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이제 인정하세요. 벌써 한 달이나 지났는데 계속 이렇게 싸우기만 할 거예요?”
수애에게 홀딱 반해버린 무철이다. 이놈이 기술은 내게 배워놓고는 늘 수애 편을 들며 칭찬한다. 내가 그동안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여자에게 미쳤다 이거지?
“여자에게 홀려서 은혜도 모르는 놈아, 지금 말장난할 기분 아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넌 수애가 좋냐? 여자는 말이야, 얼굴만 예뻐서는 안 돼. 마음이 고와야지.”
“에이, 형님이 그런 것도 알아요? 연애는 해봤어요?”
헛, 이놈이 내 약점을 찔렀다. 내가 연애라는 걸 해본 게 언제였더라?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나질 않는다. 군대 가기 전, 그러니까 스무 살 때 만났던 여자가 마지막이었다. 젠장, 20대 청춘을 연애도 안 하고 충성스럽게 일만 하며 보냈네.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알아? 나 연애 많이 해봤어. 나 좋다고 제발 사귀자고 달라붙는 여자들 떼어놓느라 얼마나 피곤했는지 알아? 지금은 열심히 일만 하려고 안 사귀는 거야.”
“에이, 그 거짓말 사실이에요?”
“야, 닥치고 일이나 해.”
.
수애는 한 달 전 종무식 날 처음 나타났다. 어깨에 달 듯 말 듯한 단발머리에 큰 눈을 가진 수애는 총각 조리사들의 심장이 두근거리다 못해 터질 정도로 예뻤다. 주방장이 함께 일하게 될 조리사라고 그녀를 소개하자 총각 조리사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조리사는 육체노동이라서 여자가 하기엔 힘겨운 직업이기에, 남자들만 득실거리는 주방에 여자 조리사가 왔다는 것만으로도 일단 경사다. 게다가 미녀 조리사라니, 큰 경사였다. 그러나 사내연애에 대한 기대와 주방이 천국이 될 것이라는 총각 조리사들의 환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녀가 얼마 전에 퇴사한 부주방장 자리로 새로 왔다는 소개를 듣고는 모두 멍한 정신 상태를 체험하고 말았다. 나는 멍한 정도가 아니었다. 기가 막혀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나이도 나보다 어리고 식당에서 일한 경험도 없는 수애를 상사로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녀가 밉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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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장은 부주방장 자리가 비자 사장님께 나를 부주방장으로 추천했다고 알려줬다. 사장님이 거절한 걸까? 왜 나 대신 수애가 부주방장이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혹시 수애가 사장님의 낙하산인지 궁금해서 종무식이 끝나고 주방장과 따로 면담했다.
주방장은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수애가 대졸에 유학파라는 것과 사장님이 어렵게 모시고 왔다는 말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방장도 수애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주방장이 미웠지만 이미 결정된 일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를 제외한 총각 조리사들은 얼굴이 반반한 수애에게 호의적이었다. 지식이 풍부해서 모두 수애를 부주방장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나만 빼고.
.
가만히 서서 신세 한탄을 하는데 수애가 다시 주방으로 들어왔다. 작업대를 힐끔 쳐다보더니 나에게 다가왔다.
“이봐요, 김경주 씨. 저랑 해보자는 겁니까? 칼 안 치울 거예요?”
오늘 한 번 붙어보자는 건가? 무철이까지 네 편을 들어서 짜증나는데 왜 시비람?
“이 칼 말입니까?”
나는 칼을 들고 수애의 얼굴로 들이밀었다. 날마다 갈아둔 칼날은 닿기만 해도 피부에 상처를 낼 정도로 날이 서 있었다. 수애는 날카로운 칼날이 얼굴 가까이에 오자 생명의 위협을 느낀 사람처럼 기겁하며 놀랬다가 이내 칼이 무섭지 않은 척하려고 애썼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동공이 커질 대로 커진 수애에게서 칼을 거두며 말했다.
“이 칼은요, 8년이나 만지고 어른 덕에 내 말을 아주 잘 듣지요. 칼집보다는 여기 위에 두는 게 훨씬 안전합니다. 교과서는 이론일 뿐이에요. 정답은 현장에 있는 겁니다. 아시겠어요?”
수애는 겁을 먹은 것인지 딴생각을 하는 것인지 시선을 칼날에만 집중한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저 초짜가 칼을 무서워하는 게 틀림없다. 칼이 무서워서 자꾸 칼집에 넣으라고 한 것이다.
진정한 요리사는 칼을 무서워해서는 안 된다. 그녀는 진짜 요리사가 아니다. 학위를 취득한 범생이일 뿐이다.
“칼질 실력이 모자라는 사람은 칼이 무서운 법이지요. 진짜 요리사들은 칼을 무서워하지 않거든요. 칼을 제 몸의 일부처럼 생각하니까요. 흐흐흐.”
수애는 진짜 요리사가 아니기 때문에 저렇게 칼을 무서워하는 것이다. 이제 수애의 약점을 알았으니 기회가 될 때마다 괴롭혀야겠다. 날마다 괴롭혀서 그만두게 만들어야지. 그럼 나는 계획대로 부주방장이 될 것이다. 생각만으로 신난다. 앗싸!!!
** 다른 회차 보기 **
[소설연재] 사랑은 냉면처럼 | 01 꼬인 내 인생이여
[소설연재] 사랑은 냉면처럼 | 02 이 칼 말입니까?
[소설연재] 사랑은 냉면처럼 | 03 그래서 어쩌자는 건데?
(1) 소설은 주 5회 이상 연재하겠습니다.
(2) 완결된 소설은 리디북스에서 판매중입니다.
직접 쓰신건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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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가 쓴 소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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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재밌어요!!! 잘 읽었습니다.
저는 판타지 소설가가 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에요.
음... 학창시절부터 조금씩 써왔지만, 어디서부터 뭘해야할지 아직도 감이 잘 안잡히네요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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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쓰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또한 많이 읽어야 하고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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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사랑은 냉면처럼 :)
다음 편이 기대됩니다 :) 수애와의 러브스토리가 기대됩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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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신 분들 중에 재미 없다고 하신 분은 거의 없었어요. 기대하셔도 괜찮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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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고갑니다^^ 팔로우했어요 자주들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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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 저도 팔로우 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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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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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우셨다니 기분이 좋네요.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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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요정 바람돌이가 하루에 한가지 소원만을 들어주는것처럼
짱짱맨도 1일 1회 보팅을 최선으로 합니다.
부타케어~ 1일 1회~~
너무 밀려서 바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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