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투명한 5월 극장가로 본 한국영화 산업의 현주소

in kr •  2 years ago 

시장은 회복했지만 볼만한 한국영화가 없다. 엔데믹 시기에 막 진입한 한국 극장 산업을 지난 1년 간 지켜보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지난해 극장가는 전반적으로 회복세를 보였다. 얼마 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발표한 보고서 ‘2022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전체 극장 매출액은 1조 1602억 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98.5% 증가했다. 전체 관객수 또한 1억 1281만 명을 동원해 전년 대비 86.4% 늘었다. 팬데믹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2019년의 60.6%, 전체 관객수는 49.8% 수준에 불과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연 매출 1조 원, 연 관객 수 1억 명을 돌파했다는 점에서 희망이 보였다. 지난해 상반기와 연말에 각각 개봉했던 <범죄도시2>와 <아바타 : 물의 길> 두편이 팬데믹으로 인해 위축된 시장 상황에서 다시는 ‘천만 영화’가 나오기 힘들 거라는 예상을 깨고 연달아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관객은 볼 영화만 있다면 언제든지 다시 극장을 찾을 거라는 사실이 입증됐다. 더군다나 <범죄도시2>의 천만 관객 동원에 힘입어 한국영화 관객 점유율은 55.7%를 차지하면서 2년만에 외화보다 높은 점유율을 차지했다. 한국 극장가는 전통적으로 한국영화와 외화가 점유율을 각각 절반씩 차지하는 성격의 시장인데 지난 2021년 코로나19로 인해 한국영화 점유율이 30.1%까지 하락하면서 10년 만에 관객 점유율을 외화에 내준 바 있다. 콘텐츠 산업의 질서가 극장에서 OTT로 재편됐고, 그로 인해 관객의 관람 패턴이 OTT로 넘어간 상황에서 이 같은 숫자들은 여전히 극장을 찾는 관객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소 고무적이다.

이처럼 시장이 회복세를 보였음에도 아쉬운 점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범죄도시2><공조2: 인터내셔날><올빼미> 등 몇편의 한국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관객이 아직 극장에 희망이 있다는 신호를 시장에 여러 차례 보냈는데도 극장도 배급사도 제작사도 그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게 그것이다. <외계+인 1부> <비상선언><한산 : 용의 출현><헌트> 한국영화 4편이 한주 간격으로 차례로 맞붙었던 지난해 여름 시장은 제 살 깎아먹기식 경쟁으로 인해 모두가 활짝 웃지 못했다. 지난해 겨울 시장에서 <아바타: 물의 길>과의 경쟁을 불사했던 윤제균 감독의 <영웅> 또한 326만여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를 불러모으면서 출혈을 감수해야 했다. 기회는 올해 설 연휴 시장에 또 있었다. <교섭>과 <유령>, 한국영화 두 편이 같은 날 나란히 개봉했으나 172만여명과 66만여명을 각각 불러모으며 손익분기점을 넘는데 실패했고, 3월 개봉한 <대외비> 또한 72만명(3월 17일 기준)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지난해 여름 시장부터 올해 4월 현재까지 극장 개봉했던 한국영화가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시장의 질서가 OTT로 넘어갔고, 그로 인해 관객의 관람 패턴이 안방을 선호하는 추세로 옮겨간 것도 주요한 원인이겠지만, 시장이 더 살아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냈음에도 한국영화를 제때 풀지 않고 방어적인 배급 전략을 펼친 것도 패착 중 하나로 보인다. 이하영 하하필름스 대표는 “지난해 <범죄도시2>가 천만 관객을 동원했을 때 각 배급사들이 창고에 묵혀두었던 한국영화들을 풀어서 관객을 더 적극적으로 극장으로 끌어들였어야 했다”며 “한두달 간격으로 라인업을 내보냈던 보통의 배급 전략은 지금 같은 산업의 위기 상황에선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다보니 지금은 3, 4년 전 기획한 한국영화가 팬데믹을 거치면서 뒤늦게 개봉하고 있는 상황이다. 관객 입장에선 “갓 제작해 따끈따끈한 OTT 시리즈나 영화를 안방에서 편하게 감상하다가 철지난 영화를 보기 위해 굳이 비용과 시간을 들여 극장까지 가는 수고로움을 감수하기 힘들다”는 반응이 많다. 물론 각 배급사들은 “지난 3년 간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불확실한 시장 상황과 상승한 영화 티켓값 같은 예측하기 힘든 변수들로 인해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밖에 없다”(한 대형 배급사 배급 관계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좀 더 공격적으로, 적극적으로 배급 전략을 운용해 골든 타임을 살렸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밖에도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처럼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OTT 공개로 선회한 작품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산업 전체가 극장의 부활에 온 힘을 걸어야 하는 위급 상황에서 “아쉽다”는 목소리도 많다.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상승한 영화 티켓값 또한 관객의 극장 관람을 주저하게 하는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3사는 팬데믹을 거치면서 누적 적자가 수천억원에 달할만큼 경영상의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영화 티켓값을 올렸지만, 그럼에도 영화 티켓값 상승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재고했어야 한다는 말이 영화계 안팎에서 나왔다. 엔데믹에 진입하면서 캠핑, 골프, 해외 여행 등 여가 시간을 즐길 만한 취미 생활이 다양해졌지만,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행위는 여전히 대중에게 가성비 높은 취미 생활이다. 그런 상황에서 극장이 영화 티켓값을 올리면서 관객의 극장 진입 장벽을 더 높였다는 얘기다.

여러 이유 때문에 올해 상반기 극장가는 분위기가 썩 좋지 않다. 영진위가 발표한 보고서 ‘2023년 2월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2월 전체 매출액은 691억원으로 팬데믹 이전인 2019년 2월의 36.3% 수준에 불과했고, 2월 전체 관객 수 또한 642만명으로 2019년 2월의 28.8% 수준 밖에 되지 않았다. 이 숫자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이던 전년도 동월과 비슷한 성적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역대 일본 영화 국내 흥행 기록을 갈아치웠지만, <유령>과 <교섭> 한국영화 두 편이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냈고, 기대작이었던 마블 신작 <앤트맨과 와스프 : 퀀텀매니아> 또한 154만명을 불러모으는데 그쳤다. 황재현 CJ CGV 전략지원담당은 “<더 퍼스트 슬램덩크> <귀멸의 칼날 :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 마을로> 등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선전하는 분위기가 3월까지 이어진 것 같다”며 “다만 <유령>과 <교섭>이 힘을 쓰지 못했고, <앤트맨과 와스프 : 퀸텀매니아>가 기대만큼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고, 마블을 피하느라 한국영화가 더 많이 개봉하지 못한 건 아쉽다”고 극장 분위기를 전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극장 3사는 한국영화 신작 개봉을 끌어내기 위해 극장 지원책을 꺼내들었다. 지난 3월15일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로 구성된 한국영화관산업협회는 배급사들과의 협의를 통해 <리바운드>(4월 5일 개봉), <킬링로맨스>(4월 14일 개봉), <드림>(4월 26일 개봉) 세 편의 한국영화에 대한 개봉 지원을 결정했다. 제작자 B씨는 “극장이 위축된 상황이지만 OTT로 가는 것보다 더 이익이 될 거라고 판단해 4월 개봉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제작자 C씨는 “이번 개봉 지원은 정확한 액수는 아니지만, 극장이 영화 티켓당 1000원 정도 더 양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영화관산업협회는 "극장업계와 배급사가 한국영화의 정상화를 위해 의미있는 결정을 내린 만큼, 한국영화산업의 발전과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한국영화와 영화관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전했다.

문제는 그 이후다. 당장 4월은 한국영화 세편이 개봉하지만, 5월 이후 한국영화 라인업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CJ ENM은 “극장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고, 아직 확정된 라인업은 없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는 “<1947 보스톤>을 9월 추석 시장에 확정했고,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여름 시장에, <노량 : 죽음의 바다>를 연말 시장에 고려하고 있는 것 외에 확정된 라인업은 아직 없다”고 밝혔다. 쇼박스는 “<시민 덕희>를 여름 시장에 내놓을지 고민하고 있을 뿐 아직 확정된 건 없다”고 밝혔다. NEW는 “여름 개봉 예정인 <밀수> 빼고 아직 확정된 건 없다”고 전했다.

여전히 안갯속에 있는 산업 상황에서 분명한 건 지난해 하반기부터 극장 개봉을 목표로 한 한국영화의 신규 투자가 스톱한 상태라는 사실이다. 각 배급사 라인업 모두 아직 극장에 개봉하지 못했고, 극장 상황이 여전히 불확실한 데다가 감독, 프로듀서, 제작자 등 창작자들이 시리즈나 드라마로 제작을 선회하면서 벌어진 상황이다. 제작자 B씨는 “2025년 한국영화 라인업은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한 금융권 투자자도 “현재 은행에서 투자하는 신규 한국 영화는 없고, 시리즈나 드라마가 많다”고 밝혔다. “이러다가 극장 개봉하는 한국영화가 사라지는 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실제로 윤제균 감독은 최근 ‘디렉터스 체어 : 스페셜 토크’에 참석해 신규 영화 투자가 위축됐다는 사실을 밝히며 한국 영화 산업의 미래에 대해 우려를 내비쳤다. 윤 감독은 “이 업계에서 일하면서 현재보다 미래가 두렵다”고 말했다. 그는 “CJ, 롯데, 쇼박스, NEW, 메가박스 같은 메이저 투자사가 메인 투자를 서면 보통 20~30%, 최대 30%를 투자하고, 나머지 70, 80%는 창업투자사, 부분 투자사 펀드, 개인 투자자가 투자하면서 영화가 제작된다”며 “코로나 19가 3년 가까이 지나면서 영화 흥행작이 많지 않고, 그러면서 펀드에 투자한 부분 투자사들이 다 손해를 보고, 영화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떠났다”고 밝혔다. “CJ, 롯데, 쇼박스, NEW, 메가박스에서 메인 투자를 선다는 건 그 회사 자금으로 70~80%를 대고, 나머지 20, 30%는 부분 투자사들한테 투자를 받아서 영화를 찍어야 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관객이 예년처럼 극장을 찾지 않고,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리스크가 더 올라가 흥행 가능성이 낮아진 한국영화에 투자를 하는 기업은 어디에도 없다”는 얘기다. 윤 감독의 말대로 이미 창작자(감독, 제작자, 프로듀서 등)들도 현재 산업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국내외 OTT 간의 치열한 결쟁으로 인해 높아진 국내 관객의 눈높이를 만족시킬 수 있는 한국영화가 필요하다”는 황재현 담당의 말대로, 더 까다로워지고 냉정해진 관객의 눈높이를 충족시키는 게 한국 영화 산업에 주어진 과제다. 그점에서 4월 개봉하는 한국영화 세 편의 어깨가 무겁다. 개성 강한 한국영화 세편이 선전해 여름 시장까지 좋은 분위기를 주도할 것인가. 아니면 산업을 더 침체의 늪으로 빠뜨리게 할 것인가. 이것이 올해 극장가의 성패를 가늠할 첫 번째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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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비가 너무 올라서 ott가 대세가 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