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불량중년 웹개발자 @OPRTH입니다.
오늘은 지난번의 글에 이어 계속 써볼까요.
국문학도가 개발자가 되기까지(상) - https://steemit.com/kr/@oprth/6fruba
가만있자.... 개발자로서의 첫 걸음을 내딛은 것까지 썼군요.
네. 그렇게 첫 직장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사원 수 10명도 안되는 벤처기업에 들어가서 제가 맡은 첫 일은 사업 기획서 두개를 쓰는 일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장님은 애초에 저를 개발자로 일을 시킬 생각도 없었던 듯 합니다. 국문학과를 나왔다는 전공이 발목을 잡은 거죠. 아마 '네가 잘하는건 코딩이 아니라 글 쓰는거다. 이거나 해라' 라는 거였나 봅니다. 그걸 완료하고 났을즘 회사의 운영지원업무와 기획업무를 병행하는 롤을 가진 경력 직원이 퇴사를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그 뒤를 이어받게 된 저는 어느새 회사 제품 영업, 설치, 유지보수, 연구과제사업관리, 심지어는 직원들 월급주고 부가세 신고하고 연말정산하는 회계처리까지ㅋㅋㅋㅋㅋ.
개발 업무 이외의 회사에서 하는 일을 거의 모두 도맡게 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른 도망가야했는데, 저는 '언젠가는 개발자 시켜주겠지' 무리하게 희망회로를 돌려 이 시련을 정면돌파할 미련한 생각을 가져버렸습니다. 급기야는 어느 프로젝트에 PM이 그만두자 그 자리를 대신해서 파견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낮에는 파견현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회사 사무실에서 회사살림을 맡는... 지금 생각해보면 노예나 다름 없는 생활을 9개월동안 하고 있었네요. 그러나 역시 한계는 오는 법. 결국 개발 최선임자에게 충격적인 한마디를 들었습니다.
'너는 개발자같은거 할 머리가 아니다. 이 생활이 힘들면 그만두고 다른 일 알아봐라'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시네. 당신은 뭐가 그리 똑똑하고 잘나서 개발자 하고 있소?' 라고 반박하겠지만, 그때의 그 한마디는 저를 완전 의욕상실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러고는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며칠 뒤 사표를 내고 경기도 모 처의 금속 절삭가공을 하는 공장에 취업했습니다. 그리고....
아무 대책없이 가기도 했었고 또 완전히 다른 새 일터를 옮긴 시도였으나 3주만에 해고를 당했습니다. 격무와 스트레스로 상당히 몸이 안좋아져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금속가공을 해야하는 산업현장에서는 제 몸상태에 의구심을 품고 혹시라도 있을 산재 문제때문에 저를 '과감히' 정리해버렸습니다. 그렇게 허무하게 직장을 잃고 ㅋㅋㅋㅋㅋ 저는 차마 고향집의 부모님에게도 말 못하고 약 한달간 거기서 직장을 다니는 척하며 다른 곳을 알아봤습니다.
다행이 이번엔 한달 정도만 두고 지방에서 새 직장을 얻었습니다. 그곳에서야 저는 비로소 진짜 개발자로서 제대로 된 업무를 받고 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첫 업무는 wordpress라는 컨텐츠 관리시스템에서 php언어로 플러그인을 개발하는 거 였네요. 저는 php를 할 줄 몰랐지만 다행이도 java만큼 어려운 언어는 아니어서 퇴근후 혼자 스터디를 해서 익히고, 제 상사도 그걸 알고 있었던지 무리하게 일을 시키지 않고 서서히 능력향상이 되도록 업무를 주고 잘 가르쳐줬던 것 같습니다. 이 때 했었던 프로젝트는 특히하게도 php 기반의 솔루션과 java기반의 솔루션을 모두 개발해서 하나의 시스템처럼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 흔하지 않은 케이스이지만 오히려 저에게는 두가지 다 실무 감각을 익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그 외 몇개의 프로젝트를 더 수행하면서 그제서야 java 언어에 대해서 감을 잡고 익숙해져갔습니다. 역시 실무를 통해서 배우는게 제일 빠르더군요. 정말 열심히 배워가며 성장하고 일했는데.... 그런데.....
사건은 한 순간에 일어나서 걷잡을 수 없이, 돌이킬수 없이 진행되더군요. 그렇게 회사에 들어가 일한지 1년도 안되어...
사장님이 심장마비로 급사하셨습니다. 원인은 과로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회사 재정상태가 악화되고 월급 지급이 며칠씩 늦어지고, 잦은 장거리 출장을 하시던 사장님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게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히 안색이 햇볕에 그을린 것처럼 검었던 게 기억이 나더군요. 그런 얼굴을 하고 계시던 분이 아니었는데 말이죠.
회사를 이어받을 가족분이 계셨지만 이미 재정이 악화되어 빚이 더 많은 회사를 운영하는 것보단 폐업하는 게 낫겠다는 결정이 며칠만에 통보되었고, 마지막 월급은 받지도 못하고 그렇게 사무실 모든 집기류를 정리 후 회사문을 잠궈야 했습니다. 다시 또 백수가 되었네요 ^^
여담으로 이 회사에 있을 때 들어온 오더중에 비트코인 거래소를 구축해달라는 의뢰가 있었습니다. 그때가 2013년도였고 대략 당시 비트코인 가격이 16만원 가량 했던 걸로 기억하네요. 그때 인센티브로 10비트코인을 주겠다고 했었는데, 사장님이 살아계시고 그때 그 일을 마쳐서 비트코인을 받았더라면, 그리고 그걸 지금도 갖고 있었더라면 지금쯤... ㅎㅎ
이후 전직장에서 같이 일하던 분이 같이 일하자는 제의를 하셔서 새로 ICT부서가 만들어진 회사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새로 시작하는건 좋은데... 이제 2년 남짓 경력을 가진 저에게 10년쯤 되는 고급 개발자 레벨의 업무를 바라고 있는 분위기에서 이건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단 3개월만에 회사를 또 옮겼습니다. 그럴거면 고급 개발자에 준하는 연봉이나 주던지... ㅎㅎ 다행이도 전 회사에서 알게된 또 다른 분이 자신의 회사에서 같이 일하자고 제의를 하셔서 공백없이 바로 회사를 옮길 수있었습니다. 그리고 몇년이 흘러 지금도 그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이 회사에서 초기에는 ERP, 홈페이지, 쇼핑몰 개발 등 웹에이전시의 웹개발자가 통상적으로 하는 업무를 했었습니다. 그러다 몇년 전부터 회사가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발을 딛는다는 목표를 가지고 전력 에너지 기반 ICT사업에 힘쓰더군요. 통상 전력에너지ICT는 전문분야이므로 그 분야 기술연구를 해야할 전문가가 필요하겠는데, 누구를 영입해서 역량을 강화하는 게 아니라 맨땅에 헤딩으로 시작해서 성장한다는 참으로 무식한 전략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분야의 웹파트 개발 개척을 하필 저한테.... 그 앞에는 엄청나게 많은 세부 관련 기술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로써 저는 생판 모르던 전기공학, IoT, 대용량 데이터 분산처리 등 오만 잡것을 다 알아가며 개발을 해야하는 범용 웹개발자로 변모해갔습니다.
전공도 아니었고 부침도 겪었지만 지금도 개발자로 일하고 있을 수 있었던 이유를 몇가지 생각해보았는데요.
1. 어쨌든 밥은 먹고 살아야 하니까.
-딱히 다른 것을 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어쨌든 먹고 살아야겠다는 일념하에 버텼던 것 같습니다. 이게 제일 컸죠.
2. 국문과를 헛다닌건 아니었네.
- 통상 수학과를 나오면 계산을 잘할거 같고, 성악과를 나오면 노래를 잘할 거라는 고정관념같은게 있죠. 국문과를 나오면 글을 잘 쓸것 같다는 고정관념도 당연히 있습니다. 뭐 다들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요 ^^ 저는 글을 잘 못쓰지만, 읽는건 잘 합니다. 학과 세부전공중에도 20세기 현대 한국 소설 비평이 주요 전공이었거든요. 이 분야는 텍스트를 읽고 그 내용의 핵심을 잘 이해하고 정수를 뽑아내서 정리하는 기본 소양이 필요합니다. 학과 공부하면서 그것만큼은 습관이 되다 보니 항상 정독하고 요점 정리는 잘 해냈던 것 같습니다. 기술 서적을 읽을 때도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뭐가 핵심인지 그때그때 잘 짚고 넘어가는거, 그거 개념 이해에 상당히 도움이 되더라구요. 이는 결국은 커뮤니케이션의 수락에 관해서 주요 이점으로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사업계획서, 개발요구사항정의서같은 문서를 먼저 읽고 이 프로젝트는 어떤걸 개발해야 하고 뭐가 핵심이라는 걸 파악하는 데에도 훨씬 수월했었습니다.
3.새로운걸 해보자
-IT분야는 매해 새로운 기술 트렌드가 쏟아져 나옵니다. 저는 거기에 관심을 계속 두면서 끊임없이 알아보고, 최소한 어떤 개념의 기술인지, 여건이 되면 테스트를 꼭 한번은 해보고 삽니다. 제 생각에 이 분야는 나이도 나이지만 새로운 기술 트렌드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질 때가 개발 현업에서 물러나야 될 때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산업 현장은 끊임없이 변하는데, 하던 것만 하겠다는 안일한 생각은 결국 도태를 부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더 늦기 전에 블록체인 분야의 업무를 제대로 해보고 싶네요.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는 사실상 당장 접할 기회가 없어 바라만 보고 있지만, 암호화폐의 public 블록체인이 아닌 private 블록체인이 산업현장에서 일반 통용되는 날이 얼마 안남았다 생각이 듭니다. 그때 닥쳐서 대응하는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고, 지금 해두지 않으면 안될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시 회사를 옮겨서라도 꼭 해보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네요. 그래서 또 요즘은 옮길 회사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이젠 나이도 무시할 수없어서 생각대로 잘 될런지는 모르겠지만.ㅎㅎㅎ
언젠가 제가 스스로 이젠 그만하자는 판단을 할 때까지는 계속 버티고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도전하는 삶으로 개발자 라이프를 관철하고 싶습니다. 긴 뻘글 하편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저도 간간히 private chain에 대해 공부 중입니다. 좋은 글들 부탁드리겠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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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그런데 아직 private block chain은 시작도 안했네요 ㅎㅎㅎ 앞으로 도전해봐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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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도전 기대하고 응원하겠습니다.
팔로우하고 갈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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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저도 맞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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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군분투의 시간이 결국 님의 자양분이 되었... 죠? ^^
항상 새로운걸 배우고 도전한다는 것이 저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나이 먹는다는게 그런거겠죠.
새해 복 그리고 스팀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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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결국엔 개발자로서뿐만 아니라 IT업계를 전반적으로 큰 그림ㅇ로 볼 수 있는 역량이 생겼다고 위안(?)하고 있습니다 ㅎㅎ
새해복 스달로 많이 받으십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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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팅 및 팔로우 하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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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맞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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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계시군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암호화폐 관련 회사로 옮기시기를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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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ㅎㅎ 근데 거래소는 불러주는 데가 없네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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