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있을 땐 몰랐던 소중함]
자식이든, 부모든, 배우자든 늘 곁에 있는 사람에게는 소중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순간, 비로소 소중함을 깨닫게 되죠. 여기, 딸에게 형식적인 사랑만을 주고 있는 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갑자기 없어지고 맙니다. 그녀의 이야기, 영화 <미씽>입니다.
[워킹맘의 딜레마]
일이 바쁜 주인공은 딸 다은이와 같이 있지 못해서 중국인 가정부 한매에게 다은을 맡깁니다. 그녀는 일하는 도중 방으로 들어오는 딸을 보고 자연스럽게 한매를 불러 데려가 달라 말하죠. 그렇습니다. 이 집에서 진짜 엄마인 주인공보다 더 다은이와 친밀한 사람은 바로 한매, 즉 보모입니다. 입술에 기포가 생긴 다은이에게 아무렇지 않게 뽀뽀를 하는 한매를 보며 주인공은 더럽게 뭐하는 거냐 묻죠. 이러한 모습을 보면 주인공은 딸에 대한 모성애가 높은 편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자녀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워킹맘들은 주부들보다 자녀와의 친밀도가 낮습니다. 아무래도 함께 있던 시간이 얼마 되지 않고, 그들에게 어린 자녀는 일을 하는데 어쩔 수 없이 방해가 되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일과 가정 중 한 가지를 선택하면 한 가지는 어쩔 수 없이 버려야합니다. 그러나 결국 일이 돈, 즉 가정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워킹맘들은 자식을 위해서라고 스스로를 위안 삼으며 일에 몰두하는 것을 택하죠.
그러나 어린 자녀들에게 필요한 건 넉넉한 형편과 돈보다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와 있는 시간이 짧아지면 부모가 느끼는 자식에 대한 사랑의 크기도 작아지게 마련이죠.
뿐만 아니라 주인공은 이혼 관련으로 간 법정에서 좋은 보모가 있으니 자신이 다은을 잘 키울 수 있다 말합니다. 아이를 제대로 자라게 하려면 부모의 직접적인 역할이 필요하지만, 주인공은 이것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이죠. 그저 누가 키우든 아이를 ‘올바르게’ 자라게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간 이러한 주인공의 잘못된 사고방식으로 인해 어떠한 사건이 벌어질 것이라는 걸 예측할 수 있죠.
[이전되어버린 모성애]
한매는 다은이 귀엽다며 볼을 꼬집으려는 경비아저씨에게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마치 친엄마처럼 말이죠. 앞서 자녀와 있는 시간이 짧아지면 부모가 느끼는 사랑, 즉 모성애도 줄어든다 말했죠.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아이와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모성애가 점점 생긴다는 것이 됩니다. 꼭 아이의 ‘친부모’가 아니어도 말이죠.
일에 바쁜 엄마가 이모에게 자식을 수시로 맡겼었는데 어느 날, 있던 아이가 없어지자 외로움을 느꼈던 이모가 아이를 유괴했던 사례가 있습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유아 유괴 사례가 가까운 주변사람들에게서 일어나곤 하죠. 아이에 대한 부모의 관심이 소홀해지면 아이가 방치되고, 주변이웃들 또는 다른 사람들과 더 친밀한 관계를 쌓게 되죠. 그러면 전혀 엉뚱한 사람이 모성애를 갖게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주인공이 지녔어야할 모성애가 보모인 한매에게 이전되어버린 것이죠.
[워킹맘은 자유롭게 아이를 키우기 힘들다]
주인공이 딸이 아프다는 이유로 일을 빠지자 상사는 전화로 화를 내며 이래서 애엄마랑은 일을 하면 안 된다고 비난합니다.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엄마들이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가 없는 시스템인 거죠. 물론 최소한의 보육을 위한 육아휴직도 있지만, 이는 아이가 아직 성장을 시작하기도 전인 임신 때만 사용이 가능할뿐더러 그마저도 주위의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정체성을 형성하고 자라는 데에 가장 중요한 시기는 태아가 아닌 유아시기입니다. 이 때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르침을 주어야 아이가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 속에서 이는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딸에게 소홀하다고 해서 주인공을 욕할 수는 없습니다. 그녀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혼까지 한 이 시점에 아이를 키우는 데만 올인 하기 위해 일을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죠.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워킹맘에 대한 직장의 시선은 곱지 않은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급한 상황에선 이성적 선택을 하기 힘들다]
처음 다은이를 키워줄 보모를 찾을 당시 주인공은 매우 급박한 상황이었습니다. 당장 일이 밀려있는데 다은은 자꾸 잔병치레를 하고, 누구든 다은의 곁에 붙어서 지켜줄 사람이 필요했죠.
일할 사람이 필요할 때, 특히 그 일터가 ‘가정’같은 개인적인 장소일 경우에 더더욱 사람을 신중하게 구해야합니다. 신분은 물론이거니와 그 사람의 지난 경력까지 철저하게 알아봐야하죠. 그러나 주인공의 상황은 너무나 급했습니다. 사람은 급한 상황에서 이성적인 선택을 하기가 힘들죠. 이성을 지키기가 힘드니 사람들의 관점이 어디로 쏠릴까요? 바로 ‘감성’. 즉 그 사람을 보고 드는 느낌에 치중하게 되는 것이죠.
주인공은 한매가 딸 다은에게 다정하게 노래를 불러주고, 딸이 잠에서 깨지 않도록 초인종을 누르는 대신 노크를 하는 걸 보고 그녀의 ‘배려심’을 느끼게 됩니다. 이성적 판단이 불가능한 시점에서 그러한 한매의 따뜻한 면모는 주인공의 선택을 유도하기 충분했죠. 그러나 사실 이성적으로 보았을 때 한매는 완전히 안전한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알고 있는 한매에 대한 정보는 그저 ‘어느 정도 친한 여자가 소개해준 중국인’이 다였죠. 하지만 이미 주인공의 상황은 이성을 잡기 힘들만큼 다급했고, 결국 감성에 이끌려 한매를 보모로 결정하게 된 것이죠. 아마 이러한 섣부른 결정 또한 앞서 말했던 내용과 더불어 주인공의 이후 서사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극적임:극에 달한 불행, 반대되는 풍경]
다은이 실종된 상황에서 주인공은 딸을 데리고 있다는 전화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전화를 건 사람의 계좌로 자신이 갖고 있는 통장 잔액 전부를 입금하죠. 그러나 이것은 보이스피싱이었습니다. 하필 이렇게 우연한 상황 때문에 안 좋은 일이 겹쳐진 것이죠. 이렇게 주인공을 더욱 극한 불행으로 몰아가는 서사 전개는 영화의 긴장감을 더욱 높여줍니다. 영화를 더 극적이게 만들어주는 것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주인공은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고 다은이를 찾으러 여의도 한강 공원에 갑니다. 심각한 주인공과 달리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평화로운 모습으로 휴식을 즐기고 있죠. 이 때, 한강 공원의 분위기에 따라 영화의 극적인 정도가 달라집니다. 만약 아무도 없고, 약간 흐린 날씨에 주인공이 딸을 찾으러 가면 서사는 이어지겠지만 아무래도 극적인 느낌은 덜하죠. 그러나 이 영화에서 나왔듯이 두려움으로 가득 찬 주인공과 대비되는 맑은 날씨, 마냥 즐거워하는 사람들과 밝은 풍경들은 주인공의 상황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줍니다. 모두가 행복해하는 와중에 혼자 온갖 불행으로 가득 차있는 주인공의 모습이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죠.
[언제나 상황은 주인공에게 불리]
주인공은 이혼 후 다은의 양육권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다은이 없어져버리자 시어머니는 주인공이 다은의 양육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 일부로 숨겨둔 거라 말하죠.
이렇듯 언제나 기본적인 상황은 주인공에게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주인공이 누명을 쓰게 되면 그 전에 꼭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필연적인 상황이 생기고 말죠. 특히 이 영화의 경우에는 주인공이 다은을 반드시 자신의 힘으로 찾아야합니다. 경찰과 다른 사람들이 동원해서 함께 도와주면 쉽게 딸을 찾을 수 있겠죠. 그러나 모든 이야기 속 주인공에게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주인공은 딸에게 무관심한 엄마였죠. 이것은 영화의 후반부에 주인공이 변화해야 할 점입니다. 따라서 주인공은 ‘혼자’ 다은을 찾음으로써 자신의 지난날을 후회하고 반성해야 하는 것이죠. 대부분 자식, 또는 배우자를 찾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이렇게 혼자 씨름을 하는 것이 이와 비슷한 맥락입니다.
그러한 소재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보면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이 영화 속 주인공과 같이 찾아야 할 상대에게 소홀했다거나, 그 상대와 심하게 다퉜다거나 하는 등의 변화가 필요한 지점이 있죠. 이러한 변화를 위해 주인공은 홀로 역경을 해쳐나가야 하고 그런 이유로 주인공에게 ‘이혼, 그리고 그것에 의해 벌어진 다은을 둔 양육 다툼’이라는 불리한 상황이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남아선호사상의 무서움]
한매는 자신을 거둬준 집에서 매일 구박을 받다가 아이를 갖고 나서 조금이나마 나은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이의 성별이 여자라는 걸 알게 된 순간 다시 찬밥 신세가 되죠.
딸은 대를 잇지 못하기 때문에 아들만이 귀하다. 남아선호사상을 가진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각이죠. 실제로 우리나라에 이러한 사상의 흔적들이 남아있습니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어르신들의 이름 중 끝순이, 말자 등의 이름은 계속 딸만 낳게 되자 이제 딸은 그만 나오게 해달라는 마음으로 붙여진 것이죠. 이름은 그 사람의 앞으로의 삶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로 이름을 지었다는 건 태어남과 동시에 존재 자체를 무시당하는 것이 되죠. 극중에서 의사가 한매에게 아픈 딸을 데리고 큰 병원에 가보라 하지만, 시어머니가 아들도 아닌데 뭘 신경 쓰냐며 막습니다. 이렇게 남아선호사상 속에서 자란 여자아이들은 크고 작은 시련을 겪게 됩니다. 지금은 이러한 사상이 많이 없어졌지만,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두운 법]
한매의 친딸 재인이 입원해있는 병원은 주인공의 남편이 일하는 병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에게 보이스피싱 전화를 건 범인은 함께 한매를 찾아다니던 남자였죠.
영화의 서사에서는 이렇게 자연스러운 우연성이 중요합니다. 영화에는 다양한 사건이 등장하고, 이 사건들이 원활하게 이어지려면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인물들 사이에서 모든 일들이 벌어져야 합니다. 하나의 사건이 생길 때마다 새로운 인물이 나와 버리면 등장인물이 끝도 없이 많아져버리니까요. 이 때, 이 사건들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때 필연성과 함께 필요한 것은 ‘의외성’입니다.
예측 가능한 전개는 관객을 지루하게 만들죠. 영화의 결말에서 서사에 큰 변화가 생기는 것만이 반전이 아닙니다. 중간 중간 작은 전개에서 예상치 못한, 비중이 별로 없어보였던 의외의 인물이 사건과 연결되는 순간 서사의 긴장감이 더 높아지는 것이죠.
[그녀에게는 죄가 없다]
우리나라 영화만의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인물을 움직이고 변화하게 만드는 가장 큰 감정은 ‘복수심’이라는 것이죠. 한매는 원래 착하고 순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녀에게 너무나 차가웠고, 한매는 자신의 딸 재인과 함께하면서 시련을 견뎌나갔죠. 그러나 그런 딸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 때부터 그녀는 더 이상 예전의 착한 사람이 아니게 되어버렸던 것이죠.
사람은 이기심에 눈이 멀면 다른 것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딸이 위급해지자 의사인 남편을 이용해 응급실에 있는 한매의 딸을 마음대로 퇴원시켜버렸죠. 주인공에게는 너무나 사소한 일이었지만 한매에게는 그녀의 인생을 무너뜨린 끔찍한 사건이 되어버렸습니다.
누가 감히 한매를 욕할 수 있을까요. 한매는 그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세상을 살아가려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돌아온 건 사랑하는 딸의 죽음과 원치 않는 사람과의 삶이었죠. 한매에게 이기심과 복수심을 가르쳐준 건 바로 이러한 세상이었습니다. 결국 그녀의 애원에 대한 세상의 외면이 모두에게 불행을 가져다준 것입니다.
좋은 리뷰 잘 보고 갑니다.
그런 내용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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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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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세심하게 잘 쓰신 것 같습니다. ^^ 저도 노력해야겠네요 글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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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노력해서 나중에 많은 스팀잇 유저분들이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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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씽 보려했었는데 못봤네요. 한번 꼭 보도록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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