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어시장 방랑기 / 안해원

in kr •  7 years ago  (edited)



어시장 방랑기 / 안해원

골목마다 아지매들이 발길을 붙잡는다
나 좀 보소 여기 좀 보소
궈서도 묵고 회 쳐서 묵고 쪄서도 묵고 지져서도 묵소
아지매들의 살벌한 거래에
입을 딱 벌린 꼬막
납작 엎드려 눈만 껌뻑이는 광어
찔러도 죽은 척 꿈쩍도 하지 않는 해삼
황급히 피를 토하듯 병색이 완연해지는 멍게
배를 드러내고 누워 사후경직을 연기하는 우럭
비릿한 언어들이 지느러미를 치며 유영하는 삼천포어시장은
연기 지망생들로 북적인다
바구니 위에서 바다로 머리를 돌리고
나란히 줄지어 바람을 타는 서대의 무리
선착장을 뒤덮은 전어떼가 몰고 온
먼바다 은빛 출렁임에 까딱까딱 장단을 맞추며
벽에 걸린 문어발들도 소리판을 드러내고
나 좀 보소 궈서 묵소 외치는 곳
바다를 삼켰는지 바다가 삼켰는지 알 수 없는
심장이 팔딱팔딱 싱싱해지는 삼천포어시장에서
목구멍에 미끌리듯 쏙 넘어가는 오싹한 맛에 핑글 돈다
조용히 구경만 하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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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한 좋은 글 감사해요 항상 :D
응원!!

찿아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