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주제에 대한 아쉬움
토론 주제는 나에게 조금은 아쉬웠다.
초기 비트코인이 만들어지고 확장된 이유를 보면,
법정화폐(Fiat currency) 대체 라기보다는,
법정화폐가 지배하는 경제 시스템에 태풍과 쓰나미가 몰려올 때 피신처로 설계되었다고 본다.
화폐로 부적합한 이유 중 하나가 송금할 때 10분씩 걸리는 -블록 생성하고 공증하는 시간- 문제인데,
블록체인 고안할 정도 전문가면 모를 리 없다.
사토시 혹은 사토시 그룹 정도면, 우리가 쓰는 은행 전산 시스템,
전 세계 카드 네트워크 정도는 쉽게 설계 혹은 설계에 이미 기여했을지도 모를 사람들이다.
또한,
비트코인이 월스트리트에 소개된 이유도 아이러니하게도 법정화폐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들은 양적완화라는 방법으로 위기를 대응했다.
돈을 무지하게 푸는 방식이다.
달러의 가치가 점점 떨어질 확률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월스트리트 트레이더들은,
달러의 가치 희석이 불안하여 다른 통화로 도망가려고 했다.
그런데,
유로와 엔은 더 개판 상황이었다.
도피처를 찾던 과정에서 몇몇 기술과 금융 사이에 있던 사람들이 비트코인의 존재를 알게 되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때도 찬반이 팽팽했고,
비트코인의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본 사람은 투자은행을 박차고 나와서 관련 비즈니스에 뛰어든다.
그래서 해외 블록체인 진영 구성원들을 보면 월스트리트 투자은행 출신들이 꽤 많다.
국내 블록체인 진영은 대부분 IT 출신인데 비해 좀 다르다.
여하튼,
그래서 기대했던 토론 주제는,
비트코인이 과연 디지털 골드 -법정화폐 도피처-로 자리 잡을지 같은 것이었다.
어쨌든 토론 자체는 재미있게 봤다.
그리고,
유시민 작가의 토론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토론 범위를 제한하여 집중하는 능력
일단 다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비트코인 전반적인 지식을 빠르게 흡수하여 체화하는 부분에서 말이다.
어려운 기술적인 부분은 적절하게 인문적으로 변환하여 이해하고,
기술자들이 하기 어려운 전체를 조망하여 이야기를 풀더라.
그리고 그 지식을 기존에 가지고 있는 인문, 사회, 경제, 역사 레퍼런스와 씨줄낱줄 처럼 단단하게 엮어놓으니 어디 쉽게 뚫릴까.
게다가,
상대가 기술적인 얘기로 풀어나가려 할 때,
유시민 작가는 '비트코인만! 한정해서 얘기해봅시다'
'비트코인을 정리하고 갑시다'로 주제를 포커싱 한다.
즉,
본인이 아는 지식 구역 안에서 철저히 리드한다.
비트코인을 넘어 이더리움부터 다른 코인 얘기로 가면 사실 토론이 정신 없어질 것이다.
아마 반대 진영에서는 비트코인이 포함된 문제를 극복한 다른 코인에 대해 얘기를 하려 하는 것 같은데,
'비트코인으로 한정해서 얘기해봅시다'라는 말에 적절하게 대응할 무기를 잃었을 것이다.
가상화폐 누가 옳고 틀리고 문제를 떠나,
개인적으로 회의나 토론할 때 이렇게 끌고 가야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토론이나 회의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경우를 떠올리면,
내 지식 영역 밖 다른 주제를 들여와서 그 얘기를 하다 보니 페이스 말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반성하게 된 부분, 엔지니어에 대한 존중
나부터도 반성해야 하는 부분이다.
핀테크가 발전하면서,
테크니션, 엔지니어가 들고 온 금융 서비스나 상품이 많아지고 온다.
한마디로 이과가 자기들 만든 것을 문과의 성지에서 팔기 위해 설명한다.
사실 듣고 있으면,
'아, 금융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구나' 뭐 이런 생각이 많이 들긴 한다.
어떤 사람은,
'내가 금융전문가인데, 나한테 금융에 대해서 가르치는 거야?'라며 반감을 가지는 사람도 있고 말이다.
엔지니어 너네가 금융을?
이런 분위기이다 보니,
핀테크 하시는 분들이 고충이 있다.
좀 친한 이사님이 차 마시며 이런 얘기를 하더라.
정부에서 핀테크, 핀테크 해서 금융기관 사람들이 만나주는데,
사실 무시하죠.
대놓고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너네가 금융에 대해서 뭐 안다고 금융 서비스를 만드냐는 뉘앙스를 많이 느낀다고.
가상화폐 토론에서 유시민 작가가 웃는 지점
유시민 작가가 허허하고 환하게 웃기 시작한 지점이 있다.
김진화 대표가 '화폐를 역사적으로 보자면'이라고 말을 꺼내는 순간,
즉 화폐론,
화폐사에 그냥 언급하는 순간.
유시민 작가의 아주 환한 미소를 본다.
'당신이 지금 내 앞에 화폐 역사를 말하는 것인가, 허허허.'로 느껴진다.
화폐사에 대해 얘기 다하고 관련 논리를 푸는 과정에서 어이가 없으면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그냥 '화폐를 역사적으로 보자면요'라는 한 마디에 웃기 시작한다.
문득 보며 떠오른 생각은,
나도 저랬을까?
나도 핀테크 관련 분들이 '노모벳씨, 이 서비스는 기존 금융의 문제점을...'로 시작하는 대표들 얘기에 저런 표정이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름 엔지니어와 기술을 굉장히 존중하는 금융인데도 말이다.
금융은 아직은 문과 엘리트 영역
금융연수원 미래연구센터장 인터뷰 중.
“경제부처 용역을 한 적이 있다. (함께 일하다 보면) 고시출신 엘리트들의 편협함을 느낄 수 있다. 법적 관점에서 보면 그들에게 이것(가상화폐)은 ‘쓰레기’에 불과할 수 있다. (가상화폐는) 더욱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법적 지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슬리퍼 신고 프로그래밍 하는 IT인력들이 뭘 안다고 금융을 운운하느냐는 게 (엘리트들의) 태도다. 이게 바로 레거시다. 한국은 그런 레거시가 강한 사회다. 제가 보기도 (IT인력들은) 티셔츠 하나 입고... 그런데 잘 보라. 그 중 10%는 진짜다.”
우리나라가 워낙 이런 IT에 대한 인식이 이상해서인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금융기관 내에서 본인이 전산관련 학과나 출신이라는 것을 숨기려는 사람이 많았다.
그걸 넘어,
IT에 대해 모르는 것이 오히려 더 금융 전문가 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컸다.
전산실과 관련 회의를 하면,
'제가 경제학과라서...'
'제가 문과라서...'
물론 IT 전문가들이 좀 어렵게 얘기하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많은 부분 얽히기 싫거나,
곤란하거나,
혹은 이 부분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이 그렇게 상관없는 부분에서,
'제가 문과라서...'를 말하는 경향이 큰 것 같다.
정말 테크 전문가들은,
상대가 '제가 문과라서...'라고 말할 때, 꼭,
정말 기술이 궁금하고 관심 있는데 몰라서 하는 말만은 아니라는 것을 참고하길 바란다.
이과와 문과 관점 차이
유시민 작가가 논리의 단단함이나,
알기 쉽게 풀어서 개념을 해체하는 능력에 탐복하면서도,
문과 엘리트의 견고한 금융권 내를 뚫고 들어오려는 이과들의 모습이 생각되어 안타까웠다.
물론,
이게 가상화폐라는 논란의 주제라서 그런 생각이 들겠지만,
가상화폐가 아닌 다른 핀테크 업체도 비슷한 형국일 것이다.
당장,
내가 소속된 금융기관 내에 대표적인 친 IT 파로 불리는 나도 내 업무와 얽히게 되는 사항이 되면,
상당히 까다롭게 구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