등이 생기지 않고 민족적 단합이 잘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기독교도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했음에도 신도수는 3%를 넘기지 못하는 이유도 일본인들의 이같은 종교관때문일 것입니다. "
“그렇다면 우리가 왜 그런 다도에 뻑 가서 이 난리를 치게 되었는교?”
누군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다도 열풍이 우리에게 불어 닥친 것은 80년대 중반에서 90년도초 사이였으니까 최근에 일어난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절에서 하산할 때였던 1979년까지만 해도 차는 일부 스님들만이 즐기는 기호 식품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1993년에는 그 바람이 거창 촌구석까지 불어와 나까지 그 덕(?)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거기에는 분명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일본(日本)과 대기업의 합작품에서 비롯된 결과일 런지 모릅니다.
“선생님 너무 나가시는 것 아닙니꺼? 한국의 다도 열풍이 일본에게 무신 이득이 그리 크겠능교? 그리고 대기업이 개입했다는 이야기 좀 억지 같심더.”
옆에서 자리를 함께 했던 찻집 주인이 더 이상 두고볼 수 없다는 듯이 끼어들었습니다. 아마도 내가 차집 경영에 고춧가루라도 뿌리는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해서 난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았습니다.
“한국 사회에 다도가 보급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먼저 일부 문화인들을 앞세워 차 모임을 만들고, 차 관련 행사에 자금을 지원하였습니다.
큰 손들은 차가 잘 자랄 수 있는 지역을 골라 대단위 차밭을 조성하기 시작했고,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조성했던 차밭들을 확대시키도록 지자체에 펌프질을 했습니다.
그러자 드디어 한국사회에서 다도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녹차가 불티나게 팔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참고로 농산물의 수익 비율은 20~30%정도에 불과한데. 차(茶)는 원가대비 50~100%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이쯤 일단 숨을 돌리기 위해 나는 앞자리에 앉아 있는 수강생에게 차를 더 요청했습니다. 목이나 좀 축일 요량이었는데, 학생들은 기다려 주지 않고 본격적으로 대들었습니다.
“선생님, 지는 차 강좌는 많이 들어보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듣심더. 그라믄 우리가 지금 글마들 장단에게 놀아나고 있다는 말씀인교?”
수강생 한 명이 항의성 발언을 하고 나서자 모두가 숨을 죽였습니다.
다도가 사찰에서 전래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중화된 데에 이런 측면도 있네요.. 다음 이야기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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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차 이야기 속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흥미진진한 이야기 거리가 많으니까요ㅕ.
기대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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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이야기가 해피엔딩이 아니네요!
궁금한데..어케 되남요^^;??
다도의 역사가 진정 이렇다니.!
재미난 글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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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작이랍니다. 앞으로 털님께서 좋아할 만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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