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찬양이 싫다

in kr •  6 years ago 

교회 예배에서 제일 힘든 시간이 언제일까? 예배에 참석해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연 '설교시간'을 꼽을 것이다. 이는 설교시간에 자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찬양 시간엔 멜로디를 들으면서 노래라도 부를 수 있지 설교시간은 그럴 기회조차 없다. 강단에서 목사 혼자 얘기하는 시간. 목사는 얘기하고 회중은 듣는다. 설교처럼 일방적인 이야기는 사람들 호응을 이끌어내기 쉽지 않다. 더군다나 목사가 공감되지 않는 얘길 꺼내거나, 지나치게 원론적이거나, 재미가 없으면 사람들은 그 시간 내내 몸을 꼬거나 잠을 청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설교 듣기가 힘들다. 나는 대화를 중시 여기는 사람이라 일방적인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과 대화하며 공통점을 찾길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설교를 들을 때마다 상당히 곤욕스럽다.

그런데 나에겐 설교보다 더 힘든 시간이 있다. 바로 찬양 시간이다.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사람들은 그 시간에 아무도 잠을 자지 않기 때문이다. 손뼉을 치며 몸을 흔드는 통에 지루할 틈이 없다. 하지만 나는 찬양 시간이 가장 곤욕스럽다. 왜냐면 설교가 지루하면 자거나, 멍 때리거나, 내 작업을 하면 되지만 찬양 시간엔 '내 입으로' 노래를 해야 한다. 노래를 싫어하진 않는다. 오히려 노래를 사랑한다. 단지 내가 싫은 건 가사다. 내 입으로 신의 전지전능, 무결점, 선함, 완벽함을 찬양하고 신을 향한 사랑을 고백해야 되기 때문이다. 나는 그게 고통스러웠다. 내 마음은 동하지 않는데 가식적으로 신을 향한 사랑을 고백해야 한다. 사실은 내 지금 상태는 마음이 동하지 않는 것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난 신을 증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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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 욕을 한 적이 있었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셀 수 없이 했던 걸로 기억한다. 직접 신을 향해 개 xx, 시 xx를 쏟아내진 않았다. 차마 내가 믿어왔던 신에게 신성모독을 할 순 없었다. 하지만 내 상황을 가리키며 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 C8.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욕을 하면서 비관적인 상황을 하소연했다. 계획한 모든 일들이 실패하고,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지자 분노에 차서 신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처음부터 신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아니다. 내가 대학교 과정을 마쳤을 때만 해도 사이는 좋았다. 그때 27년 만에 처음으로 '꿈'을 만났다. 꿈을 준 분도 하나님이었고, 그리고 그걸 이뤄가라고 격려했던 분도 하나님이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신념 아래, 좋은 글을 많이 써서 많은 사람들을 감화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소설을 썼다. 그리고 글을 쓰는 동안 돈이 필요하니 스타트업에 지원했다.

초반엔 계획대로 내 인생이 흘러가는 듯했다. 소설도 순조롭게 쓰고 있었고, 높은 경쟁률을 뚫고 스타트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좋기만 했던 흐름이 반년 만에 바뀌기 시작했다. 지분을 바라보고 월급도 없이 시작했던 스타트업은 사업이 진척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소설 쓰는 데 올인했지만, 쓰면 쓸수록 내 길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나만의 세계가 크지도 않았고, 여러 주제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한 주제에 몇 년 동안 올인할 정도로 그리 끈기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 후에 에세이도 써보고, 아르바이트, 취직 준비, 외국어 공부, 인터뷰 취재 등등 여러 가질 시도했다. 고민하고 실행하고 고민하고 실행하고를 반복했다. 하지만 하는 것마다 결과는 실패였다. 결국 이 바닥에서 땡전 한 푼 벌지 못했다. 그리고 그 사이 나는 나이를 점점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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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꿈을 준 하나님에 실망했다. 그러다 실패를 거듭하면서 그 실망이 분노로, 마지막엔 체념으로 바뀌었다. 어느 순간부터 신을 찬양하는 내 모습이 가증스러웠다. 가사를 아무리 읽어봐도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문제가 없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입으로 찬양을 불렀다. 눈을 감기도 하고, 하늘로 손을 올리기도 하고, 영롱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나를 뺀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 보였다. 나만 신에게 불만이 있었다.

나는 하나님이 완벽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남들에겐 완벽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완벽한 존재가 아니었다. 성경에선 하나님을 선한 존재라 말한다. 그리고 그 대척점에 악한 존재로 사탄을 그려놓는다. 하지만 나는 사탄과 신의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신은 내게 선한 존재가 아니었다. 신은 괴상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나를 극한의 상황까지 몰아넣었다. 그리고 팔짱을 끼고 내가 고통에서 허우적거리는 상황을 지켜봤다. 오히려 나를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SM 중에 S 취향을 가진 사디스트가 자신의 자식을 괴롭히면서 흥분을 느끼는 것만 같았다.

그전까지 교회에서 배웠던 모든 지식이 산산조각 났다. '아무리 힘들어도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으십시오.' 과거엔 그런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시키는 공부만 열심히 했던 나는, '그래. 어떤 고난이 와도 하나님을 믿으면 되지.'라고 쉽게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눈앞에 가시밭길이 펼쳐지자 지식과 가슴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 알 수 있었다. 고난을 대처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머리로 알아봐야 소용이 없었다. 실제 상황이 닥치면 내 고통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매일매일 신을 올려보며 싸웠다. 그리고 신은 대답 없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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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게 신을 증오하면서도 여전히 교회를 떠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성경 때문이었다. 찬양은 하지 않는 대신 언제부턴가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예전엔 교회에서 제발 성경 읽으라고 사정을 해도 읽지 않았다. 지루하고 긴 역사 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힘든 일이 생기며 성경을 자발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위로가 될만한 조각을 찾아 뒤적거리다 시작된 일이었다. 그러자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했다. 성경에 있는 많은 인물 이야기. 예전엔 관심 없었던 이야기가 많이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요셉 이야기. 형제가 노예로 팔아넘긴 요셉은 노예생활, 감옥생활을 거쳐 결국 총리가 되었다. 예전엔 그저 요셉의 높은 지위(총리)가 부러웠다. 하지만 이젠 요셉의 고통이 보인다. 요셉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다가 하루 만에 노예로 팔려갔을 때 기분, 오해 때문에 감옥에 갇혔을 때,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지냈을까? 신을 원망하진 않았을까? 자신에게 꿈을 준 하나님을 저주하진 않았을까?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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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감옥 - 이집트의 왕자 2 중에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자손이 수없이 많아질 거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 그리고 실제로 후세에 자손이 번성했다. 하지만 그 일이 있기 전, 어느 날 아들을 재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그 아들은 아브라함과 아내가 아흔이 넘은 나이에 얻은 외아들이었다. 이 아들을 재물로 바치면 하나님이 한 약속은 물거품이 되는 상황.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브라함에게 일어난 것이다. 난 그 이야기에서도 아브라함의 고뇌를 보았다. 아브라함이 어떤 고민을 했을까? 늙어서 어렵게 낳은 외동인데. 더 이상 새로운 아들을 낳을 가망도 없는데, 신이 자신에게 꿈을 바치라 했을 때 아브라함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예수는 부활했다.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결국 다시 살아났다. 하지만 성경을 다시 읽어보니 예수가 겪은 고통이 보였다. 믿었던 제자들이 자길 배신하고 도망가고 보호하지 않는 모습. 십자가에 못 박혀 엘리엘리라마사박다니(하나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나님마저 버린 고통 속에서 예수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는 한때 성공에 심취했었다. 위인들의 성공담을 보고,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분석하는 게 재밌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잘난 이야기에 더 이상 관심이 없다. 대신에 사람들의 고통에 더 관심 있다. 사람들의 고민, 고통, 고난이 내 귀에 들린다. 대게 사람들은 성공 속에선 자신을 포장하고, 고통 속에선 자신의 순수함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 속에서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또 그걸 어떻게 이겨나가는지를 보며 나는 더 많은 위로와 공감을 얻는다. 내 어릴 적 시선이 계속 높은 곳을 향해 있었다면, 나이가 들면서 점점 낮은 곳으로 간다. 더욱더 낮은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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