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푼도 남김 없이, 지난 1년을 욜로(YOLO)로 살아보면서

in kr •  7 years ago  (edited)





작년 1월 23일 입사. 첫 직장생활이었다.
그 후로 11번의 월급을 받았다.
그리고 모조리 다 썼다. 정말 한 푼도 남김없이.


이 글은 그렇게 돈을 쓰고 남은 것들에 관한 기록이다. 

그리고 올해 들어 세 달간 완전히 반대로 살아본 것과 비교한 기록이다. 


1. 식비

작년

먹고 싶은 대로 다 사 먹었다.

일주일에 원하는 대로 족발이건 치킨이건 스테이크건 다 사 먹었다. 일주일에 3~4번은 비싼 외식이었다. 살이 무럭무럭 쪘다. 지방 위주로. 

그 순간들은 뭐, 즐거웠던 거 같다. 혀가 즐거웠다.

근데 올해 1월 1일이 되었을 때, 이것저것 맛있었지~ 하는 기억 외엔 딱히 남는 게 없었다. 먹는데 몇백은 썼을 테지만 말이다. 

지나간 감각들만 뇌리에 새겨져있었다.

올해

비싼 외식(작정하고 먹는 외식을 뜻함)은 금요일 저녁에 한번, 주말에 한번 정도로 줄였다. 가끔 평일에도 치킨이 땡기고 고기가 땡겼지만 안 먹는다고 해서 억하심정이 발생하진 않았다. 

그 맛이 무슨 맛인지 이제 다 알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부지런히 처먹은 덕인가 보다. 

또한 세치혀 플레져가 생각보다 찰나이며, 정작 시켜서 먹으면 먹기 전에 기대했던 것만큼 대단히 만족스럽진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도 진정 먹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땐 요즘에도 잘 사 먹는다. 하지만 그냥 습관적으로 먹고 싶은 건지, 진짜 먹고 싶은 건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본다. 아. 음료값은 모조리 줄였다.


2. 옷값

작년

사고 싶은 대로 거의 다 샀다. 나는 '어나더오피스'와 '벨리에'라는 브랜드의 옷을 좋아했는데, 두 브랜드에서 시즌별 나온 옷들을 거의 다 샀다. 

덕분에 옷장에 옷이 정말로 많아졌다. 

올해

사고픈 대로 다 사도, 새 옷의 만족감이 2주를 못 넘긴다는 것을 알았다. 필요해서 사는 게 아니라 사는 행위를 하고 싶어서 산다는 걸 깨달았다. 

모든 쇼핑앱(29cm, 무신사 등)을 지웠다. 보지 않으니까 사고 싶은 맘도 딱히 안 들었다. 한두 번 참으니 그 뒤로는 참을 필요도 없어졌다. 

작년에 옷을 많이 산 덕에 옷장에 옷이 미어터질만큼 많다. 난 올해 단 한 벌의 옷도 사지 않을 것이다. 

대단한 결심은 아닌 것 같다. 옷이 이미 많으니 더 사지 않을 뿐이다.


3. 술

작년

마시고 싶은 대로 마셨다.

비싼 술도 종종 마시러 갔다. 집에도 많이 사놨다. 해외맥주 네 캔은 매번 일주일도 채 못 갔다. 분리수거를 할 때면 빈 맥주 캔들이 그렇게 많았다. 

약속 장소도 다 술집으로 잡고 부어라 마셔라 했다. 연태고량주를 특히 많이 마셨던 기억이 난다. 취하고, 몽롱하고, 횡설수설하는 것은 대단히 만족스럽진 않아도 꽤나 중독성 있는 상태였다. 

올해

거의 끊었다.

회를 먹건 치킨을 먹건 술은 안 마신다. 물을 마시거나 홍초에 탄산수를 타먹는다. 콜라도 잘 안 사 먹는다. 

처음엔 맥주를 끊는 게 그렇게 어려웠다. 하지만 이유를 세가지 마련하니 쉽게 끊을 수 있었다. 

a. 시간과 체력이 아까움

일단 오후 8시쯤 퇴근하고 맥주 한 잔을 마시면 순식간에 피곤해진다. 그럼 남은 밤 시간은 다 날리는 것이다.

게다가 술 마신 다음날에는 집중력이 바닥을 친다. 일어나는 것도 힘들다. 자도 제대로 잔 것 같지가 않다. 피곤하다. 운동도 잘 안된다. 

b. 술에 취하는 게 정말로 즐거웁나?

취하기 시작하면 즐겁긴 한데, 대단히 그 상태가 좋은 것은 아니고, 그냥 취한 상태에 습관적으로 진입하고 싶은 욕구가 더 크다는 걸 발견했다. 쉽게 말하면 취하고 싶은 것도 습관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습관이라는 걸 알았으면, 더군다나 그게 나쁜 습관이라면 더 이상 지속할 필요가 없다. 딱히 좋은 것도 아닌데 습관이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c. 왜 의사 말을 무시하나?

다른 때는 의사들 말이 다 맞다고 끄덕거리면서, 왜 나는 술에 관해선 의사들 말을 무시하는가? 일주일에 한두 번만 술을 마셔야 하고 한 번 마실 때도 맥주 한 잔, 소주 네 잔 이상 마시지 말라고 의사들은 말한다. 

사람들은 그게 말도 안 된다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의사들의 말과 사람들의 말 중 어느 쪽이 더 말이 안 되는지 알 수 있었다.

다들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소주 1병은 마셔줘야 한다고 생각하니 이게 디폴트 값인 것 같지만, 냉정하게 보면 이런 술자리 문화가 극단적인 관습인 것이지 의사의 제안이 극단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집에서는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는다. 약속을 잡을 때도 굳이 술 약속으로 잡지 않는다.

만약 단체 약속이 술자리로 잡혔다면, 그땐 그냥 가서 부담 없이 마신다. 이 정도로만 가끔 마셔주면 되지 뭐. 


취하는 건 즐겁다. 하지만 나는 그 쾌감을 충분히 맛봤다. 더는 안 봐도 사는데 문제없을 것 같다. 


원래 나는 돈을 쓰고 싶은데 못 쓸 때 굉장히 화나고 서러워지고 억하심정이 발생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처음 월급을 타보자마자 1년간 펑펑 썼다. 그리고 올해부터는 알뜰살뜰한 인간형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흥청망청 쓰는 것보다 내 삶을 계획하며 절제할 줄 아는 삶이 더 만족스럽다는 것을 깨달은 지난 1년하고도 3개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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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이 들면 고치기 어려운데 좋은 쪽으로 발전하셨군요. 저도 음식이 땡길 땐 이 콜이 위에서 오는 거냐, 뇌에서 오는 거냐를 생각합니다. 99% 후자더군요. 이 경우는 그냥 무시하는 게 정답입니다. 근데 말처럼 쉽진 않죠 ==

엇 정말 공감 가요!!! 이 콜이 위에서 오는거냐 뇌에서 오는거냐 ㅋㅋㅋ 이보다 더 적절한 비유가 없는것 같아요! 그리고 야밤에 뇌에서 오는 콜이 정말 강하죠... 참기 힘들고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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