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5년 3월 7일< 볼레로 >의 모리스 라벨 탄생

in kr •  7 years ago 

1875년 3월 7일 모리스 라벨의 특이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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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슬픔의 볼레로>라는 영화가 있었어. 한 30년 전에 본 영화고 줄거리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아. 2차대전 이후 수십년 동안의 기나긴 세월을 무대로 역사의 격랑에 휘말려 버린 예술가들, 그러니까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나 발레의 황제 누레예프, 샹송의 명인 에디뜨 피아프의 사연을 담고 있었다는 정도. 하지만 그 영화에서 매우 반복적이지만 묘한 중독성이 있는 음악 하나가 머리 속에 박혔다. <볼레로> . 관악기 독주 느낌의 고요한 멜로디가 폭풍 같은 드럼과 함께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멜로디로 변신하지만 그 테마는 여전히 같은 특이한 음악이었지. 이 음악을 작곡한 모리스 라벨이 1875년 3월 7일 테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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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도 음악 애호가로서 아들의 재능을 발견하고 일찍부터 음악 교육을 시키긴 했지만 모리스 라벨의 영감은 스페인계였던 어머니에게서 온 것이 상당한 것 같아. <볼레로>만 해도 18세기 유행했던 스페인 무곡에서 나온 이름이거든. 원래는 발레 음악이었고 다음과 같은 스토리를 상정하고 지어진 작곡된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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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작은 술집, 손님들이 어둠침침한 가운데 여기 저기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그러던 중 한가운데 탁자 위에서 한 여인이 볼레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 춤은 외롭고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여인은 똑같은 리듬을 반복하면서 점차 그 몸짓이 격렬해진다. 손님들은 점점 여인을 주목하게 되고 박수와 발로 장단을 맞추기 시작하고 급기야 모두 일어나 여인과 함께 열광적으로 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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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라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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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레로> 음악을 들으면 이 풍경이 거짓말처럼 그려지는 경험을 하게 돼. 좀 야릇한 얘기를 하자면 이 영화는 최고의‘섹스 뮤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나긋나긋한 속삭임에서 시작되어 격렬한 몸짓으로까지 이어지지만 결국은 단순한 남녀의 동작 말이지. 라벨의 말도 의미심장하다. “내 걸작은 물론 볼레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음악을 담고 있지는 않아.” (그럼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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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볼레로>는 오케스트라에게는 매우 골치 아픈 곡이었어. 테마 멜로디와 리듬을 동일한 느낌과 호흡으로 유지한다는 게 어디 쉽겠어. 특히 드럼 주자는 죽을 맛이지. 곡 내내 한 번도 못 쉬고 일정한 리듬을 유지하는 집중력을 발휘하는 게 어디 그리 쉽겠어.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 곡은 연주자에 따라 그 길이가 들쭉날쭉하기로 유명해. 라벨 자신은 17분 정도가 알맞다고 얘기했는데 작곡자의 의도를 존중한 녹음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하네. 심지어 유명한 토스카니니는 이 곡을 13분에 끊어 버리기도 해. 또 어떤 이들은 20분이 넘게 연주하기도 헸다는데 아무래도 나같은 무식한 청중은 잠들어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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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은 베일에 싸인 사생활로 일관했다. 그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아. 그래서 동성애자라는 소문도 있지. 실제로 <볼레로>를 주문했던 여류 무용가 루빈슈타인도 그랬고 말이야. 설사 그랬다고 해도 동성애가 정신병 내지 범죄로 간주되던 시대에 라벨이 커밍아웃할 이유는 없었겠지. 어쨌건 그는 평생 연애 한 번 제대로 한 적 없고, 음악가 주위에 흔한 여자 하나도 그의 생애에는 걸쳐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서 스물 넷에 자신을 후원하던 공작 부인에게 바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 관한 이야기는 좀 흥미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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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번호 19,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스페인의 궁정 화가 벨라스케스의 그림 <왕녀 마르가리타의 초상>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곡이야. 이때의 공주는 스페인 왕 필리페 4세의 딸 마르가리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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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삼촌과 정략 근친 결혼을 해야 했고 합스부르크 집안의 유전병이라 할 주걱턱으로 얼굴이 흉해지고 일찍 세상을 떴던 비운의 공주. 라벨은 이 공주의 어린 시절을 그린 벨라스케스의 그림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 인상을 음악으로 풀어냈던 거지. 그런데 1999년 6월호 월간 미술지에 난 김원구의 기사를 보면 이걸 일종의 ‘피그말리온적인 사랑’으로 묘사하고 있네. 즉 라벨이 자신이 만든 조각상에 반했던 피그말리온처럼 벨라스케스 그림 속의 왕녀를 사랑했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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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이 서민인 자기 신분과는 다른 왕녀를 영원한 사랑의 대상으로 삼은 것도 하나의 플라토닉 러브일 것이다. 그는 그림 속 왕녀의 기품있는 얼굴이며 몸의 아름다움에서 남몰래 새로운 짝사랑의 대상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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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랬을까. 라벨이 저승에서 대답할 리 없고 설사 물어 봐도 지금도 입을 열 사람 같진 않지만, 나는 이해가 된다. 라벨같이 예민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많은 남자들의 로망은 뜻밖에도 만화 주인공이나 사진 속의 미지의 여인일 때가 있는 것처럼, 상처받기 쉬운 사람은 상처를 주지 않을 대상, 그리고 상대방의 응답이 없을지언정 자신의 사랑을 거절할 수 없는 상대를 찾을 수도 있을 게야. 더구나 라벨은 그렇게 외로운 삶의 외투 속에 뜨거운 심장을 포개고 있었던 사람이라 더욱 그렇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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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대전 때 군인으로도 못갈 허약 체질 주제에 공군 조종사를 지망했고 그게 허용되지 않자 트럭 운전수로라도 참전하겠다며 뜻을 관철한 (그 유명한 베르덩 전투의 현장에 라벨은 동참하게 되는데) 사실이나, “기교와 지식만으로 이루어진 음악은 그것이 씌어진 종이만큼의 가치도 없다. 작곡가는 그가 작곡하고 있는 음악을 강렬하게 느껴야만 한다"고 말하던 그 감성이나 , 최후의 순간에는 ”아직 내 머리 속에는 음악이 많단 말이야!“라고 절규하던 열정을 보면 그가 일생 동안 사랑하는 여인 하나 없이 음악과만 사귀다가 돌아갔을 것 같지는 않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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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볼레로..
영상 하나를 덧붙여드리고픈 강렬한 욕구에 사로잡혀서 댓글을 달고 갑니다. 혹시라도 원치 않으시면 새 댓글로 알려주시면 댓글을 삭제하겠습니다. 말씀해주세요! (다만 제 댓글에 대댓글로 다시면 제 댓글이 삭제가 안 된다고 하니 새 댓글로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파리오페라발레 수석 무용수였던 전설의 실비 기옘의 볼레로 공연입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제가 못한 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