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민권운동과 차별철폐 운동이 치열하던 시기 정치적 올바름은 나름의 평등을 위한 운동의 주류 방법론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인종차별 철폐와 페미니즘이 어느정도 보편화되면서 진보는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용어를 과거의 유물처럼 더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이제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용어는 어떤 정치적 행위에 있어 태도를 조롱하는 부정적 용어가 됐다. 시대가 지난 만큼 정치적올바름을 실천을 위해 재위치 시키고자 이 글을 쓴다.
PC에 대한 직접적 냉소와 비난은 악의 평범성과 연관이 있다. 트럼프 당선의 대선 결과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허용선을 이용한 결과일 수도 있다. 백인은 끊임없이 역차별을 호소했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정부8년에 이어 최초여성 대통령이 될 수 있는 힐러리에 대한 거부감일 것이다. 이런 역차별의 구호를 위한 정치적 올바름의 냉소는 나보다 약자인, 보이지 않는, 비존재의 우위에서 서 있는 주체는 힘의 평형 우위를 느낀다. 약자는 언제나 약자고, 이런 상황에서 차별은 다층적으로 구조화 되면서 권력의 수직화가 이뤄진다. 그리고 각 구조의 집단공동체에 속한 개인은 자기합리화를 위해 상징화된 언표 행위를 한다. 이것이 바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허용선의 냉소이다. 그들만의 정의는 바로 이 자기합리화의 법칙이다. 이런 심리는 정의로운 세상에 대한 믿음의 세계의 틀에 박힌 미국 붕괴의 두려움을 표현하는 일종의 선동 행위이다.
모 사이트에서 제시한 사례
사례 1. 요즘 미국 회사나 쇼핑몰에서는 Merry Christmas라고 쓰거나 말함을 금지하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불인정하는 무슬림이 불쾌해한다는 이유였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항상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며 산타클로스가 아이들에게 선물을 줬는데, 단지 무슬림들이 불쾌하다는 이유로 금지를 했다. 트럼프는 '메리 크리스마스' 라고 말도 못하는 이 현상이 말도 안 된다고 발언했으며 대부분 미국인은 동조하며 분노를 표출했다.
사례 2. 미국의 상당수 중고등학교에서는 미국 국기 계양을 금지 했다. 이유는 미국 국적이 아닌 몇몇 학생이 국가주의에 대한 불만의 토로가 시작점이다. 미국 내 학교에서 미국 국기 계양을 금지하는 것에 수많은 미국인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하나의 PC(Political Correctness)의 예가 되겠다.
사례3. 일리노이의 한 배달회사에서 일하는 무슬림 배달 기사가 선물을 배달 중 술이 발견되자, 종교적 이유로 배달을 거부했다. 이런 일이 연속으로 일어나 선물 배달은 중단됐고, 주문고객의 불만이 접수되자 무슬림 배달 기사는 해고됐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회사를 종교탄압 죄로 고소했다. 이 회사는 엄청난 벌금을 물었다. 정부는 그 무슬림 배달 기사에게 24만 달러의 보상금을 줬고, 많은 미국인은 PC가 걷잡을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분노했다.
사례4. 최근 많은 대학교에서 Gender Pay Gap(남녀 연봉 차이) 토론을 최소화 중이다. 경제학자의 연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녀 연봉 차이는 여성운동권이 주장해온 남녀 차별이 설득력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진짜 연봉 차이의 이유는 여학생이 대학교에서 문학이나 심리학, 예술학을 전공하는 반면, 남학생은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은 공학, 물리, 과학, 경제, 경영분야를 전공하기 때문이다. 남성 종업원은 여성 종업원보다 초과 근무(overtime working)를 하는 비율이 훨씬 높아서(미국은 초과 근무 시 적어도 원래 수당의 1.5-2배는 지급) 연봉의 차이가 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경제학자의 조사가 대학교에서 토론주제가 이뤄지기는커녕 남녀차별을 정당화한다며 많은 학교에서 토론 자체를 최소화시키는 사태가 발생했다.
사례5. 지금까지 모든 정치인이 '불법 이민자' 문제를 말하기를 꺼리고 두려워했다. 그 이유는 히스패닉계 표를 잃기 때문이다. 불법 이민자가 일으키는 마약 밀수와 심각한 범죄 등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했다. 한국 정부가 중국/조선족 불법 체류자 문제 해결을 꺼리는 것과 비슷하다. 이 또한 PC (Political Correctness)의 한 예이다. 즉, 정치적 관점에서 '정답' 이 아니다. 불법 이민자 문제를 지적하면 바로 히스패닉의 표를 잃고 인종차별자주의자로 낙인 찍혀 정치적 타격을 받기 때문에 아예 침묵하는 것이 '정치적 정답'이라 생각한다.
이에 대한 반증
2번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콜로라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한 학생이 남북 전쟁 당시 남부 Confederate 국기를 가지고 와서 (남부 주에서는 많이들 여전히 사용하지만, 인종차별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에 따라 모든 종류의 깃발을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즉각 반발로 얼마 후에 취소한 사례가 하나 있을 뿐입니다. 외국인 학생을 위해 미국 국기를 금지한 게 아닙니다.
3번은 배달이 중단되고 손님들의 불만이 접수된 것이 아니라 기사들이 자기는 술은 배달 못 한다고 의견을 전달했음에도 해고됐습니다. 사건 후 재판에서 해당 회사가 술 배달을 다른 배달부에게 맡길 수 있음에도 이들에게 배달을 강요했기 때문에 벌금을 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4번은 임금 차이의 이유는 남녀 직종의 차가 크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이 높고, 직급에 따른 차별이 크다. 단순히 직종과 초과근무 수당으로 판단하지 못한다. (이점은 한국의 사례도 비슷하다.)특히 제조업보다 전문기술과 서비스 업종이 많은 현대사회에서 초과근무 수당의 차이는 커다란 변수가 되지 못한다.
5번은 한국의 경우 불법 이민자는 선거권이 없다. 불법 이민자 문제는 노동산업 구조가 복잡하므로 단순히 지표로 따지기는 어렵다. 미국은 이민자의 국가이고, 이들에게 시민권과 선거권을 부과할 수 있다. 이들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정치인이 표를 얻는 행위는 민주주의에서 당연한 절차이다. 이를 두고 인종차별의 구호를 내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역차별에 대한 구호
어떤 운동에 반발하는 움직임의 정서는 역차별이다. 정서(emotion)란 개인이 현재 가진 감정 상태로, 신체적인 변화에 의한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흥분된 강한 감정으로 정의된다. 여기서 정서의 개념을 가져온 이유는 정치적 올바름에 따른 역차별은 주관적 작용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역차별을 받은 경험보다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 또는 역차별을 받을 것이라는 현재보다 미래의 가정이 주를 이룰 것이다. 현실에서 각종 차별이 일어나는 것을 방관하는 책임을 면피하기 위한 일종의 구호수단이다. 그렇다면 차별의 주체는 누구인지를 따져야 할 것이다. 미국에서 일어나는 인종차별의 주체는 주류백인이라면 비 주체는 백인 이외의 다른 인종이다. 실제로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운동과 실천에 반발하여 역차별을 우려한다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자리가 뒤바뀌는 효과가 있다. 차별하는 당사자가 차별의 대상이 되는 기이한 논리이다. 물론 역차별 당하는 사례가 있을 수 있으나, 차별의 폐해에 비하면 상징적 사건 정도일 것이다. 이런 상징적 사건이 크게 주목 받으면 위에서 든 다섯 가지 사례처럼 사실과 다른 사건이 소문을 타고 번진다. 여러 쟁점이 있거나, 검증되지 않은 사실은 빠르게 퍼져나간다. 인간의 영역이나 공간에 대한 정서는 의식적이라기보다는 잠재의식적인 것으로 자신의 공간이 타인에 의해 침해되는 것으로 느꼈을 때 종종 불안하거나 초조함을 느낀다. 의식과 잠재의 정서는 문제의 원인을 다른 방향으로 위치시킨다. 이것이 바로 선동이다.
선동의 역사적 사례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다. 1차 세계대전에 패한 독일은 사회 불안의 원인을 유대인으로 돌린다. 고리대금으로 돈을 번 유대인이 사재기하고 금융을 점령하여 가난하다는 정서가 팽배했다. 이를 이용한 히틀러는 공포조성과 전쟁의 명분 삼았으며 최후에는 홀로코스트를 저지른다. 대부분의 독일인이 이를 침묵하면 방조했다. 공동체의 일원이자 이웃인 유대인에게 눈을 돌린 계기는 바로 선동이었다. 나는 피해자이고, 원인은 그들 때문이다.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은 사유하지 못한 인간에 의한 악의 기원을 설명하는 용어였다. 정치적 올바름의 이면에는 또 다른 공백을 구축하기 위한 악의 평범성이 위치하는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은 상반된 주장에서 비롯됐다.
68혁명 이후 1970년대 진보적인 활동가는 차별적인 언어 바꿔 쓰기, 소수집단 우대정책 시행, 대학의 교과과정 개편을 구체적 실천운동으로 했다. 이런 세 가지를 지지하는 활동을 묶어 정치적 올바름 운동(Political Correctness)라는 용어가 나왔는데, 이는 세가지 활동을 반대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나왔다. 반대파에 의해 내린 정의는 공산주의자의 당 강령에서 비롯됐다든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든지, 여성주의 운동으로 오해가 주를 이룬다. 여성 차별적인 단어를 쓰지 말자는 언어 바꿔 쓰기 운동에 공감하며 각종 차별을 철폐하자는 흑인운동, 동성애, 평화주의자, 환경주의자가 참여하면서 보편적 운동으로 확대됐음을 명심하자.
이후에 많은 반대론자들이 부정적인 PC의 정의를 내려 PC는 논쟁적인 용어가 됐다. PC 운동가는 나름의 실천을 위한 구호였다면, 반대자들은 PC에 의미를 부여하며 비판하거나 조롱하는 대중적 용어가 됐다. 진보적인 PC 실천자는 PC에 명확한 의미를 부여하여 자신만의 정의를 내리며 규정하지 않았다. 반면에 반대자는 PC에 의미를 부여하고 규정화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자극적인 용어 정의가 그 사례이다. ‘괴물 같은 태도’, ‘강제하려는 기소장’ 등 흑백논리에 따라 내려지거나, 수사적인 정의가 다수였다.
온라인 옥스포드영어 사전에 수록된 Political Correctness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받거나 차별받는 그룹을 배제하거나 하찮은 존재로 만들거나 모욕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표현이나 행동을 피하는 것: 예시) 여자들은 인권에 대한 그의 입장과 정치적 올바름 때문에 그를 좋아한다.
언어의 정의는 전쟁과도 같다. 사회적 운동으로 하나의 단어가 생성되면 흑백논리가 대세를 이룬다. PC의 경우도 하나의 실천운동으로 나타났다면, 반대편에서 그 실천의 의미를 퇴색시키기 위한 결과다. 즉, 전통적으로 “보수는 의미를 부여하려 하고, 진보는 명분을 찾으려 한다.” 진보는 새로운 사회적 이론을 만들면 보편적 공감을 받으려 명분에 충실해지려고 한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보수는 의미를 변색시켜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언어는 기호화되어 있고, 기표와 기의로 나뉜다. 이전에 기호의 의미작용이 중요했다면, 모더니즘 이후 기호의 표시, 기표가 중요하다. 이런 새로운 언어 창출에 따라 양진영은 언어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PC라는 새로운 용어가 만들어지면서 진보는 대의를 위해 실천을 강조했지만, 반면 보수는 자신에게 유리하게 의미를 위치시킨 것이다. 이에 따라 시간이 흐르며 PC는 어느 정도 부정적 용어로 변질 중이다.
다시 악의 평범성과 PC로 돌아와 설명하면, 반대자들이 PC를 조롱하는 이유는 둘이다.
하나는 사회 변화에 반하여 기득권을 유지하는 보수적 태도이다. 이들은 역차별을 호소한다. 둘째는 표현의 자유를 제약한다는 이유이다. 미국의 경우 PC에 의한 역차별은 주류 백인, 남성, 이성애자 등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 결과가 제45대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당선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PC에 대한 보수주의자의 태도는 수사적이다. 실제로 유색 인종, 특히 흑인은 백인에 의해 차별을 당해왔다. 실제로 차별을 받은 주체는 흑인이다. 그러나 언어 사용 때문에 의미가 달라지면, 차별의 대상은 백인 주류가 된다. ‘역차별’이라는 용어는 추상적일 뿐만 아니라 수사적이다. 그 공안 차별하는 위치에서 교묘하게 차별받는 위치로 변경되는 것이다. 차별행위자들이 차별을 받는다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는 최근에 국내에서 한창 논쟁이 됐던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다.
페미니즘은 여성차별에서 시작했으며, 점점 이론과 행동이 바뀌면서 보편적 인권 운동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자들은 페미니즘의 의미를 왜곡하여 공격함으로써 페미나치, 꼴페미, 극렬페미니스트 등 부정적 인식을 만들었다. 여기에 차별의 주체였던 주류 남성이 오히려 피해자로 전환하는 역차별이라는 수사가 가득하다. 반대자들은 PC처럼 흑백논리의 과격한 용어를 사용하여 공격한다. 차별에 대한 가해의 책임을 회피하고, 저항의 메시지를 주장하는 메신저를 공격하여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방법론 이다.
하이데거는 “존재는 언어의 집에서 짓기 시작해야 한다.”라고 했다. 언어는 나와 타인의 존재를 규정하는 중요한 기초이다. 이런 언어의 의미 왜곡은 존재의 사유와 연관이 있다.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하며 독일인이 사유가 부족했다고 했다. 하나의 틀에 갇혀 사유하지 못함은 악의 탄생을 기만한 것과 같다. 내가 어떤 기득권에 있다고 해서 그 틀에 갇혀 차별을 눈감거나, 더 나아가 오히려 역차별을 받는다고 말하는 행위는 악의 평범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제 PC보다 개인과 공동체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는 정치적 책임이라는 용어가 더 넓은 범주이지 않을까? 두 번째 논쟁, 표현의 자유에 대한 글은 별도로 다시 쓰겠다. 마지막으로 인문학/법학 교수인 스탠리 피시가 남긴 말을 인용한다.
There’s no such thing as free speech: And it’s a good thing, too.
표현의 자유 같은 것은 없다. 그리고 그건 잘된 일이다.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려면, 주장하는 측의 표현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압력이 다른 표현의 자유를 막는 사실도 고려해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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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에 대한 찬반은 어느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검열에 대한 두려움과 자유의 제약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측과 책임을 중점을 둔 중립적인 입장, 표현의 자유 보다 공리를 따지는 입장 등이 첨예한 의견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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