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9년 3월 10일 귀주대첩과 강감찬

in kr •  7 years ago 

1019년 3월10일 귀주대첩과 강감찬

대학 때 불친절하거나 맘에 안드는 까페 주인 골탕먹이는 장난 중에 그런 게 있었어. 까페에 전화를 해, 아 거기 이순신씨 좀 바궈 주세요. 주인은 이순신씨를 부르며 장내를 한 바퀴 돈다. 다른 놈이 전화를 해. 김유신씨 계십니까. 고개 갸웃하면서 주인은 또 김유신을 찾으며 한 바퀴. 그 다음에 한놈이 또 전화해서 강감찬씨를 찾아. 이쯤되면 주인은 눈치를 채. 버럭 화를 내. “너 뭐하는 놈이야?” 이때 전화받는 녀석이 “아 나는 을지문덕이오” 하면서 끊어 버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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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듯 우리 역사에서 장군이라면 빠지지 않는 장군으로 강감찬을 빼놓을 수 없겠지? 참으로 시험에 많이 나온 문제였잖냐. 을지문덕 살수대첩 강감찬 귀주대첩 이순신 한산대첩 그 중 귀주대첩이 1019년 양력으로 3월 10일 벌어진다. 이 귀주대첩에서 10만 거란군에 맞선 고려군의 수장이 강감찬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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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주대첩 전에 강감찬에 대해 좀 이야기해 보실까. 그에 대한 여러 묘사 중의 하나로 즐겨 등장하는 게 “작고 못생겼다.”지. 집안도 좋고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할만큼 머리도 비상했던 사람이지만 애석하게도 기럭지와 생김새가 좀 처졌던 모양이야 그래서일까 과거도 서른 여섯, 좀 늦게 급제했을 뿐더러 급제하고도 한 15년간 그의 행적은 잘 드러나지 않아. 내 생각에는 좀 죽을 쑨 게 아닌가 해. “쬐그맣고 못생긴 것이 일은 기가 막히게 잘 해” 정도의 평판이 돈 다음에야 출세길이 트인게 아닐까. 한국은 예나 지금이나 잘생기고 봐야 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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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못생긴 땅딸보를 커버하기 위해 수많은 전설이 만들어지지. 강감찬이 태어난 집에 별이 떨어졌는데 (그래서 사당 다음 역이 낙성대 역이지. 별이 떨어진 동네.) 후일 송나라 사신이 강감찬을 보고는 문곡성 (지식과 학문을 상징하는 별)이 여기 있다고 했다느니 강감찬이 자기 부하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자기는 뒷전에 서 있었는데 송나라 사신이 강감찬을 알아봤다느니 하는 얘기들이 그건데 그런 얘기의 이면에서 우리는 슬프게도 “키작고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를 부르짖는 강감찬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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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의 또 다른 설화들은 거의 강릉이니 경주니 지방관으로 있을 때를 묘사하고 있지. 이건 개경에 있지 못하고 지방으로 뺑뺑이 도는 관운과는 거리가 먼 벼슬살이를 말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거기서 강감찬은 비범한 능력을 보여 주지. 호환이 발생하는 곳에 가서 인간으로 변한 호랑이두목과 담판해서 호랑이들을 몰아낸다거나 개구리 울음 소리를 멎게 한다거나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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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들은 그가 지방관으로 돌면서도 똑 부러지는 일 처리를 보여 주었고 ‘귀신도 부리는’ 사또로 자리매김했음을 말해 주겠지. 이 유능한 ‘난장이 똥자루’는 나이 예순 넘어서 진면목을 발휘하게 돼. 2차 거란 침입 때 항복하자는 의견에 맞서 “적의 예봉을 피한 뒤 회복할 방도를 찾자‘고 주장했던 그는 임금으로부터 ”당신이 아니면 우리가 오랑캐옷을 입을 뻔 했다.“는 칭찬을 받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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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국제정세는 지금과 묘하게 비슷해. 신흥 거란족의 요나라가 한족의 송나라를 압도하며 화북 지역을 장악했고 고려는 그 틈바구니에 끼어 있었지. 고려는 국경을 맞댄 요나라와 전쟁 또는 강화를 거듭하면서도 송과 요 사이의 줄타기 외교를 실천하고 있었어, 요나라로서는 눈에 가시일 밖에. 두 번의 대규모 침략 끝에 마침내 요나라의 전성기를 일군 황제 성종은 세 번째의 고려 침공을 기획한다. 황제의 친척인 소배압이 이끄는 10만 대군이 움직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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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의 침략에 비해 군대 수는 줄었지만 대부분 기병이었던 그들은 병자호란 때 청나라처럼 ‘전격전’을 꾀해. 다른 지역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개경으로 개경으로 달려가서 고려 왕을 사로잡으면 전쟁을 끝난다고 생각한 거지. 하지만 고려군은 정면으로 부딪치지는 않으면서 복병전을 펼치고 기습을 하고 또한 동시에 완벽하게 마을을 비우는 청야를 시행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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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거란군이 쓰러졌지만 어쨌건 선봉이 개경 근처에 도착했는데 그들을 맞은 건 완벽히 요새화되고 왕조차 피난 안가고 결사항전을 다짐하는 개경이었지. 거기다 선봉대가 고려군의 공격에 거의 전멸되고 식량 등 보급까지도 여의치 않자 소배압은 후퇴를 결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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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은 그 퇴로를 점검하다가 어느 한 지점을 지목한다. 귀주. 이때 고려군이 동원한 병력이 20만이라고 기록돼 있는데 어쨌건 전군은 귀주에 집결했다 거란군이 꼭 거쳐가야 할 요충지였어. 한국의 전쟁은 주로 성을 뺏고 지키는 공방전이 많고 야전에서 펼치는 이른바 ‘회전’(會戰)은 흔하지 않은데 귀주에서 강감찬은 이 대회전을 통해 거란의 손을 꺾을 생각을 한 것 같아. 마침내 거란군이 나타난다. 비록 후퇴는 하고 있다지만 한족을 벌벌 떨게 한 정예병 거란군은 거침없이 고려군과 격돌한다. 기록상으로는 10만 대군과 20만 대군의 정면승부. 영화로 만들면 반지의 제왕은 저리 가라 할 스펙터클이 나올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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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를 휘두르며 거란족이 탄 말의 다리를 꺾어버리는 고려 보병들 , 변발 휘날리며 활을 쏘아대는 거란 궁기병들, 검차를 앞세우고 돌격하는 고려 검차병, 요나라의 자랑 중장기병들이 어지러이 뒤섞였지. 그런데 여기서 뜻밖의 일이 벌어진다. 개경을 지키러 올라왔던 동북면 병력. 즉 그 후로 수백년 동안 최정예군으로 꼽히는 동북면 (함경도) 기병대 1만 2천기가 천둥 같은 말발굽 소리를 울리며 거란군의 뒤를 찌른 거야. 그야말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적재적소에 등장한 지원군이었지. 대등한 힘겨루기에서는 조약돌 하나 올려놔도 승부가 갈리는데 이 1만2천의 기병대는 울산바위의 무게로 거란군을 짓눌렀다.

더하여 희한한 일 하나, 그때까지 불던 북서풍 대신 남풍이 거세게 거란군쪽을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한 거야. 그 순간을 강감찬은 놓치지 않았고 사기가 오른 고려군은 완전히 기가 꺾인 요나라 군대에 대한 인간 사냥을 시작했지. 10만 명 중에 수천 명이 살아 돌아갔다니 거의 다 죽었다고 봐야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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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강감찬은 아마 군사들에게 대충 이렇게 비쳐졌겠지. “어떻게 그렇게 북서풍이 불다가 별안간 남풍이 부냐. 장군님은 사람이 아니여.” “하모 장군님은 벌써 아침에 알았다카든데.” “알은 게 다 머시여. 장군님이 바람을 부르신 거랑께.”

제갈량도 동남풍을 부른 게 아니고 간혹 있던 역풍을 이용한 것이었으니 강감찬도 그날의 남풍을 예측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그런 신이한 능력보다는 다른 기록에서 강감찬의 역량을 본다. 이 귀주대첩 전 그는 임금에게 아뢴 뒤 경상도 지역에 있던 자신의 땅을 “자식을 군대에 보낸” 이들에게 나눠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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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나간 이들이 집 걱정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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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은 장군이 아니라 문과에 장원급제한 문신이었어. 그런 그가 대군을 이끌고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던 건 그의 특출한 능력이나 귀신을 부리는 술수가 아니라 바로 별안간 군대에 끌려나오고 피를 흘려야 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이해하고 그들의 아픔을 헤아리는 마음 때문이었을 거야. 다들 말은 하지만 실천은 어려웠던 마음. 그 마음은 아마도 키 작고 못 생겨서 멸시받으며 지방관으로 떠돌던 때에 쌓이고 맺혔던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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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성대에 떨어진 작고 못생긴 별 하나는 그렇게 우리 역사의 큰 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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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인품과 지성이 현재 우리나라 최고의 수재들을 낙성대로 불러모으는 것일까요?! :D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낙성대 수재 집결설 일리 있다고 생각합니다 ㅋ

  ·  7 years ago (edited)

늘 적은 수의 우리군으로 10만 20만 대군을 이긴 것이 궁금했었는데..
강감찬 장군이 먼저 사람들의 아픔을 헤아리는 리더였기때문에
가능했던거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아픔을 헤아린다는 거.. 자기의 아픔 아닌 아픔을... 그거 쉬운 일이 아니죠.

와 강감찬 장군이 매우 작았었군요! 낙성대 지명의 유래도 오늘에야 알고 갑니다^^;;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팔로와 보팅합니다~ 좋은 글 많이 보러 오겠습니다^^

낙성대를 서울대입구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런 유래가 있었군요 ㅎㅎㅎㅎ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네 별이 떨어진 곳이라고 하죠 ㅋ 옛 위인들은 전설 한자락씩 끼고 있습니다 ^^

#kr-gazua 태그를 빼먹은거 같아. 요즘 반말글엔 반말로 달아주는게 예의라고 들었어ㅋㅋ 맨날 지나가는 낙성대가 대학교는 아닌줄 알았지만 어떤 곳인지는 오늘 처음 알았네 고마워+_+ 이 글을 본 이상 삼국지13을 좀 하다가 자야겠어 ㅋㅋ

미안합니다 ^^ 딸 또는 후배에게 주던 형식으로 얘기한 것들이라

ㅋㅋ 저도 장난친거에용 +_+ 늘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요즘은 치타가 오진 않네요?

몰랐던 내용에 대해서 알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보팅드려요~

감사합니다 ^^ 자주 들러 주세요

드라마나 영화화 하기에는 강감찬 장군에 대한 고증이 별로 남아있지 않아서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오늘 글을 보니 귀주대첩 하나만이라도 잘 풀어나가면 좋은 역사 영화가 등장할 것 같네요. :)

낙성대의 의미도 잘 배워갑니다.

PS. 문득 피겨 스케이팅의 감강찬 선수가 떠올랐습니다. 부모님께서 강감찬 장군님을 많이 존경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 피겨에 그런 선수가 있나요 ? ^^ 몰랐습니다. 강감찬 처럼 불굴의 영웅이 되길 바랍니다 ㅋㅋㅋ

예전이나 지금이나..지도자는 이해하고 소통하는 마음이 중요한듯합니다. 땅딸보 강감찬 장군얘기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네 동의합니다... 그게 우리가 필요한 지도자가 될 겁니다

역사에 조예가 깊으시고 글도 아주 재미있게 잘쓰시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