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뎌져 간다.

in kr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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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는 요즘이다.

공사가 다망하니, 핸드폰을 더 많이 쥔다.
오고가는 채팅방은 내 주의를 쉽사리 앗아간다.
오롯한 나의 공간은 쏟아져 내리는 물을 맞는 곳 뿐인가.

소리가 닿지 않는다.

미처 못다한 일이 자꾸 컴퓨터 앞으로 이끈다.
귀를 즐겁게 했던 소리들은 뇌에 닿지 못하고
달팽이관을 맴돌며 애꿎은 고막만 쳐댄다.

음악이 들리지 않는다.

머리에서 부푸는 샴푸 거품처럼
막아도막아도 향유와 같이 뿜어나오던
머릿속의 작곡가는 점차 희미해져 간다.

짜릿함이 사라져 간다.

오금에서부터 등줄기를 따라 올라가는 쾌감.
생애 첫 자위 때 느꼈던 부끄러운 오르가즘.
드보르작 교향곡 7번 4악장의 절정에 눈물이 터져나오는 해방감이
조금씩 둔해져 간다.

봉긋이 솟아오르던 생명감은 서서히 저문다.

일은 자아를 잠식하고
나를 점차 대신한다.
팔꿈치가 찢어진 셔츠가 나다.

타버린 몸과 잃어버린 자아를 발견하기 전,
태초의 생동을 꽉 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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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도 많이 무뎌지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