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25주기에 부치는 짤막글

in kr •  4 years ago 

김광석 25주기에 부치는 짤막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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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와서 받은 내가 얼마나 문화적으로 황폐하고 삭막한가를 깨닫고 상처받았던 기억이 난다. 나의 10대는 그렇게 화려하지 못해 집 학교만 오가는 미련밋밋했고 딱히 음악에 빠지거나 기타 잡기도 곁눈질하지 않았던 재미없는 인생이었던 바, 아무개 가수의 팬이거나 프랑스 영화를 섭렵하거나 그림에 조예가 있거나, 하다못해 '들국화' 몇 집을 산 적도 없는 그냥 깜깜이 촌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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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화적 삭막함은 천성에 가까운 것이라 그 후로도 그렇게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음악에 조예가 깊지 못하고 문외한에서 한 발짝 벗어난 처지로,지금까지 평생 내 돈 주고 가 본 가수의 콘서트는 정태춘과 김광석 딱 두 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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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콘서트는 1994년 백수의 처지였을 때 , 친구가 불우이웃돕기 돕기 차원에서 주선한 미팅에서 만난 여학생과 함께 갔었다. 첫 만남에서 술도 한 잔 하고 즐거이 헤어지면서 애프터 신청을 했고 여학생도 흔쾌히 받았었다. 그때 나온 얘기가 김광석 콘서트였다. "모월 모일까지 대학로에서 한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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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 표를 평생 처음 사 보는 것이라 고생을 했던 기억이 난다. 가까스로 표는 구했지만 미리미리 가 있지 않은 덕에 우리는 입구에 서서 공연 두 시간여를 개겨야 했다. 그래도 워낙 김광석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던지라 다리 아픈 줄 모르고 공연에 열중하는데 그 모습이 안스러워 보였던지 별안간 김광석이 우리를 보고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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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안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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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음에 우리를 보고 말하는지도 몰랐다. 함께 왔던 여학생이 "괜찮아요!"하면서 소리를 지르기 전까지는. 김광석은 느닷없이 "만난지 얼마나 됐어요?"라고 물어왔고 그제서야 나도 기운차게 외쳤다. "열흘이요." 그러자 김광석이 그 특유의 함박웃음을 지으며 또 물어 왔었다. "어떻게 잘 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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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왜 그랬는지 전혀 분간이 가지 않고 지금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일이지만...... 그 질문을 이해했으면 아까처럼 목청 돋워 "예!" 하면 되었을 테지만..... 나는 희한한 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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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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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맘에 안드는 것도 아니었고, 결정적으로 찬 밥과 더운 밥과 삼층밥과 연탄밥을 가릴 처지도 아니었는데. 글쎄요는 웬 댓바람에 얼어죽을 글쎄요냐 말이다. 나름대로는 상대가 부담될까봐 배려(?)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그게 배려냐 배신이지.
왁자한 웃음이 터졌고 그때까지 해사하던 여학생 얼굴이 확연히 얼어붙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겨울왕국에서 사람 얼어붙는 그 모습 실화다. 공연이 끝나고 난 후 인사조차 몇 마디 나누지 않고 상대는 시베리아 고기압을 형성하고설랑 된바람으로 떠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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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가로등불이 하나 둘씩 켜지는데 웬지 모든 것이 꿈결 같았다.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은 대체 무얼 찾고 있었던지. 뭐라 말하려 해도 기억하려 하여도 허한 눈길만이 되돌아왔다. 옷깃을 세워걸으면 웃어 보려 해도 웃음은 아니 나왔다. 눈물까진 나올 것은 없었지만 웃음도 아니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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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이 고 김광석의 축복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여학생과 그렇게 단번에 쫑이 났기에 오늘날 내 인생의 최대의 축복이라 할 아내를 만난 것이요,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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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렴 그러면 그렇지 말고. 다시금 광석이 '형'에게 감사함을 표한다.. 형 그때 질문 잘했어요. 그때 그 질문 안했으면 아후 내 인생 어떻게 됐을지 몰라..... 진짜 진짜 고맙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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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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