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는 짬이 날 때마다 여기저기에 전화를 돌렸다. 모태펀드 블랙리스트에 대해서 아는 게 있냐고 물었다. 소문은 들었지만 아는 게 없다는 얘기가 돌아올 뿐, 소득은 없었다. 어디서부터 실타래를 풀어야 할지 도통 감을 잡지 못했다. 맨땅에 헤딩하기가 이렇게 막막할 줄이야. 매일 블랙리스트 취재에만 매달리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영화 기자’ K는 블랙리스트 말고도 해야 할 취재와 감독이나 배우 인터뷰도 많았다. 개봉 영화를 미리 보고 리뷰도 써야 한다.
K는 입사 초기 선배가 해준 얘기가 떠올랐다. “기자는 써야 하는 기사와 쓰고 싶은 기사가 있다. 쓰고 싶은 기사만 쓸 순 없다. 어떤 주는 정신을 못 차릴 만큼 써야 할 기사가 많고, 또 어떤 주는 밥값도 못했다는 자책감이 들 만큼 일을 안 할 수도 있다. 단독과 특종을 많이 할수록 좋지만 기자 대부분 ‘물 먹고 반까이(挽回)’하는 인생이다. 물을 먹을 수 있다, 반드시 반까이 한다는 명제를 명심하고 취재해라.” 영화 기자는 다른 기자들에 비해 속보 경쟁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지만, K는 이 공장에서 주로 뉴스를 담당해온 까닭에 항상 물 먹고 반까이한다는 각오를 항상 가진채 살아왔다. 그런데 이름부터 낯선 모태펀드 블랙리스트라니. 영화인은 물론이고, 취재팀 누구에게도 조언을 구할만한 기자가 없었다. 취재팀 누구도 K가 모태펀드 블랙리스트를 취재하고 다니는 줄 몰랐다. 아무리 서슬 퍼런 박근혜 정권이라지만, 영화 잡지는 비교적 시류나 정치적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운 분위기였으니까.
쓸데없는 정보도 편하게 물어볼 수 있는 취재원이 있는가하면, 정말 중요한 정보를 확인할 때만 연락해야 효과가 있는 취재원이 있다. 그 기준은 단순히 취재원의 직책과는 무관하다. 직책은 물론이고, 성격, 정보 보안 등 여러 조건을 종합해 내린 K만의 취재원 분류 기준이다. 대기업 투자배급사에 다니는 A는 K가 중요한 정보를 확인할 때만 연락하는 사람이다. 친하다고 하기엔 거리가 있는 것 같고, 친하지 않다고 하기엔 서로 너무 잘 아는 사이라고나 할까. 휴대폰 전화번호부에 있는 A의 번호를 한참 만지작거리다가 전화를 걸었다. “형님, 혹시 모태펀드 블랙리스트에 대해서 좀 아세요?” 한참 지난 뒤에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름은 XXX. X대 XX과. (중략) 모태펀드에서는 좌파(?) 영화에 출자펀드에서 투자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역할을 하고, 영화 'XX' 이후 전체 지분에서 배우 인센티브 지급 금지, 감독-제작자 특수 관계회사 투자금지 등 지침 내려 보내고 있음. 'XX' 때 XX-XX 계약을 보니 배우 인센티브가 과도하게 붙어있었고, 해외 매출도 일정 부분 나눠줘야 하고, 프로듀서도 별도의 인센티브가 있어 결국 투자사와 제작사의 수익 배분이 4:6처럼 되어버림. 그래서 모태에서 배우 인센티브 전체지분에서 주는거 금지(제작지분에서 주라고 함), 부부나 친인척끼리 만드는 영화 투자 금지 조치 취함. 그런데 동반성장협약은 배우 인센티브는 전제 지분에서 지급하라고 해서 충돌. 암튼 갑질 작열!”
그가 하는 말들을 수첩에 받아적었지만 100% 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갑질을 하는 게 사실이라면 영화인들은 왜 쉬쉬하고 있는 걸까. 단지 자신의 영화가 투자 받지 못할까봐 두려워서? 아니면 그보다 더 무서운 무언가가 있어서? A가 알려준 정보들을 복기해보니 XXX을 직접 만나 이런 소문들이 사실인지 묻고 싶었다.
지난 연재 다시보기
챕터 2. 취재 시작(https://steemit.com/kr/@pepsi81/2)
챕터 1. 흉흉한 소문을 접하다(https://steemit.com/kr/@pepsi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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