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들어도 모두가 전율하는 그 영화]
대한민국 영화의 황금기 2003년. 그 시기에 만들어진 지금까지도 전설로 남아있는 작품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추억’이 되어버린 살인,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끔찍한 이야기.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입니다.
[인물의 모순된 태도는 이후 위기를 암시]
형사 두만은 자신이 얼굴만 봐도 범인을 잡아내는 능력이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러나 그는 서울에서 온 형사 태윤을 강간범으로 오해해 수갑을 채우는 실수를 저지르죠.
이렇듯 두만은 수사를 할 때 ‘외적인’ 것, 즉 눈에 보이는 것 자체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그러한 능력을 나름 잘 이용해서 수사에 유용하게 활용해왔으나 이번에 처음으로 형사를 범죄자로 오해하는, 그러니까 그의 감각이 빛나가는 일이 벌어졌죠. 영화 속에서야 그가 서 내에서 ‘무당눈’이라 불릴 정도로 용하다 말하지만 관객이 인물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페이드인이 된 후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행동은 그에 대한 관객의 신뢰를 떨어뜨립니다. 좀 더 나아가서 어쩌면, 그의 이러한 면 때문에 무언가 잘못을 저지르는 사건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죠.
[효과적으로 자백을 받아내는 방법]
두만은 이향숙을 죽인 용의자 백광호를 심문하면서 다양한 접근 방법을 사용합니다. 회유하기도 하고, 협박을 하기도 하는데요. 이 방법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먼저 심문 분위기가 굉장히 자유롭습니다. 첫 번째 방법인 ‘회유’를 할 때 두만은 광호와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러면서 그에게 사람이 예쁜 여자를 보면 안고 싶고 관계를 맺고 싶은 건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자신도 학창시절 때 그런 일들을 많이 했었다면서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죠. 명확한 범죄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친구들끼리 그저 수다를 떠는 느낌으로 소재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자백이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용의자의 일상 곳곳에서도 심문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자리를 잡고 심문을 할 때 뿐 아니라 밥을 먹을 때도 두만과 동료 형사는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주제를 광호의 범죄 여부로 이끌어갑니다. 그리고 이들이 밥을 먹으면서 보는 드라마는 <수사반장>입니다. 용의자 혐의를 갖고 있는 사람과 범죄 추리 드라마를 본다는 것, 이것 또한 그의 자백을 이끌어내려는 보이지 않는 수단인 것이죠.
마지막으로 두만은 심문을 할 때마다 ‘과장하기’와 ‘동조’를 반복적으로 사용합니다. 경찰서에서 광호를 심문하면서 두만은 그에게 “네가 여자들을 다 죽였지”라고 묻습니다. 광호가 아니라고 하자 이번에는 그럼 “이향숙만 죽였지”라고 좀 더 축소된 질문을 하죠. 이렇게 범죄를 과장해서 얘기해버리면 범인은 불안하고 두려워져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다”라며 원래 범죄 사실을 털어놓게 됩니다. 마침내 광호의 자백을 이끌어낸 두만은 그의 이야기에 계속해서 맞장구를 쳐줍니다. 끔찍한 범죄 사실임에도 전혀 불쾌한 내색을 하지 않고 그의 이야기에 활력이 생길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긍정적인 리액션을 해주죠. 이것이 영화 속에서 두만이 사용하는 범인의 자백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입니다.
[새로운 인물은 발전에 도움을 주어야]
두만이 있는 곳에서는 추리를 하는 거보다 직접 발로 뛰며 수사를 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으로 인해 범인을 잘못 지목하는 실수를 저지르죠. 이 때, 새 인물 형사 태윤이 등장합니다. 그의 수사 방법은 두만의 경찰서에서 사용해본 적이 없는 ‘추리’였죠.
태윤의 등장 이후 두만과 경찰서 사람들은 조금씩 그의 수사 방법을 실행해보기 시작합니다. 두만은 현장 어디에도 범인의 털이 남아있지 않았다며 그가 무모증인 사람일 수 있다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추리를 하죠.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점은 변화된 그의 태도입니다. 처음 태윤의 수사 방법을 무시했던 두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의 방법을 따라하게 된 것이죠. 비록 태윤처럼 그럴듯하지는 않아도 인물이 분명하게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뿐 아니라 두만의 동료 여형사가 라디오를 듣던 중 범인으로 추정되는 청취자를 찾아내죠. 아마 태윤이 오기 전이었다면 여형사는 그저 우연의 일치로 생각하고 흘려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태윤이 이곳에 ‘추리’라는 새로운 방법을 가르쳐주었기에 그것에 따라 자료를 찾고 다양한 증거들을 수집한 것이죠. 태윤의 등장으로 인해 직접 수사에만 치중하던 두만과 동료들이 추리라는 간접 수사에 대해 알게 된 것입니다.
[절충안을 찾아라]
앞서 말했듯이 두만의 수사방법은 당장 보이는 것을 쫓는 것이고, 태윤의 수사방법은 벌어진 사건들을 바탕으로 추리를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렇게 서로 다른 수사방법 때문에 갈등을 겪다가 방법을 찾아냅니다. 두 가지 모두를 사용하기로 한 것이죠.
추리에 중점을 두는 태윤이 범인이 주 타깃이 비 오는 날, 빨간 옷을 입은 여자이며 동일한 수법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그리고 두만의 방법대로 비 오는 날 여형사가 빨간 옷을 입고 거리를 걷기로 하죠.
두만이 있는 마을은 그의 말대로 작기 때문에 직접 발로 뛰어서 수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었죠. 그러나 경찰서에 앉아서 추리를 하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그러나 서울에서 온 태윤은 직접 찾아다니기에는 너무 장소가 많아 주로 추리를 하는 방법을 사용했죠. 그렇지만 직접 증거들을 찾아다니면서 뛰어다니지는 못했습니다. 각자 자신만의 방법을 사용하던 이들이, 마침내 자신이 사용했던 방법들뿐만 아니라 잘 쓰지 않았던 방법까지 함께 사용하면 수사를 더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죠. 이들은 서로와의 만남을 통해 각자에게 부족했던 점을 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도 인간이기에 한계가 있다]
두만은 수사를 하면서 용의자가 생기면 그들의 자백을 받아내도록 심문합니다. 그러나 그의 방법은 약간의 ‘강제성’이 있습니다. 처음 백광호를 수사할 때 두만은 그를 압박해서 진술을 받아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용의자 앞에서는 아예 대놓고 진술을 왜곡하려듭니다.
두만이 수사하고 있는 사건은 발생한 지 오래 지났을 뿐더러 최근에도 피해자가 나온 상황입니다. 따라서 마을 사람들과 윗선에서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죠. 게다가 두만은 너무나 오랜 시간동안 이 사건만을 수사해왔습니다. 범인에 대한 제대로 된 흔적 하나도 찾지 못하고 말이죠. 그래서 그는 너무나 지쳤습니다.
처음에는 진범을 잡겠다고 시작했지만 수사가 계속되자 그 생각이 점점 흐려졌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누가 됐든’ 제발 범인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조금이라도 동기가 있는 용의자를 몰아세워서라도 빨리 범인을 발표하고 이 사건을 끝내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은 그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두만은 어느 정도 현실적인 인물입니다. 수사를 하는 두만의 마음은 그저 범인을 응징할 용도로 진짜 범인을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형사의 심리 정도입니다. 이기적이지만 어쨌든 그에게는 남의 일이니까요. 그렇지만 이는 이치에 어긋나는 행동이기 때문에 그에게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 변화 역시 앞서 말한 인물 태윤이 돕게 되죠. 태윤은 수사 과정에서 유일하게 두만의 태도를 객관적으로 봐주는 사람입니다. 두만 뿐 아니라 경찰 동료들 모두 그와 같은 입장이지만 태윤은 다른 것이죠. 그래서 태윤만이 제 3자의 입장에서 두만의 태도를 지적하고 고쳐줄 수 있는 인물입니다.
[서로에게 동화되어가는 두 사람]
두만이 태윤을 닮아감과 동시에 태윤도 두만을 닮아갑니다. 태윤은 처음에는 그저 앉아서 추리를 하고, 심문을 할 때마다 차분한 태도를 유지했죠. 그러나 유력한 용의자가 나오자 두만처럼 그를 추궁하고, 범인으로 몰아가며 자백을 유도해내기 시작합니다.
“너 많이 변했다” 두만이 태윤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두 사람은 함께 수사를 하면서 서로에게 동화되어 갔습니다. 앞서 태윤이 두만을 객관적으로 봐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는 이야기를 했죠. 그리고 두만은 태윤을 만나고 전보다 진정된 수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끝나면 태윤은 자신의 할 일은 다한 것이 되죠. 그러나 주목할 점은 변화하는 건 두만 하나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주요인물, 즉 변화의 대상은 두만만이 아니라 태윤도 포함입니다. 두만이 폭력적이고 무대뽀인 수사를 하는 게 문제였다면 태윤은 현장보다는 심리적인 추리에만 치중한다는 것이 문제였죠. 그리고 이 마을에 와서 두만과 함께 다니며 직접 발로 뛰면서 추리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심지어는 두만의 심문 방법까지 닮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변화한 것이죠.
[신체적 특징은 인물을 간접적으로 제시]
두만은 가까스로 살아난 피해자에게 범인의 손이 여자 손처럼 곱고 부드러운 섬섬옥수라는 특징을 얻습니다.
꼭 범인이 아니더라도 인물에게 특정 신체적 특징을 부여하는 것은 서사의 전개를 더욱 긴장감 있게 만들어줍니다. 꼭 인물의 얼굴이나 전체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관객들이 신체적 특징만 보고서 그 인물을 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죠. 특히 이 영화와 같이 범인이 있는 수사물에서 사용할 경우 관객이 추리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여자 같은 손’이라는 범인의 정보를 습득한 관객들은 그 다음부터 어떤 인물이 나오든 그 인물의 손을 중점적으로 보게 됩니다. 추리물의 매력은 범인을 찾는 데에 있기 때문에, 관객들은 내심 혹시 등장인물보다 더 빨리 범인을 찾아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고 영화를 감상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이것은 인물을 간접적으로 나타낼 뿐만 아니라 영화에 대한 관객의 몰입 도를 높여주는 역할까지 함께 하는 것입니다.
범인을 감추기 위해서는 ‘범인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 백광호, 속옷 매니아, 마지막으로 라디오 청취자 현규까지 세 명의 용의자가 등장한 것이죠. 그래서 다른 형사들이 엉뚱한 사람을 쫓는 동안 범인은 계속해서 범행을 한 것입니다.
이 영화의 실제 사건은 아직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미제’사건이죠. 이렇게 미제 사건을 다룬 영화를 만들 때 감독의 선택은 두 가지입니다. 범인을 만드느냐, 만들지 않느냐. 전자를 선택할 경우 관객은 영화를 통해 간접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실제 사례에서 범인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로라도 위로를 받는 것이죠.
그러나 이 영화의 감독은 범인을 끝까지 밝히지 않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럴 경우 관객의 여운은 더욱 깊이 남습니다. 이 영화가 오래도록 회자되는 데에는 아마 이러한 엔딩 씬이 가장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살인의 추억>, 영화의 세상에 입문하고 싶다면 반드시 봐야할 영화입니다.
참 재밌게보았던 장면이죠 언급하신것처럼 극의 마지막장면이 관객에게 정말 여운을 주는 장면이 아닌가싶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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