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9일 (토) 마약일기
주말인데 이젠 푹 쉬고 싶은 생각도 안 든다. 어차피 오늘도 쉬고 내일도 쉬고 내일모레글피 계속 강제로 쉬게 된 운명인데. 주말은 더이상 즐겁거나 그럴 수 있는 날이 아니다. 11년간 직장인 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내게 ‘쉼’은 이렇게 익숙하지 않다. 그렇게 간절하게 쉬고 싶었던 사람인데.
쉬는 시간이 많으니 잡념이 많아진다. 내 페북에 달린 ‘약쟁이가 왜이렇게 말이 많냐’는 댓글이 계속 머릿속을 떠다닌다. 처음에는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부끄러웠다. 앞으로 평생 이런 말을 듣고 살아야 한다는게 너무나 두려웠다.
그런데 며칠 지나니 이런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말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동안 아무도 ‘이건 너무 한거 아니냐’고 말을 안하니까 이 지경까지 온 거 아닌가?
배우 김부선은 열여덟의 나이에 당돌하게 ‘제가 무슨 잘못을 한거죠?’ 라고 말했다. 마약 혐의로 구치소에 들어가면서도 자신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 대는 기자에게 당돌하게 던진 말이다. 그 뒤 아무도 김부선처럼 ‘마약은 얼마만큼 책임져야 할 수준의 잘못인 것인지’ 묻거나, 세상에 진지하게 대든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 사람들은 ‘뽕쟁이는 말할 자격이 없다’고 가볍게들 생각하고 마는 것 아닌가?
사람들은 나를 뽕이나 맞고 다닌 방탕하고 막장인 기자로 생각하겠지. 그런데 난 다음날 일에 방해될까봐 술도 안먹는 사람이다. 한겨레에서 상위 3% 안에 들 정도로 근면한 기자였다고 자부한다. ‘직장, 운동, 집, 민주주의,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강아지.’ 이게 내 삶의 전부였다.
마약. 마약은 내 삶의 일부라고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냥 가볍고 강렬했던 경험일 뿐이다. 어쩌다 한번 실수로 잠깐 접한 것일 뿐. 그런데 이걸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람들은 마약을 했다는 것만 눈여겨볼 뿐, 마약이 얼마나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실수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댓글도 달려있었다. ‘지금까지 허재현이 쓴 기사가 뽕 맞고 쓴 것이었어?’ 답글을 달고 싶지만 참았다. 아니다. 그런 적 없다. 어떻게 뽕 맞고 일을 하나? 뽕 맞으면 기분은 좋은데 그렇다고 그런 상태로 출근하긴 어렵다. 눈이 풀려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거다. 더 솔직하게는, 마약을 했다고 사람이 이상하게 되는 게 아니다. 막상 해보니 정신은 더 멀쩡해지던데?
그런데 사람들은 왜 ‘뽕맞고 쓴 기사’는 문제 삼으면서 ‘술먹고 쓴 기사’는 문제 삼지 않는 걸까. 자기들이 워낙 술을 많이 먹고들 살아서 그런가? 기자들은 점심에 반주삼아 술 먹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오후에 취재원을 만나고 기사도 쓰고 한다. 술 취한 채로. 뽕맞고 쓴 기사가 문제라면 같은 논리로, 술먹고 쓰는 기사도 그거 정말 문제 아닌가?
사람들은 자신이 벌이는 잘못에 대해선 관대하다. 평소 본인들도 술을 많이 먹으니 ‘술먹고 기사도 좀 쓸 수 있는 것 아냐?’ 하고 생각하는 거다. 난 술 취한 채 일하지 않는다. 그건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난 이렇게 11년을 일했는데, 마약 한번으로 한겨레에서 가장 쓰레기같은 기자가 되어 해고되고 말았다. 억울하다. 솔직히 이건 억울하다.
※당부의 글.
안녕하세요. 허재현 기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단 한번도 마약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연재글은 마약 사용자들이 어떤 일상을 살며, 어떤 고민들에 부닥치는지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자 시작한 것입니다. 마약 사용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닌,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마약 정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마약 사용자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 건강한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이점 널리 혜량해주시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관련글 / 허재현 기자의 마약일기를 시작하며
https://steemit.com/drug/@repoactivist/4vbegb
술 먹고 기사 쓰는게 일반화되어 있어서 그런가봅니다.
말씀처럼 자신이 하는 것에는, 또는 할 수도 있는 것에는 매우 관대해지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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