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망명
지상으로 망명한 수만의 빗줄기들이
허공과 대지의 먼지를 쓸어
무리지어 지하로 흘러간다
새 제국을 건설하려는 개미들 같이
본능처럼
비린내도 없이
민물이 되어
풀의 아가리 나무의 아가리
때론 나비의 주둥이
잉어와 사자의 콧잔등을 훑으면서
모두를 한 번씩은 쓰다듬으면서
속내를 알 수 없는 검고 깊은 심연
큰 파도, 비린 바다를 거절하고 하늘로 도망친
구름이 되어본 자들만이 비로소
비가 되어 내릴 수 있으니
이 숭고한 망명들 속에서
나는 숨쉰다
비리지 않은 순수한 육체를 마시며
나는 살아간다
비는 때로 도망자 같다.
속을 알 수 없는 심해의 검은 음모와 비린내를 피해서 하늘로 도망친 자들. 거대한 바다에 몸담으면서 바위도 부수는 큰 파도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 음흉한 속내를 거절한 자들.
진흙 속에서 살아갈 수 없는 하얀 새처럼, 천상에 올라가 순수의 정점을 찍은 이들이 마침내 지상으로 내려온다. 마치 천사처럼. 지상에 생명을 부여하고 대지위의 만물을 생육한다. 대지의 오염까지 씻으면서 말이다.
왜 이 순수의 존재는 물의 권력을 버리고 지상의 한낱 빗방울 하나가 되는 길을 선택하는 건가.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들의 순수를 받아 살 수 있다. 그것이 나를 살게 하고, 내 의지를 만들어낸다. 그러니 나의 의지가 이들의 희망인가. 이들의 이상세계인가.
그들은 믿는 것 같다. 이 지상에는 순수를 찬미할 마지막 의지가 있다고. 그래서 모든 걸 포기하고 전혀 다른 이세계(異世界)에 투신하는 건 아닐까.
2018.08.27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마구 떠오릅니다 :)
저는 비가 내리는 날을 좋아하는데, 이유없이 좋아하게된것은 아닌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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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비 내리는 날엔 카페 창밖을 멍하니 바라만 봐도 좋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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