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도의 소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

in kr •  7 years ago 

안면도의 푸른 바다처럼 언제나 푸르른 나는 안면도의 소나무야. 태안의 남쪽에 있는 안면도의 중심에 381ha 정도 면적에서 숲을 이루어 자라고 있어. 381ha는 축구장의 530배가 넘는 엄청 넓은 곳이지. 섬의 이름을 따서 안면송이라 부르기도 하고, 기둥과 줄기가 붉을 색을 띠고 있어서 적송이라고도 해. 보통 15~20m 정도 자라는데, 키가 큰 친구들은 가끔 30m 가까이 자라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곤 하지. 나와 주변의 친구들은 80~100살 정도 되었는데, 보통 우리 소나무들이 500년 정도 살 수 있으니 아직 한창 자라는 청년들이라고 할 수 있어.

나의 조상들부터 내 친구들까지 이 태안의 안면도에서 뿌리내리고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줄게.
우리 숲의 소나무들은 예로부터 엄격하게 관리되어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야. 우리 소나무숲이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백제시대라고 해. 이곳 안면도가 속한 지역은 백제시대에 중국과의 교류로 화려한 문화를 꽃피우기도 했지. 특히 불교문화가 크게 발전했는데, 당시 우리 숲도 구룡사라는 절에서 관리하는 사찰림으로 관리되었다는 기록이 있어. 이후 고려시대에는 궁의 건물들과 배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했어. 그런데 고려시대에 들어 불법으로 베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궁에서 직접 관리하는 숲이 되었다고 해. 옛날부터 나라가 직접 관리할 만큼 우리 숲이 그만큼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야.
우리 숲이 이렇게 귀한 대접을 받아온 것은 남다른 이유가 있어. 원래 중부지방과 서남해안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구불구불 자라고 옹이가 많은 편이라 모습은 아름답지만 목재로 사용하기에는 어려웠는데, 안면도의 소나무는 굵고 곧게 자라 그 쓰임이 많았어. 그래서 백두대간 주변으로 자라는 춘양목 만큼이나 귀한 대접을 받았던 것이야.
이쯤에서 우리 가문 자랑을 좀 해볼까?
우리 아빠께서 틈이 날 때마다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셨는데, 증조할아버지는 고려시대에 장군과 함께 바다를 건너는 배가 되셨다고 해. 할아버지는 또 어떻고! 지금 서울에 경복궁 있지? 그 경복궁의 제일 큰 건물의 기둥 하나가 바로 우리 할아버지야. 정말 멋지지 않아? 살아 있을 때는 안면도에서 제일가는 멋쟁이셨다고 소문이 자자하더라고. 이 숲에서 가장 튼튼하고 곧게 뻗어
안면자연휴양림_(27).jpg

다들 최고가 될 거라고 칭찬했는데, 결국 조선에서 제일 높은 사람과 함께하는 제일 높은 자리에 쓰이게 된 것이야.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우리 안면도 송림이 더욱 엄격하게 지켜졌는데, 그 이유는 우리 조상들이 궁궐을 짓는 재료로 사용되었기 때문이야. 바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한양으로 가서 경복궁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지. 왕족이 죽으면 땅에 묻을 때 사용하는 관도 우리 숲의 나무로 만들었다고 해. 가장 귀하고 중요한 곳에 우리가 함께한 셈이지. 찬란한 조선왕조의 역사와 함께 그 숨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여러모로 귀한 곳에 쓰이는 나무이기 때문에 특별히 나라에서 관리를 하고 일반인들은 출입도 쉽지 않고 함부로 베어가는 일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어. 안면도에 있는 소나무 숲을 황월장봉산(黃月長封山)이라 이름 짓고, 숲을 지키기 위해 나라에서 지정한 산지기가 70명이 넘게 있었다는 기록도 있어.

그런데 지금 우리 숲에는 그렇게 귀하게 보호받던 아름드리 소나무가 많이 남아있지 못해. 100년이 넘은 형님들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야. 그 이유는 바로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 때문인데,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본 사람들이 마구 베어가거나 송진을 빼가기 위해 훼손하면서 병들어 죽었기 때문이야.
나 역시 일제강점기에 많은 친구들을 잃었고, 운이 좋게 살아남았지만 기둥에 큰 상처를 입었어. 지금 내 기둥에 커다란 V자 모양으로 나무껍질이 벗겨져 속이 훤히 드러난 게 보이지? 일본군들이 전쟁에 사용할 연료가 부족하다면서 우리 피 같은 송진을 짜내어 뺏어갔기 때문이야. 송진으로 영양분을 빼앗긴 친구들은 병들어 죽기고 하고 기둥이 약해져 부러지기도 했는데, 그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어. 나라를 잃은 아픔을 우리 숲도 고스란히 느낄 수밖에 없었어. 지금도 이렇게 크게 흉터가 남아서 속이 시리고 아파. 이젠 많은 사람들이 보살펴주고 내 상처를 어루만져 주며 위로해주어서 그나마 위안이 되곤 해. 사람들이 이 상처를 보면서 다시는 그런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주길 바라.
사실 우리 아빠도 그때 헤어졌는데, 오가는 사람들을 통해 석탄을 캐는 광산의 갱목이 되어 어두컴컴한 땅속에 갇히고 말았다는 소식을 들었어. 땅 깊숙하게 땅굴을 파고 무너지지 않도록 받치는 일을 하게 되었대. 사람들이 다치지 않도록 있는 힘을 다해 버티고 계셨을 거야. 그곳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목숨의 위협을 무릅쓰고 중노동에 시달리며 석탄을 캐내면 일본으로 모두 실어갔다고 하는데, 갱목이 되어 그 모습을 지켜봐야했던 아빠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광복 이후에도 사정이 좋아지지는 못했어. 그땐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이라 나무를 돌봐주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여러모로 물자가 귀했기 때문에 여전히 많은 친구들이 떠나가야 했어. 귀하게 전해져 온 우리 숲을 건강하게 지키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지.

그러다 우리 숲이 다시 보호받기 시작한 것은 1965년에 도유림사업소가 설치되면서부터야. 숲은 한번 파괴되면 다시 되살리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비로소 우리 숲을 다시 보호하기 시작했어.
잘려져 나간 자리에 새로 아이들이 자랄 수 있도록 해주어 식구가 점점 늘어나게 되었어. 나처럼 상처 입은 친구들에게는 영양도 공급해주고

안면송림_(1).jpg
상처부위를 치료해 주어 덧나지 않고 아물 수 있도록 도와주었지. 박사님들이 찾아와 우리 숲에 대한 많은 연구도 진행하고, 더 건강한 동생들이 자랄 수 있도록 여러 노력을 기울였어. 그동안 우리는 점차 건강을 회복했고, 자식들도 많이 낳아 식구가 꽤나 늘었어. 지금은 제법 예전의 울창함을 되찾아가고 있어.
박사님들이 연구를 하면서 우리 친구들의 비밀 한 가지를 알아내게 됐는데, 무척 신기해하더라고. 우리 조상들이 숲 안에서 서로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다양한 유전 정보를 나누어 갖게 되었다는 것이야.
그게 무슨 의미냐고? 혹시 바나나가 멸종된다는 이야기 들어봤어? 바나나는 상품성을 높이는 과정에서 단일품종으로 개량됐는데, 이 품종에 치명적인 질병이 퍼져서 심각한 피해가 예상된다는 거지.
그런데 우리 안면도의 소나무들은 다양한 유전변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어. 유전변이가 다양할수록 가치 있는 숲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은 나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형질에 대한 다양한 유전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이야. 다시 말하면, 어떤 친구들은 빠르게 쑥쑥 자라는 한편, 어떤 친구들은 자라는 속도는 느리지만 추위에도 잘 견디거나 가뭄이 들어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특징을 가진 친구들도 있어. 이런 다양한 유전자원은 이 땅이 더욱 건강하고 풍성해질 수 있도록 하기도 하고, 앞으로 과학자들이 이 정보를 통해 유용한 활용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해.
요컨대 우리 숲은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몸 속 세포 하나하나 유전자 속속들이 귀하고 소중한 존재들이라는 거지. 그래서 충청남도는 우리 숲을 아무나 함부로 훼손할 수 없도록 관리하고, 1988년에는 유전자 보존림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어.
자랑하는 김에 한 가지 더 해볼까? 우리 숲은 세계적으로도 우수성을 인정받았어. 세계식량농업기구(FAO) 산하 아시아·태평양(亞太) 산림위원회가 <산림경영 우수 사례집>을 발간해, 지난달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산림위원회 본회의에서 배포했는데, 그 안에는 전 세계 우수사례 31개가 실려 있어. 그 중에 이곳 안면도 소나무숲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뽑혀 세계에게도 인정받는 숲이라는 것이 증명됐어.

이렇게 우리 숲이 훌륭한 보습으로 잘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나라에서 엄격하게 관리하고 지켜왔기 때문이기도 해. 사람들의 욕심은 우리 같은 나무들을 함부로 베어버리거나 사는 곳을 점점 없애버리곤 하거든. 그런 사람들이 보기에 숲은 별 쓸모가 없어보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되돌려 주고 있어. 우리의 자세한 이야기가 더 듣고 싶다면 숲으로 찾아와. 우릴 연구하고 관리하는 사람들이 잘 안내해 줄 거야. 무엇보다 숲 사이로 난 길을 천천히 걸어본다면 우리와 분명 친해지고 싶어질걸. 우리를 잘 보호해준다면, 우린 반드시 너희에게 더 큰 선물을 줄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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