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12일 마약일기
운동을 하고 있는데 누나로부터 갑자기 휴대폰 메시지를 받았다. ‘잘 지내?’
잘 지내냐니. 갑자기 이 문자는 무엇일까. 뭔가 알고 내게 연락한 걸까. 아직은 부모님 외에 다른 가족들은 모르게 했는데, 하긴... 이걸 언제까지 숨길 수 있겠나. 그러나 일단 모른 척을 하자.
“응 잘 지내. 근데 내가 쓴 기사가 좀 잘못되어서 명예훼손 고소를 당했네. 조만간 검찰 조사를 형식적으로라도 받아야 하는데 아무튼 당분간은 회사에 휴직계를 내어야 할 거 같아. 너무 머리도 아프고.”
언젠가는 이야기해야겠지. 나는 아마도 마약 중독자들이 겪는 일들에 대해 세상에 떠들고 말 것이다. 우리가 겪는 고통들, 우리에게 쏟아내는 세상의 멸시와 조롱의 정당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말 것이다.
그러면 곧 누나도 내 소식을 알게 되겠지. 아직 청소년인 내 조카들은 ‘마약 삼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학교에서 혹여라도 삼촌이 한겨레 기자라고 자랑이라도 했으면 어떡하지? 그러면 분명 놀림을 받을텐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내가 보낸 메시지에 별 대답이 없던 누나로부터 한시간쯤 뒤 문자가 왔다.
“세상에. 너 진짜 마약했어?”
검찰 수사 어쩌고 변명을 한 게 실수였나보다. 누나가 뭔 일인지 궁금해 인터넷 검색을 해봤단다. 이젠 숨길 수가 없다.
“응 맞아. 미안해.”
“이제 어떡하니. 그동안 너 정말 열심히 쌓아온 공든 탑이 다 무너졌구나.”
하지만 이제는 좀 담담해지고 싶었다. 탑이 무너진 것도 다 알고, 앞으로 그 탑을 조금이라도 복원할 수 있을지 나 스스로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울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 아닌가. 그리고 따져보자. 허재현. 너라는 자식. 이번에 이런 일을 겪지 않았더라도, 정말 마약을 다시 안했을 거라고 자신해? 경찰이 꾀어냈든 어쨌든, 넌 마약을 준다는 말에 그 자리로 나갔던 거잖아.
“누나. 이런 얘기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난 내가 마약한 것을 후회하지만, 후회하지 않아. 이게 무슨 말이냐면, 나는 언제 마약을 했어도 했을 사람이야. 회사 다니면서 우울증을 앓은지 꽤 되었어. 마약은 나같은 사람들에게 한번쯤은 찾아와. 내가 마약을 한건 불행이지만, 그런 상태로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난 아마도 더욱 심하게 병들어 갔을 거야. 더 상태가 나빠지기 전에 극단적인 방식으로 회사를 그만 두게 된건 어쩌면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를 도와주신 걸 수도 있어.”
누나는 그제서야 좀 이해가 된다는 듯 차분해졌다.
“엄마 아빠도 처음에는 많이 놀라셨지만 지금은 괜찮으셔. 누나도 너무 놀라지 말고 애들 잘 키워. 혹여라도 조카들이 삼촌에 대해 물으면, 별일 아니니 너무 놀라지 말라 하구.”
아직까지 조카들은 내게 별다른 연락이 없다. 원래 나도 잘 연락 안하고, 애들은 더더욱 연락을 잘 안한다. 그래도 몇 달에 한번쯤은 전화를 걸어주어 공부하느라 힘든 조카들을 위로해주고는 했는데, 당분간은 내가 부끄러워서 조카들에게 전화 한번 못해주겠다. 명절 때마다 찾아가서 용돈 쥐어주던 삼촌 역할도 잘 못할 거 같다. 이렇게 사회적 위치와 존재감을 서서히 잃어가는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