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 김덕기와(cbs 라디오 2018년 5월 5일자)

in kr •  7 years ago 

cbs 라디오의 주말엔 김덕기와에 고정으로 편입되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아직 제가 좀 많이 서툴러서 조만간 짤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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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4일 로이터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대테러 기관은 600명이 넘는 인도네시아인들이 ISIL에 합류하기 위해 시리아로 향했다고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482명의 인도네시아인들이 ISIL에 합류하려고 하다가 발각되어 다른 나라 정부에 의해 추방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전 세계에서 ISIL에 합류하기 위해 시리아로 향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 상당수는 전사했지만 살아 남은 이들 중에서, 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조국으로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ISIL에 합류했던 이들을 치밀하게 추적했던 국가들은 이들의 신상정보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꽤 많은 나라들에선 추적에 실패했습니다.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명멸했던 테러 조직들의 숫자는 셀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ISIL에 대해 전세계 대테러기관들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이들이 테러를 프렌차이즈화 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매뉴얼화한 테러 수단들이 공개된다면 테러의 위협은 훨씬 더 커지겠죠. 그래서 돌아온 이들에 대한 집중적으로 감시 하고 있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이 이야기는 우리와 상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따지면 이게 상관없지 않습니다. 인도네시아 서부 끝의 반다 아체 자치주는 무슬림 원리주의자들이 집권하고 있습니다. 남자도 반 바지 입고 돌아다니면 안되는 곳이죠. 이런 환경은 ISIL에 참여했던 이들이 은신하기 좋은 환경이죠. 그리고 인도네시아엔 이런 원리주의자들이 끔찍하게 생각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들의 시각에서 보자면 거의 소돔과 고모라 수준의 타락한 곳입니다.

바로 한국인들도 많이 찾고 있는 발리입니다. 외국인 이교도들이 샤리야의 고귀한 가르침을 무시하고 이교도들의 타락한 삶을 인도네시아 무슬림들에게 전염시키고 있는 곳이죠. 금지된 술을 마시고, 몸을 가리기 위해 입어야 하는 옷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드러내는 천쪼가리를 걸치고 돌아다니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주 많은 기관들이 이런 우려가 기우가 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으니,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낮습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에겐 영화에서나 볼 법한 상황이 실제로 벌어질 가능성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이거,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아주 낯선 상황입니다.

사실 한국 사람들에게 외국이라고 함은 사실 미국을 말하던 것이 아직도 일반적입니다. 극히 최근까지도 환타지 소설급들의 세계여행기가 베스트 셀러가 될 정도로 외국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지금의 30대 초반들이 태어나던 즈음에 해외여행 자유화 된 나라가 대한민국이거든요. 한국의 평균연령이 41.5세니까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의 경험을 갖고 계신 분들이 절반이 넘는 나라입니다. 거기다 지리적으론 사실상 섬입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을 쉽사리 접할 수 없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보니 우리가 세상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종종 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장기를 쇄국정책을 펼치던 시절에 보낸 분들이 인구 분포상 더 많습니다. 어렸을때 주입된 생각들은 잘 안 바뀌죠.

그러다보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뭔가 큰 일을 해냈을때 얼마나 큰 일을 했는지 잘 이해 못하는 상황들이 벌어집니다. 어떤 일에 대한 해외반응만 다루는 사이트들이 성업중이긴 하지만 바라보는 시각이 객관적이라고 하긴 좀 어렵습니다. 제가 그 해외반응 알리는 원조라고 할 수 있는 곳에 적을 좀 둬서 아는 겁니다만, 인기있는 해외반응들은 정해져 있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게 되어서 놀랍다는 과의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죠.

사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전세계와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몇 년전에 작고한 지리학자 하름 데 블레이는 자신이 태어나지 않은 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일반적인 국가 인구의 3% 정도라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대한민국을 찾는 관광객만 1700만명이 넘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3개월 이상 삶의 터전이 되는 외국인들의 숫자가 200만이 넘습니다. 인구 비중으로 치면 4% 가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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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평화 정착이 자신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는 외국인이 200만명입니다. 그들의 가족 숫자까지 감안하면 37개국 374개 매체 929명의 외신기자가 남북정상회담 취재를 위해 달려올 이유는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기억하시겠지만 꽤 많은 기자들이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자랑했죠.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의 젊은 외교관 상당수도 한국어가 유창합니다. 한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이 녹녹하지 않음에도 그런 수고를 하고 있는 이유가 뭐겠어요. 그만큼 한국이 중요한 나라라는 것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발 뉴스들엔 일정한 편견이 작동해왔습니다. 예를 들자면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그간 상당한 편견을 갖고 한국 뉴스들을 다뤄왔습니다. 이코노미스트 편집부에서 선택하는 기사 대부분이 ‘북한의 김씨 일가가 얼마나 이상한 사람인가’에 집중되어 있다고 사표 쓰고 나간 한국 특파원도 있었죠. 사실 이건 우리 탓도 있습니다. 외국에 알리고 싶어하는 한국의 모습이라는 것이 좀 정형화되어 있잖아요? 잘 사는 산업국가 말입니다. 구미 선진국들이 이미 성취한 것을 뒤쫓고 있다는게 그쪽 입장에선 별로 흥미있을만한 이야기일리가 없잖아요.

그랬던 2016년 초겨울부터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죠. 이상한 대통령을 평화적으로 헌법에 따라 쫓아낸 것도 경이적이었는데, 새로 뽑힌 대통령은 평생을 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인권 변호사 출신이란 말이죠. 그 인권변호사가 존속살해를 일삼는 지구 최악의 독재자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드라마틱 하잖습니까. 거기다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는 취급을 받는 미국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까지 얻고 있구요.

해외언론의 입장에서 보자면 국민이 나서서 드라마를 찍고 있는 국가인 셈입니다. 그래서 이번 정상회담을 다룬 외신은 정말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왔죠. 북한 김씨 일가의 괴상한 이야기만 선호하던 이코노미스트 조차도 남북정상회담 그 자체부터 남과 북의 경제협력이 본격화되면 얼마나 큰 경제적 이익이 발생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아주 상세한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여기서도 특히 눈에 띄는 기사는 두 개 꼽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BBC의 기사로 트럼프가 평화회담의 공을 차지할 수 있는가라는 기사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사 마지막이죠. 미국의 한반도 정책 변화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이 갈린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 아주 전략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그러니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실제로 공이 있든 없든 성공에 큰 기여를 했다고 포장해주려고 한다는 이야기로 끝나는 기사였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코노미스트의 기사로 남북정상회담이 행복한 결말을 낼 수 있을 것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로 평생을 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인권 변호사가 세계 최악의 독재자와 다정한 분위기의 대화를 했다는 보도입니다. 뭐 특별할 것 없는 것 같은 이 기사가 눈에 띄었던 것은 라틴어 에우포리아에서 온 영어 단어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죠. 행복감, 도취 등의 뜻을 가진 유포리아입니다. euphoria. 남북정상회담이 행복한 결말을 낼 수 있을지 없을지는 올해 말이 되어야 알 수 있겠죠. 부디 행복한 결말이 되기만을 기원합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는 법이어서, 좀 많이 황당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cbs의 변상욱 대기자님께서 지적한 내용이기도 합니다만, 남북정상회담 이후 문정인 교수님이 포린어페어스에 쓴 글이 논쟁이 되었습니다. 그 글을 두고 야당과 몇몇 신문들에선 대통령 특보가 미군철수를 주장한다고 이야기했지요.

그런데 제 부족한 영어실력으로 번역해보면 문제가 된 문정인 교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은 평화협정 후 주한미군 주둔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게 되면 한국의 보수층들이 크게 반발할 것이므로 이에 대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평화협정 체제가 되면 주한미군의 주둔이 정당성을 갖기 어려울 수도 있으며 한국의 보수진영은 이에 반발할 것이라는 이야기인데, 이게 주한미군 철수 주장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런 비슷한 논란들은 꽤 많습니다. 예를 들어 현 정부 출범 직후 외교부 수장으로 강경화 장관이 내정되었을때, ‘유엔에서 활동한 이력과 난민전문가로서는 인정하지만 4강 외교 경험은 없다’는 지적이 나왔었죠. 그런데 어느 지역의 난민 문제에 구미 열강과 지금의 4강이라고 하는 미중러일이 빠지는 경우가 있나요?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발생한 난민들은 유럽의 정치 지도를 바꾸고 있지요. 그런데 지금 시리아 내전에서 유럽 열강과 미중러일이 완전히 떨어져 있나요? 이거, 그럴듯하게 사람 현혹하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첫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무거운 이야기로 출발했네요. 방송 첫날이 어린이 날인데 이런 이야기만 하고 끝내면 안될 것 같아 좀 가벼운 이야기로 끝낼까 합니다.

얼마전에 2016년 인도에서 개봉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인도 영화, 당갈이 개봉했습니다. 여자 레슬링 영연방 대회 금메달리스트인 딸들을 키워낸 인도 아버지 이야기입니다. 인도 대륙에서 여성의 지위는 아주 낮습니다. 세계 순위를 매겨보면 우리와 함께 뒤에서 세는 것이 빠른 국가들이죠. 그런 나라에서 여자 레슬링 선수가 영연방 대회 금메달을 딴다는 것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하늘의 절반에게 어마어마한 힘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이 실화를 영화화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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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힌두교 민족주의자들에게 심심찮은 인신공격을 받는 아미르 칸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아버지의 반대로 레슬링을 포기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마하비르 싱 포갓. 아버지의 반대로 레슬링을 포기했으니 아들을 낳으면 아들을 잘 가르쳐보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딸만 내리 넷을 낳는 딸딸이 아빠가 됩니다. 또 다른 좌절이지요.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었죠. 그런데 딸들은 아빠를 닮는다고 하잖아요? 자신의 딸들이 동네 불량학생들을 매로 훈육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게 됩니다. 불량한 짓을 하고 다니면 신나게 패고 다니고 있었던거죠. 그걸 본 마하비르씨는 첫째 딸인 기타와 둘째 바비타에게 레슬링을 본격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누군가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했을때, 그 일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는 사실 드물죠. 여자아이들에게 레슬링을 가르치다니 레슬링 때문에 드디어 미쳤다는 소리나 듣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딸들은 우여곡절 끝에 승승장구, 인도 국가대표로 영연방 대회에 까지 출전해 금메달을 따게 됩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본의 아니게 인도 여성들에게 영감을 주는 두 딸의 아버지가 된 셈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 있는 아버지들이라면 이 대사 때문에라도 어린이날 연휴에 이 영화를 꼭 찾아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너희는 이 싸움을 절대로 포기해선 안된다. 왜냐면 너희는 여자 아이가 무슨 레슬링이냐고 비웃는 그 모든 사람들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메시지가 좀 큰가요? 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 재미있구요, 전혀 모르는 힌디라고 하더라도 입에 착착 감기는 주제가 당갈도 재미있습니다. 꼭 한 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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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갈, 아쉬운 점도 꽤 있지만 재밌고 좋은 영화라 생각합니다 ㅎㅎ
당갈당갈이 머리서 떠나지 않네요.

어디든 참혹한 현실을 개선하는 과정은 나이스하지 않지요;;;

와~ 곰곰히 생각해 보면 IS부터 남북관계와 국내정치를 지나 인도 영화까지 중구난방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전혀 위화감 없이 쭉쭉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주말엔 아이들과 뭔가 늘 하기에 라디오 듣기는 어렵겠지만 이렇게 글로 풀어 주시는 것도 기대되네요!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건데;;; 아직은 좀 의욕만 과잉인 것 같습니다;;; 좀 더 잘 정리해보겠습니다. ㅎㅎㅎ

소재로만 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건데 다 연결되어서 재밌다는 말이었습니다 ^^ 앞으로 계속 좋은 글 부탁 드려요!!

고맙습니다~

긴 글이지만 담긴 내용이 재밌어서 끝까지 읽게 되네요. 잘 읽고 느끼고 갑니다. 좋은 고맙습니다.

30분간 거의 저 혼자서 떠드는 내용이라;;; 좀 더 임팩트를 담아야 하는데 어떻게 담아야 할지 고민이네요;;;;;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지만 자연스럽게 이어져서 무리없이 읽기 편했습니다

ㅎㅎㅎ 과찬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