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투자사와 제작사의 수익배분율 논쟁

in kr •  6 years ago 

6대4인가 5대5인가

"대표님, 저희도 책 보여주세요.” 모 투자배급사 투자 담당 직원
“모 신생 투자배급사가 계약서에 제작자 지분을 50% 인정해준다던데. 다른 투자배급사들이 지원을 안 한 지 오래된 아이템 기획·개발비도 넉넉히 챙겨준다고 해서 다음 영화도 그쪽으로 갈까 해.” 모 제작자
“투자자들이 아주 난립니다. 제작사 지분을 4에서 5로 올리면 투자자들이 짊어져야 할 리스크는
그만큼 더 커진다고 불만이에요.” 모 창투사 관계자

“수익배분율을 기존의 6대4에서 5대5까지 양보한다더라.” “이제는 사라진 기획·개발비를 부활시켜 무려 10억 원이 넘는 금액을 투자했다더라.” 최근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이 충무로에서 흘러나왔다. 진원지를 확인해보니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였다. 올해 초 정현주 전 쇼박스 투자제작 본부장이 화장품 브랜드 AHC를 1조 원에 매각한 이상록 전 카버코리아 회장으로부터 투자받아 세운 신생 투자배급사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는 정확한 사업 규모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나, 기존의 대형 투자배급사로부터 재능 있는 젊은 투자 담당 직원들을 영입해 매우 적극적으로 라인업을 확보하고 있다. 풍문에 따르면 배급 시장에 뛰어든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는 라인업을 확보하기 위해 제작사에 유리한 계약 내용을 제시한다고 한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가 키위미디어그룹과 함께 처음 배급한 영화 <악인전>의 언론·배급 시사를 며칠 앞둔 지난 5월 3일, 정현주 대표는 기자와의 연락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 투자·배급사를 다니면서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을 조금씩 개선하고 반영하고 있지만, 아직 공개할 수준의 내용은 아니다. 점점 더 개선해 나갈 의지는 분명히 있고, 더 고민 하고 있다.” 수익 배분율을 6대4에서 5대5로 단번에 바꿀 만큼 파격적인 제안을 제작사에 제시한 적은 없다는 얘기, 곧이곧대로 믿어야 할까. 정현주 대표가 말을 아끼고 겸손하며, 매사 조심스러워하는 성격임을 고려할 때 수익배분율 5대5 조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제작사가 솔깃해할 만한 내용의 계약을 제시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수익배분율 5대5가 대체 뭐기에 충무로가 술렁이는 걸까. 보통 한국영화가 극장 개봉해 거둔 수익은 극장과 투자 배급사가 5대5로 나눈다. 그렇게 나눠 가진 수익을 투자배급 사와 제작사는 6대4로 배분한다. 극장 수익을 투자배급사와 제작자가 6대4로 나누는 건 전 세계에서 한국에만 있는 계약 내용이다. 제작자의 지분은 인건비나 프로덕션 비용으로 책정되는 할리우드나 중국과 사뭇 다르다. 특히, 할리우드나 중 국 영화인들은 한국의 수익 배분율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이미 프로덕션 진행비를 지불했는데 왜 수익을 나눠야 하는 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중국 메이저 투자제작사 완다 투 자팀의 한 관계자는 “중국에서는 투자자가 곧 제작자다. 제작자의 지분은 인건비에 책정되기 때문에 한국처럼 수익을 추 가로 지급하진 않는다”고 말한다.

수익배분율 조정, 가능할까

한국영화 수익배분율이 외국영화와 동일하게 5대5로 조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은 오래된 일이다. 2000년대 들어 한국영화 관객 점유율이 외국영화 관객 점유율을 압도하면서 제작자들은 한국영화 수익배분율을 재조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때마다 투자자들은 영화가 수익이 나면 제작사와 나누고, 손해를 보면 투자사가 모두 떠안아야 하는 상황을 강조하며, 6대4를 유지해야 한다고 맞받았다. 양쪽의 이 같은 팽팽한 신경전은 2007년부터 제작사들이 도산 위기에 내몰리면서 가라앉았다. 2008년 한국영화가 -43.5%라는 역대 최저 수익률을 기록한 뒤 이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수익배분율을 비롯한 투자배급사와 제작사의 관계가 비대칭적으로 조정됐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투자배급사는 투자계약서에 배급 수수료를 포함해 해외수출, 라이선싱, 제작 관리 및 금융비용 등 과거에 비해 더욱 세분화된 각종 수수료를 제작사에 요구했고, 그 결과 수익배분율이 6대4에서 7대3, 심지어 8대2나 9대1까지 이르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위험 부담이 높은 프로젝트의 경우, 투자배급사가 부당하게 제작비를 전가하거나 배급수수료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기도 했다.

최근에는 투자배급사와 제작사 간의 계약 내용이 다양해지면서 6대4니 5대5 같은 구분이 의미가 없어진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투자사와 제작사 간에 이루어지는 계약 내용은 제작사의 역량, 프로젝트의 위험도, 기획의 힘 등 여러 조건에 따라 정해진다. 기획이 아무리 좋아도 감독, 출연배우 등에 있어 리스크가 큰 프로젝트라 판단되면 투자배급사가 제작사에 7대3이나 8대2 계약을 제시할 수 있고, 제작사 또한 별다른 방도가 없으면 이를 따를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제작에 들어가야만 최소한의 경상비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많은 한국영화가 스타 감독과 배우 ‘패키지’에 목을 매단 것도 그래서다. 이 때문에 배우 개런티가 급격히 상승했지만, 그럼에도 이들을 중심으로 캐스팅이 이뤄졌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배급사가 수익배분율 5대5를 제안했다는 소문이 흘러나왔으니 충무로가 요동칠 법도 하다. 그렇다면 이 제안이 실제로 시장에 던져진다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여전히 많은 제작사들은 신생 투자배급사에 시나리오를 주기 주저 한다. 제작자 A씨는 “우리가 기존의 대형 투자배급사에 책을 먼저 주는 이유는 이들이 안정적인 배급 라인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수익을 나누는 계약 내용보다 우리 영화 앞뒤로 신뢰감 있는 영화들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지, 1년 라인업으로 어떤 작품들이 포진되어 있는가를 더 따진다”고 말한다. 그 는 외려 신생 투자배급사의 새로운 제안이 무분별한 영화 제작 의 증가와 그로 인한 영화 산업의 위기로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다.

“새로운 돈이 영화 산업에 들어오면서 제작 편수가 늘어나게 되었는데 주연을 맡을 배우가 한정되어 있다 보니 시장에서 티켓파워가 검증되지 않은 배우들이 주연을 맡게 될 것이다. 그러면 영화의 만듦새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고, 그것이 수익률 악화로 이어지면 영화산업에 위기가 닥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논리다. A씨는 “수익배분율을 5대5로 조정할 경우 투자 조합에 돈을 넣는 여러 창투사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힐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작자 B씨 또한 A씨와 비슷한 의견이다. B씨는 “신생 투자사가 라인업을 확보하기 위해 파격적인 제안을 제시한다고 해도 제작사가 그 안을 받아들일지 미지수”라며 “그들은 안정적인 배급 라인이 없기 때문에 영화를 시장에 내 놓았을 때 극장이 그들의 영화를 얼마나 신경써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 말은 반대로 신생 투자배급사가 기를 써서라도 탄탄한 라인업을 꾸리려고 하는 목적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한 투자사 임원 C씨는 수익배분율 5대5 시도가 “단기적으로 경쟁하는 투자배급사 간의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얻을 수 있으나 수익률이 그리 높지 않은 한국 영화산업에서 모든 투자배급사가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아니라고 본다”고 조심스러운 의견을 내놓았다. 라인업 확보 경쟁이 치열한 배급 시장에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신생 투자배급사에겐 수익배분율 5대5 조정은 좋은 카드가 될 수 있지만, 이미 포화 상태에 접어들어 수익률이 낮아진 현재 한국영화 상황을 고려할 때 다른 경쟁 투자배급사들로까지 이러한 제안이 확대될 여지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정책연구원이 발표한 ‘2018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순제작비 30억 원 이상 한국영화 40편의 평균 제작비가 79억 원으로 전년 대비 5.7억 원 상승했고, 순제작비 80억 원 이상 작품은 전년 대비 5편이 증가했지만 추정수익률은 폭락했다. 특히 100억 원 이상 150억 원 미만 규모의 수익률은 –62.7%로 잠정 집계됐고, 순 제작비 상위 40편의 추정수익률 또한 -17.3%로 잠정 집계 됐다. C씨는 “다만, 영화사 월광, 사나이픽처스, JK필름, 덱스터 등과 같은 제작 역량이 뛰어난 제작사의 경우 향후 5대5뿐만 아니라 제작사에 더 유리한 내용으로 계약이 진행될 수 있다”고 밝혔다.

슬라이딩 계약방식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는 가운데 영화산업 주요 종사자들 사이에선 ‘슬라이딩’이라는 이름의 계약방식에 대한 논의가 나오고 있다. 개봉 영화가 손익분기점에 도달하기 전까지 투자배급사는 제작사에 약속된 계약금만 지불하되, 손익분기점을 넘으면서 발생하는 수익에 대해서는 투자배급사와 제작사가 맺은 계약 내용에 따라 인센티브를 제작사에게 지불한다는 내용의 계약이다. 가령, A라는 영화의 손익분기점이 250만 명이라고 치면 투자배급사는 제작사에 제작자의 인건비 혹은 프로덕션 비용만 지불하고,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는 순간부터 100만 명 단위로 얼마씩 추가 보상을 하는 식이다. 그런 점에서 슬라이딩 보다는 인센티브나 러닝 개런티가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이는 투자자의 손실을 보전하고 제작자의 창작을 보상하기 위한 목적으로, 투자자와 제작자 양쪽 모두를 만족시킬만한 계약 방식으로 보인다. 넷플릭스를 포함한 할리우드나 중국의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제작자나 감독 등의 창작자와 계약할 때 주로 사용하는 계약 방식이며, 영화 이외 기타 산업에서 계약을 맺을 때 사용하는 보편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당사자의 요청에 따라 회사 이름을 명시할 수 없지만, 한국에선 이미 몇몇 회사들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배급 계약을 맺으려는 시도가 있다.

합리적으로 보이는 ‘슬라이딩’ 계약이 한국 영화산업에서 시도되고 안착되려면 넘어야 할 관문이 많다. 일단 투자배급사와 제작사가 슬라이딩 배급 계약을 맺으려면 일단 수익배분율 6대4가 깨져야 한다. 동시에 제작사는 프로덕션 진행 비용만 챙기고, 10%의 수익만을 갖겠다는 극단적 방안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40%라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높은 제작 지분을 제작사가 순순히 내놓을 수 있을까. 빚이 많은 영세한 제작사일수록 ‘한방’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많은 제작자들은 슬라이딩 계약을 원치 않을 가능성이 높고, 그렇기 때문에 수익 배분율 6대4는 깨질 가능성이 낮다.

논쟁은 계속된다

슬라이딩 계약을 두고서도 제작자와 투자자의 입장은 엇갈린다. 제작자 D씨는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같은 몇몇 신생 투자배급사를 제외하면 기획개발비를 넉넉하게 투자하는 회사들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템을 발굴하고 개발하는데 시간 과 비용이 많이 걸리니 그것에 대한 보상이 충분해야 한다”면서 “그런데 프로덕션 비용만 받고 1대9로 수익을 배분하는 건 불공정한 거래”라고 말한다. 반면, 제작자 B씨는 “나 또한 제작자이지만, 투자자들이 프로젝트의 가능성만 믿고 리스크를 감당한 것에 대한 보상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아무리 제작자가 개발하는데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해도 흥행은 다른 문제이지 않나”라며 “기획개발비의 경우 프로덕션 비용에 반영되도록 요구하면 되는 문제다. 좀 더 나은 계약 조건을 투자사에 요구하려면 제작자 스스로 제작 능력과 흥행 결과를 입증하는 수밖에 없다”고 전한다.

한 창투사의 수석 심사역은 “슬라이딩 계약이 투자사와 제작사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합리적인 계약이긴 하다. 창투사를 포함한 투자조합에 참여한 투자자들 또한 좀 더 안정적으로 돈을 투자할 수 있는 방식의 계약이다. 그러나 제작자들이 40%라는 제작 지분을 쉽게 포기하진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올해 관객 수 1700만 명을 훌쩍 넘긴 영화 <극한직업>을 예로 들면, 제작사에게 돌아가는 수익이 어마어마하다. 이 수익으로 이전에 손해 본 영화에 대한 손실을 메우고도 많이 남는데 이걸 포기한다? 제작자들이 손에서 쉽게 놓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한국영화 산업에서 변화나 시도는 불가피한 현실이다. 지난해 추석 시장과 크리스마스 시즌에 한국영화가 참패해 불거진 한국영화 위기론은 <극한직업>이 ‘천만 영화’에 등극 하면서 다시 잠잠해졌지만, 투자자들은 여전히 한국 영화산업의 향방을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무엇보다 최저임금법과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는 최대 20% 상승하면서 손익분기점이 대폭 뛰어올라 흥행에 대한 부담감이 더욱 커진 상황이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메리크리스마스, 스튜디오 썸머 같은 신생 투자배급사가 시장에 뛰어들면서 라인업 확보 경쟁이 더욱 치열한 반면, 현재 CJ엔터테인먼트,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 NEW 등 대형 투자배급사는 내년 라인업을 완전히 꾸리지 않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수익배분율 5대5든, 슬라이딩 계약이든 작은 변화와 시도가 향후 한국 영화산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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