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3월 12일 손문의 기묘한 사랑

1925년 3월 12일 쑨원의 죽음, 그의 기묘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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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이나 후배에게 들려주는 방식으로 쓴 거라 반말투입니다...... 양해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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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출신의 혁명가 하면 체 게바라가 떠오르지만 그보다 두어 세대 전 사람인 쑨원, 우리 귀에 익은 이름으로는 손문도 있어. 중국 혁명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며 대륙과 대만 양쪽 모두에서 숭앙받는 이름. 민족 민권 민생의 삼민주의의 주창자인 그는 솔직히 말하면 혁명가로서는 그다지 성공적인 사람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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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11년까지 무려 열 두 번이나 무장 폭동을 일으켰지만 죄다 실패했고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날 때는 중국에 있지도 않았어. 혁명이 일어난 뒤 부랴부랴 귀국했지만 그는 혁명을 지도한 게 아니라 혁명군을 토벌하러 온 위안 스카이 (조선에도 오래 나와 있었던)와 협상을 하지. “청나라를 끝장냅시다. 당신이 정권을 쥐시오.” 위안 스카이는 총구를 베이징으로 돌리고 ‘마지막 황제’ 부의는 제위에서 물러나게 된다. 영화 <마지막 황제>의 그 꼬마가 열 살이 채 안됐을 때였지.

쑨원 ? 재주는 걔가 넘으라 해. 그리고 내가 황제가 되겠다. (그러나 오래 가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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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인 최후의 결사단>인가 하는 영화도 있다. 망명 중이던 손문이 홍콩을 비밀리에 방문하자 청나라 정부는 그를 암살하려고 하고 8인의 결사단이 쑨원을 목숨을 내놓고 지키는 장렬한 활극이었는데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지만 가장 큰 줄기가 거짓말이야, 그때 손문은 홍콩에 있지 않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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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는 일마다 신통치 않았던 그가 왜 중국과 대만 양안 모두에서 숭앙을 받을까. 그건 그 숱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혁명에 대한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대포’로 불리울지언정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부르짖었기 때문이었을 거야. 레닌이 표현한바에 따르면 “처녀같은 순진함을 가진” 사람이었지. 그를 존경한 사람 가운데 송가수, 중국 발음으로는 쑹자수라는 사람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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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양반은 설명하기 매우 복잡한 사람이야. 일찍이 기독교도가 되어 미국으로 건너가 목사까지 됐지만 중국에 돌아와서는 목사 때려 치우고 사업에 손을 대 거부가 된 사람이야. 하지만 그러면서도 중국 혁명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고 그 꿈을 실현시킬 사람으로 손문을 선택했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 준다. 손문이 하는 일이라면 돈을 아끼지 않았고 아프다고 하면 자신이 애지중지 기른 딸을 보내 간호도 해 줬고 비서가 필요하다면 역시 딸이 그 임무를 맡도록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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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문이 필요하다고 한 건 영문 비서였는데 외국 생활 수십 년에 영어를 익숙하게 하는 손문이 왜 영문 비서가 필요한가 따위의 의심은 없었어. 설마 자기 친구가 스물 여섯 살 차이 나는 자기 딸에게 흑심을 품으리라고 상상하는 아버지가 어디 그리 흔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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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이후 서태후의 전용 열차를 타고 다니며 여러 미녀들과의 요상야릇한 기차 속에서의 향락을 즐기기도 했던 이 중년의 혁명가는 친구이자 후원자 송자수의 둘째 딸 경령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어. 그런데 문제는 송경령 역시 이 아버지 뻘 혁명가의 구애에 반응을 했던 거지. 청혼을 받은 송경령은 “결혼은 우리 둘이 하는 거지 부모 허락 받아야 되냐.”는 손문을 뿌리치고 허락을 받아내겠다고 부모를 찾아 온다.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게 사랑에 빠진 여자라지만 더 대책없는 건 사랑에 빠진 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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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가수도 송가수지만 데굴데굴 땅에 구른 사람은 송가수의 아내, 송경령의 어머니였지. 송가수 역시 환장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그는 즉각 딸을 집에 가둬 버린다. 하지만 손문이나 송가수나 역시 속내가 구렁이 몇 마리 들어앉은 것 같은 중국인들이었다. 한길사에서 나온 김명호 저 <중국인 이야기>를 인용해 보자. (이 책 기깔나게 재미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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쑨원은 이런 편지를 송가수에게 보내. “경령이 가정 있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더구나 그는 대반역자다. 결혼까지 하려 한다는데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뭐 이런 뻔뻔한 사윗감이 다 있나. 송가수 역시 바로 답장을 보낸다. “금시초문이다. 하늘은 물론 아이들이 들어도 웃을 일이다. 경령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뜬소문에 불과하다. 만에 하나 가정이 있는 남자와 결혼하겠다면 허락하지 않겠다. 이건 선생도 나와 같으리라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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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문이 송경령과 결혼한다는 소문이 퍼졌을 때 뒤집어진 건 송가수 부부만이 아니었어. 손문의 동지들도 벌떼같이 일어나서 고향의 조강지처는 어찌할 것이며 동가식서가숙할 때 손문을 뒷바라지했던 홍콩 여자 진수분은 어찌할 겁니까 그러나 손문은 혁명가로서는 매우 듣기 거북한 말까지 하며 그들의 입을 막았대. “송경령과 결혼할 수 있다면 나는 내일 죽어도 좋아! 너희랑은 천하대사를 논의하지 가정사는 논의하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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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령은 하녀의 도움으로 집안을 탈출해서 손문에게 달려가고 손문은 급행으로 결혼식을 올린다. “....서로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한다. 서약에 위배하는 행위를 했을 경우 법률과 사회적 제제를 받아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각자의 명예를 위해 상대방을 헐뜯거나 원망해서는 안된다.”는 일본어 서약과 함께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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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송가수의 행동에 대해서는 얘기들이 엇갈려. 한 일본인은 송가수가 손문을 찾아서는 “철없는 내 딸을 부탁한다.”고 세 번 절하는 기이한 풍경을 봤다고 주장하지만 경령 자신은 아버지가 격하게 손문을 규탄했고 자기와도 인연을 끊었다고 주장하지. 후자가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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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가황조>라고 1997년 영화가 있어. 이 영화에서 배우 장만옥이 송경령 역을 맡는데 이 영화에서는 아버지 송가수가 결혼식장에 뛰어들어 욕설을 퍼붓는 것으로 등장하지. 송가수는 딸들 교육에 무진장 신경을 쓴 사람이었지만 거부 집안에 시집간 첫딸을 제외하면 거푸 배신을 당해. 셋째 딸 미령도 자기 나이의 아들이 있는 유부남 장개석을 선택해서 시집을 가 버리니까. 이후 세 자매의 운명은 크게 엇갈리지. 송경령은 중국 혁명의 상징으로서 중국 공산당의 원로로 살다가 죽었고 송미령은 남편과 함께 대만으로 건너갔고 맏딸 송애령은 미국으로 떠나 버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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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사를 주무른 세 자매. 이것도 참 기묘한 운명이다.

위 영화 속에서 송가수의 어머니는 염치도 없이 둘째 딸 달라고 찾아온 또래의 사위 장개석에게 몇 가지를 요구해. 가족 관계 정리할 것, 그리고 기독교인이 될 것. 장개석은 약속을 했고 성경책을 받아. 송가수의 아내는 그 안에 송가수가 쓴 글귀가 있으니 잘 찾아보라고 하지. 하지만 어디에도 송가수의 글씨는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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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 송경령이 죽기 전에 동생을 보고 싶다고 했고 미령은 즉시 중국으로 달려오지만 언니는 동생을 보기 전 세상을 떠나. 그때 흘린 동생 미령의 눈물이 성경책에 떨어지자 습기를 머금으면 나타나는 특수 잉크로 썼던 송가수의 글씨가 드러난다. 그 내용은 “革命就是愛情 愛情也是革命” (혁명이 곧 애정이고 사랑이 곧 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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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이야기인지 실화인지 잘 모르겠지만 송가수가 야속한 딸들과 도둑놈같은 사위들, 역사를 바꾸고 주무른 사위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헌사가 아니었을지. 물론 송가수는 장개석은 보지도 못했지. 분기를 누르지 못했던지 사위보다 일찍 죽었으니까. 그리고 그 2년 뒤 1925년 3월 12일 손문도 죽었고. 사랑이란 정말로 있을 수 없는 일을 있게 만들고 응당 있어야 할 일을 사라지게 만드는 묘한 물건이었던 듯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