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왜 읽는 것인가’에 대한 대답 중 몇 가지를 집어보자면 책을 가지고 내가 되어보지 못한 주인공을 간접경험을 할 수 있고 지식의 창고가 되어 나를 교양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그 밖에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솔직히 어렸을 때의 기억으로는 이 질문의 답에 대해 단순했다. 어떤 혁명가처럼 그들의 흔한 이유 중 하나인 세상을 바꾸려는 것도 아닌 단지 신데렐라가 부러웠을 뿐이다. 그리고 좀 더 자라자 동화 속 신데렐라가 아닌 현실에서의 신데렐라 얘기가 훨씬 더 재미있어졌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는 산전수전을 겪고 책에서 지식을 얻은 사람이 아닌 삶에서 지식을 얻은 사람이다. 그를 소설에서 표현하기를 초인이라 하였는데 요즘 단어를 쓰자면 히피 혹은 자유인정도 될 것 같다. 주인공인 작가는 그와 대조되게 붓다를 자신의 심성수련과 상징적 인물로 삼고 단테를 벗 삼아 펜대를 굴리는 작가였다. 그 역시도 여행을 하며 많은 경험을 한 인물이지만 조르바와는 다르게 깊은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조르바가 깊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은 아니지만 마치 흑과백을 보는 것처럼 뒤집어 백과흑을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의 만남도 심상치 않았지만 작가가 조르바 그를 갈망했고 그와 함께하는 선택을 결정했고 책이 아닌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모습은 그 자신이 속한 현실 그 순간 이었다. 이는 그에게 있어 직접적인 삶을 공부하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소설에서만이 아닌 우리가 살고있는 삶에서 공부를 한다. 지금이 없었다면 즉 삶이 없다면 소설도 존재하지 않는다. 길을 지나가다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사람들, 학교에서 동기들의 연애이야기까지도 지나가 보면 내가 읽었던 책 한 구절에서 발견할 수 있고 바로 지금도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로서 몇십년이 지나서도 조르바의 이야기를 듣게 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소설로 탄생되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내게 주인공이 어떡히 떠나게 되었는지 그가 조국에 대해 어떡히 생각하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나도 주인공과 같게 소설 속에서 조르바가 말하는 구절만 열심히 따라다녔다. 조르바의 삶 전체는 알 수는 없었지만 결말부분의 그의 죽음을 알리는 구절에서 더 이상 그의 이야기에대한 궁금증이 멈췄기에 마치 갈증이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다. 모든 이야기의 끝이 있는 것처럼 인간의 삶의 끝인 죽음으로서 결론을 낸 책은 책 한권의 무거움의 무게를 비하기엔 너무 가벼웠다.
조르바는 글쓴이를 보고 너무 책에만 빠져 있다고 한다. 그리고 헤어지고 나서의 편지에서도 당신은 가망 없는 펜대 운전사올시다.라고 말하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이 발언을 한 그가 한가지 간과한 점이 있다. 어쩌면 조르바 그가 그의 삶속을 사는 동안 책을 한번 읽었더라면 작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달라 부탁을 했을 지도 모른다. 결국엔 그 자신이 즉 소설이라는 것을,
N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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