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금을 매우 안정적 자산으로 취급하며 투자하거나 보유한다. 경기가 불안하면 금으로 투자가 몰려 금값이 오른다.
사람들이 금에 높은 신뢰를 보이는 건, 금이 화폐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금은 그 자체가 화폐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금을 화폐로 가지고 다니는 것이 불편해지자 금을 은행에 보관하고, 금화와 같은 가치를 가진 화폐를 발행했다. 이 화폐를 은행에 가져가면 금으로 교환해 준다는 조건이었다. 이를 금태환이라고 했다. 물론, 금태환제도는 이미 폐지된 바 오래이다.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겪으면서 통화량을 더 늘려야했지만, 그만큼의 금은 없었기 때문이다.
즉, 지금의 화폐는 금으로 바꾸어준다는 믿음이 아니라, 국가가 그 가치를 보장한다는 믿음 즉, 공신력을 디디고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화폐는 믿을 수 있는 걸까?
그렇지 않다.
국가 경제가 붕괴되거나, 중앙 은행이 통화량을 조절하지 못하면, 그 화폐의 가치는 사라진다. 이미 짐바브웨, 베네주엘라 등에서 그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화폐뿐이 아니라, 예금도 신뢰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비트코인 홍보에 결정적 영향을 준 건, 지중해 작은 섬나라 사이프러스(Cyprus. 키프러스) 금융 위기 때였다.
키프러스 은행들은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투자 자금이 빠져나가고, 그리스 부도 사태가 터지면서 심각한 부실 상태에 빠졌다. 당시 키프러스 주요 은행들은 그리스 국민들에게 많은 대출을 해 주었고, 그리스 국채도 상당량 보유하고 있었다.
결국, 유럽 연합으로부터 긴급 구제금융을 받게 되었는데, 달랑 100억 유로를 수혈받으면서, 키프러스 은행 예금 계좌 중 10만 유로가 넘는 경우는 40%의 과세를 하는 전제 조건을 제시받게 된다.
당시 키프러스는 조세 회피처로 유명했고, 특히 러시아 재벌들의 자금 보관소로 활용되어 왔다. 이 사태 이후 심지어 유로화 표기 예금도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부호들은 자산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대안을 찾기 시작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바로 비트코인이었다.
결국 이 사태 후 비트코인은 급등하게 되었고, 가상화폐를 세간에 널리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최근 비트코인의 급등은 위안화 가치를 신뢰하지 못하는 중국 부호들이 자산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외국으로 반출하기 위해 대거 매입했기 때문이라는 루머도 있다.
가상화폐가 안전한 대체투자 수단이 된 것이다.
화폐나 예금을 믿을 수 없다면, 금은 안전할까?
지금 금은 화폐의 수단이 아니라 안전 자산 혹은 투자 자산으로 취급한다. 물론, 소비재로 사용하기도 한다.
지금 연간 금 생산량은 약 3천톤 내외인데, 산업용 소비량은 대략 1000톤 미만이다. 또 4천톤 가량은 금 장식품으로 소비되고, 3천톤 가량은 금괴의 형태로 투자용으로 팔린다.
현재 알려진(?) 전세계 금의 양은 183,600 톤이다. 시세로 치면 6~8 조 달러에 이르며, 부피로 보면 가로,세로, 높이 21 미터에 불과하다. 무게에 비해 크기가 작은 건, 금의 비중이 워낙 높기 때문이다.
하루 금 생산량은 9톤에 불과한데, 런던 금거래소에서만 거래되는 하루량은 무려 5500 톤이다. 금액으로 치면, 매일 251조원 (2,120억 달러)이다. 1년간 거래 되는 양은 135만톤이 넘는다. 해마다 거래되는 양이 실물의 7.4 배에 이르는 것이다.
이게 가능한 건, 실물 거래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돈을 주고 금을 사는 것이 아니라, 금 문서(Gold paper)를 사는 것이다. 런던 거래소에서 이루어지는 금 거래의 95%는 이처럼 문서로만 매매되며, 실물 거래는 5%에 불과하다. 이렇게 문서로 거래되는 것을 Unallocated gold, 실물 거래를 Allocated gold라고 부른다.
현물이 아니라 문서를 살 경우, 당연히 사기의 위험이 있다. 게다가 런던금거래소는 거래자와 거래유형, 미상환 예금, 대출 정보, 할당 비할당 비율, 운반정보 등 모든 정보를 감추고 있다.
심지어 전세계 금의 양이 18만3천톤이라고 하지만, 그걸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딘가에 금이 있다고 믿을 뿐이다.
이렇게 따지면, 금처럼 불투명하고 거품이 많은 자산도 없다. 만일 Paper gold를 가지고 있는 투자자가 모두 현물을 요구하고 나서면, 금 시장은 바로 붕괴된다.
전세계 부동산 자산의 가치는 217조 달러에 이른다. 부동산은 믿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이미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를 통해 목격했다. 이 금융 위기는 비 정상적인 부동산 담보 대출과 이를 악용한 각종 파생 상품을 무분별하게 판매하여 생긴 것이다. 미국 금융권이 부동산 담보 대출을 마구 해 준 이유, 소비자들이 주택을 대책없이 사들인 이유, 투자자들이 주택저당증권(MBS. Mortgage-backed security)을 산 이유는 주택이라는 현물이 있으므로 위험은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확고한 믿음은 여지없이 깨졌고, 수많은 이들이 재산을 잃었고, 세계 경기에 악영향을 주었다.
즉, 안전한 자산, 믿을 수 있는 대체투자 자산이라는 건 결국 없다.
가상화폐는 손에 잡을 수도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으며, 누구도 보장해 주지 않는데 믿을 수 있을까?
가장 안전한 채권이라고 보고, 주요 연기금 관리자들이 사들인 MSB도 부도가 났고, 가장 안전한 기축통화라고 믿고 맡긴 유로화 예금도 거덜이 나고, 가장 안전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구입한 Paper gold 를 들고 금 교환을 요구할 때 상대가 난감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다면, 가상화폐의 공신력을 말할 바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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