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ria 의 영화리뷰 # 더 콜(The Call, 2013)

in kr •  7 years ago  (edited)

[갑자기 찾아온 딜레마]

매일이 전쟁터인 911. 그곳에서 누군가의 생사가 걸린 전화를 받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최대한 이입하지 않고, 남의 일처럼 여기며 일을 처리하죠. 그러나 때로는 이러한 대처법 때문에 오히려 더 큰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여기, 늘 이성적인 자세로 일에 임하는 능력 있는 여직원 조던이 있습니다. 그러나 늘 자신의 태도를 믿고 지내던 그녀가, 딜레마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녀의 이야기, 영화 <더 콜>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위기지만 누군가에게는 일]

조던이 일하는 911 콜센터는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신고 전화를 받는 곳이지만 정작 직원들의 작업분위기는 화기애애합니다. 심지어 조던은 쉬는 시간에 남자친구와 밖에 나가 애정행각을 벌이기도 하죠.
남자친구는 조던과 자신의 커피 취향이 맞지 않자 “911에 신고 해야겠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누군가에게는 911이 위급한 상황에서 구조를 요청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저 돈을 받고 하는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죠.
남자친구를 만나고 오는 조던에게 동료 직원이 일에 집중 좀 하라며 장난스러운 경고를 합니다. 911 신고는 최대한 빠른 접수가 관건이죠. 그에 비해 조던의 태도는 다소 지나치게 여유로운 감이 있습니다. 근무태만이라 할 정도까진 아니지만, 조금 위험한 감이 있죠. 이런 그녀의 행동을 보고 관객들은 예측하게 됩니다. 아, 언젠가는 이러한 태도 때문에 일이 한 번 터지겠구나. 일에 임하는 그녀의 자세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감하는 복선이 되는 것이죠.

[트라우마가 생기는 건 한 순간]

조던은 집에 침입한 살인마를 신고한 소녀를 살리지 못하고, 소녀가 지르는 비명을 전화로 듣게 됩니다. 그 이후 조던은 ‘살인 현장’을 연상시키는 소리에 트라우마가 생깁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가 살인 장면이 나오자 극심한 두려움을 느끼죠. 뿐만 아니라 집에 박쥐가 침입했다는 이유로 전화를 한 여자의 비명을 듣고 잔뜩 긴장한 채 굳어버리기도 합니다. 소녀를 살리지 못함으로써 그녀에게 살인을 연상하게 하는 모든 것들이 트라우마가 된 것이죠. 이렇게 사람이 트라우마가 생기는 것은 아주 짧은 순간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것이 트라우마가 되는 이유는 대부분, 그것을 처음 접한 순간 그것에 대해 심한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 먹기 싫은 오이를 부모님이, 또는 선생님이 억지로 먹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오이 냄새만 맡아도 질색을 하게 되죠. 억지로 음식을 먹으면서 그 순간 느꼈던 오이의 식감, 냄새, 불쾌한 기분이 그 사람에게 두려움을 야기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어떤 것을 처음 경험했을 때 그것에 대한 공포와 불쾌감을 느낀 경우, 그것은 그 사람의 ‘트라우마’가 되는 것이죠.

[신고자도, 신고를 받는 이도 ‘사람’]

위기 상황에서 신고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신고를 받는 911 직원들을 기계처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들도 사람입니다. 콜 센터에는 살인이나 강도 관련 신고를 받는 직원들을 위한 ‘심리 안정실’이 있습니다. 또한 그들에게 심리상담을 해줄 상담사들도 늘 대기 중이죠.
조던은 신입 직원들에게 말합니다. 신고를 받으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감정적 분리’라고 말이죠. 다소 냉정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들은 기계가 아닌 ‘사람’이니까요. 신고자의 입장에 너무 몰입하고 그 일에 심적으로 지나치게 깊이 관여해버리면 그 직원의 삶에 지장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일을 하는 내내 이성적인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그들이 신고를 받는 사람들은 ‘남’이니까요.

[위급 상황일수록 필요한 것, 유머]

조던은 팀 내에서 촉망 받는 직원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 가장 주목받는 것은 그녀의 남다른 ‘유머’이죠. 이 유머는 주로 남을 웃기려는 것보다 신고자들을 안심시키는데 사용됩니다. 조던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신고자에게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이냐 묻습니다. 그러면서 그의 대답을 듣고 장난하냐, 자신도 그 영화를 엄청나게 봤다며 유머 섞인 말을 던지죠. 직원이 신고자와 함께 긴장하고 우왕좌왕하면 신고자는 더욱 불안해집니다. 따라서 신고자와는 달리 차분한 태도로 유머를 유지함으로써 신고자를 진정시켜야 하는 것이죠.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매일 목숨을 건 전투장에 나가는 주인공은 위험한 상황에 있을수록 ‘유머’를 잃지 말아야 한다 말합니다. 그가 이렇게 유머를 중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동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동료들을 이끄는 입장이기 때문에 유머를 보임으로써 그들을 안심시키고 불안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죠. 이처럼 위기 상황에서 구조자의 입장, 즉 그 사람을 ‘이끄는’ 입장에 있는 사람은 상대를 진정시키고 최대한 차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유머인 것이죠. 그리고 이 유머는 앞에서 이야기한 ‘이성적인’ 태도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맞서야한다]

소녀를 살리지 못한 이후 조던은 신고를 받는 일을 잠시 중단하고 신입 직원들을 안내하는 일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납치사건 신고가 들어오고, 동료 직원이 우왕좌왕하자 조던이 대신 전화를 받습니다. 납치된 여자 케이시는 6개월 전 소녀와 비슷한 목소리로 도움을 청하고 있었죠.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그것에 맞서는 것입니다. 그것에 직접 맞서고, 그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질 때 비로소 트라우마가 사라지는 것이죠. 앞에 예시를 든, 오이에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 역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시 오이를 먹어보아야 합니다. 그 사람이 트라우마를 느낀 것은 ‘오이’ 자체가 아니라 자신이 그것을 ‘억지로’ 먹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 때부터 그 사람에게 오이는 내가 원하지 않아도 먹어야 하는 것이라는 두려움의 대상이 된 것이죠.
이렇게 가정해봅시다. 그 사람은 어른이 되었고, 사랑하는 연인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연인의 저녁식사에 초대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오이를 먹지 못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연인은 오이가 들어간 요리를 만들었고 그 사람은 연인에게 자신이 오이에 트라우마가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연인은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하며 자신이 부주의했다, 먹기 싫음 먹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죠. 그 말에 감동을 받은 그는 용기를 내 연인의 요리를 먹어봅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오이’라는 음식은 그에게 남에 의한 강요가 아닌 자신에 대한 ‘사랑’의 대상이 되죠. 그렇게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트라우마를 이겨내려면 그 대상에 직접적으로 맞서고, 두려움을 해결해야 합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것]

조던은 범인 마이클과의 통화에서 그에게 최대한 차분한 말투로 당신의 정체를 알았으며, 지금 경찰이 가족들과 함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지금 자수를 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 얘기해주죠.
마이클은 케이시를 납치했을 뿐만 아니라 조던이 구하지 못한 소녀, 레아까지 죽인 잔혹한 살인범입니다. 조던은 그를 증오하고, 끔찍하게 생각하죠. 그러나 지금 그녀는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 입장에 놓여있습니다. 따라서 그녀가 자신에 감정에 따라 마이클에게 화를 내거나 협박을 하면 사태가 더욱 악화될 수 있죠.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고, 진정된 말투로 그를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콜센터 직원들에게 필요한 또 하나의 자세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아무리 그가 극악무도한 범죄자라고 해도 그의 죄는 잠시 제쳐두고 그를 그저 하나의 인격, 즉 ‘사람’으로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상태에서 범인에게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대화를 시도함으로써 사태를 진정시키는 것이 그들이 해야 할 임무인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조던은 이를 매우 훌륭하게 실행하고 있는 능력 있는 직원입니다. 이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관객들은 초반에 느꼈던 노여움을 풀고 그녀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녀를 응원하게 되는 것이죠.

[극한에 처했을 때 사람들은]

케이시는 조던과의 통화에서 자신이 구출될 확률이 없다 느껴지자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할 말을 남기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납치된 곳에서 범인에게 자신을 차라리 죽여 달라 말합니다.
너무나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사람들은 오히려 차분해집니다. 그리고 현실을 자각하고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죠. 많은 사상자를 일으킨 대구지하철 참사에서 안에 갇힌 많은 사람들이 가족들에게, 또는 친구와 연인에게 마지막 문자를 남겼습니다. 극한의 상황이 되고 그것을 벗어날 수 없다고 느낀 순간, 사람들은 이성적이 됩니다. 그것을 극복해보려는 저항이 끝나고 체념만이 남아 오히려 덤덤해지는 것이죠.
그래서 케이시 역시 자신을 제발 살려달라고 계속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엄마를 위해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는 것을 택합니다. 그것이 그 상황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가장 이성적인 판단이었던 것이죠.

[케이시를 구하는 것=트라우마 극복]

조던은 자신과 같은 별자리를 가진 케이시에게 염소자리는 전사를 의미한다며 자신과 ‘함께’ 싸워나가자고 말합니다.
조던에게 케이시를 구하는 것은 단순히 한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넘어서, 지금껏 극복하지 못한 자신의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것이죠. 조던은 늘 ‘이성적인’ 태도를 중시했고 신입 직원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으로 저지른 일 때문에 레아를 지키지 못했고, 자신의 자세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죠. 그러던 와중에 케이시가 납치, 그것도 레아와 같은 범인인 마이클에게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레아 사건과 같은 그의 “이미 늦었다”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기고 맙니다.
힘들어하는 조던에게 상사는 너는 너의 할 일을 다 했으니 그만 집에 가서 쉬라 말하죠. 동료들도 모두 그녀에게 더 이상 감정적인 몰입을 그만두고 다시 이성을 찾으라고 합니다. 센터에 혼자 있던 조던은 케이시의 전화를 뺏은 마이클과의 통화에서 그들이 있는 곳의 단서를 알아냅니다. 그러나 다른 동료들이나 상사에게 그것을 알아냈다고 말할 수는 없었죠. 이제 케이시의 일은 그녀의 손을 ‘떠난’ 일이 되었으니까요. 고민 끝에 그녀는 직접 나서기로 결심합니다. 지금까지 강조했던 이성적인 태도를 버리고, 자신의 트라우마에 직접적으로 맞서기로 결심한 것이죠.

[그곳에 있는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 영화는 응급전화를 받는 사람들이 누구나 한 번쯤을 겪었을 만한 딜레마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영화에 나온 것처럼 최대한 감정을 줄이고 이성적인 태도로 임하는 것이 가장 옳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가 있게 마련이죠. 조던은 이성적으로 사건에 접근하기 위해 신고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가 그 벨소리로 인해 범인에게 발각되게 하는 사고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감정적으로 동요하는 것이 옳은 걸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랬다간 사건을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신고자보다 더 불안해하면서 아까운 시간만 낭비하게 될 수 있으니까요.
아마 이것은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딜레마가 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최선의 대안을 내놓습니다. 바로 ‘둘 다’라는 것이죠. 조던은 케이시와 통화를 할 때는 이성적으로 정보를 알아내고 그녀를 구출할 때는 그녀와 가까운 입장이 되어 사건에 접근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때에 따라 가끔씩은 냉정하게, 또 가끔씩은 따뜻한 공감으로 그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이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인 것이죠. 이렇게 <더 콜>은 사람들이 이러한 직원들의 딜레마, 즉 평소에 몰랐던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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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땀을쥐며 봤네요. 너무 재밌어요 :)

감사합니다 :)

꼭 봐야할 영화같네요 :) 이 글을 읽고나니 뜬금없는 얘기일 수 있지만 군에서 경계를 서는 군인들이 떠오릅니다. 국가의 안보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지만 경계를 서는 군인들에겐 역시 그저 일일뿐이지요... 심지어 보수를 받지 않는 일이니까요. 그들에게 뭔가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는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군인분들은 대한민국에서 꼭 필요한 존재죠 저도 군인분들에게 다른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는게 필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

한번 봐야 겠네요 좋은 리뷰 감사드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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