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 대한 예의

in kr •  7 years ago  (edited)

상암동DMC와 수색동을 잇는 지하터널을 걷고 있을 때 뒤따라 걷던 청년이 아는 체를 했다. "좀 전에 영화시사회에서 뵈었던 분이죠? 이 지하통로를 걸을 때마다 전 묘한 느낌이 들어요. 이 터널을 빠져나가는 순간 전혀 딴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니까요."

상암동에는 디지털로 무장한 고층빌딩들이 제각기 휘황찬란함을 뽐내며 서있지만 수색동 언덕배기에는 고만고만한 서민주택들이 서로 어깨를 내주며 자리잡고 있다. 얼마전 개봉관에서 봤던 '1987'과 조금 전 시사회에서 본 '국가에 대한 예의'에 대한 나의 비교감상평이 이와 같다고나 할까...


<상암동 DMC와 수색동을 이어주는 지하통로. ⓒ 김종성>

1987년과 1991년, 몇 년의 시간차는 있지만 두 영화는 모두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987은 수백만의 관객을 동원하며 세간의 큰 주목을 받고 이미 우리사회의 주류가 되어버린 *86세대들의 화려한 무용담을 쏟아내고 있다. 대통령을 포함한 영향력있는 사람들이나 그렇게 되고 싶은 많은 사람들은 과거로부터의 공통의 기억을 소환해내고 그것을 통해 오늘날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확인받으려 한다.

'국가에 대한 예의'는 아직 개봉되지는 못했지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새로운선택상을 수상하였다. 이 영화는 과거를 말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과거가 준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고자 시시껄렁한 삶을 의식적으로 선택하지만 그 삶을 대하는 진실된 태도와 힘에 의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상암동 MBC근처. 별천지다. 근처에 시사회가 열린 영상자료원이 있다.>

<인터넷에서 찾은 수색동 사진. 휴대폰 밧데리가 다 되어 수색동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국가에 대한 예의'는 다큐멘터리 음악영화이다. '강기타'가 치는 연주곡 핸델의 사라방드(Sarabande)를 내가 감명깊게 들었던 것은 아마 고 김대중대통령의 추모식장에서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느린 템포와 장엄한 곡조는 그 격정의 세월을 함께 했고 먼저 사라져갔던 수 많은 벗들에 대한 회한에 젖게 만들었다. 사라방드는 원래 추수감사절같은 때 민간에서 유행한 빠른 춤곡이었다고 한다. 너무 관능적이어서 사람들을 흥분시키기 때문에 금지까지 시켰던 음악이라고 한다. 우리 초상집문화에도 "다시라기"라는 것이 있다. 죽음을 보내며 새생명을 기대하는 흥겨운 놀음굿이다. 현재는 과거를 품고 있지만 미래를 잉태하는 삶의 현장이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

상암동과 수색동은 지하통로를 통해 연결된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는 서로 배제할 경쟁자라기 보다는 함께 보완되어야 할 동반자이다. 생면부지의 사람들도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친해져간다. 가는 길 버스차장 넘어로 보았던 꽁꽁 얼어있는 한강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얼음장 밑으로 봄이 부르는 물소리가 들려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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