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세 군인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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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네게 참 하기 힘든 얘기를 들려 줘야겠구나. 올해는 2018년. 1948년 4월 3일 남한만의 단독 총선거 반대를 외치는 제주도민들이 무장 봉기를 일으킨 ‘4.3 사건’ 70주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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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봉기라고 하지만 무장은 빈약하기 이를 데 없었어. 구식 일제소총 27자루, 권총 3정 과 죽창이 그 ‘무장’의 전부였으니까. 실제 봉기에 참가한 이들도 수백 명에 불과했어. 그나마 공산주의 이념에 충실한 이들은 그 중에서도 소수였고 미 군정의 그릇된 행정과 경찰들의 만행에 분노한 제주도민들이 대부분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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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태를 꿰뚫어 본 사람이 있었어. 제주도 주둔 9연대장 김익렬 중령. 그는 4.3 봉기를 이렇게 파악하고 있었어. “이는 미 군정의 감독 부족과 실정으로 인해 도민과 경찰이 충돌한 사건이며 관의 극도의 악정에 견디다 못한 민이 최후에 들고 일어난 폭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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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이전부터 미 군정은 육지의 경찰대는 물론 좌익이라면 이를 갈아붙이는 북한 출신 월남민으로 구성된 서북 청년단을 제주도에 투입하고 있었고 이들은 가혹한 진압으로 제주도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었거든. 특히 서북 청년단의 만행은 상상을 넘어섰어. 그들에게 ‘빨갱이’란 곧 악마였고 제주도는 악마의 섬 같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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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이 대부분이었던 서북청년단원들은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사람의 몸에 죽창을 꽂고 산 채로 불태우는 악행을 태연하게 자행하게 돼. 공산주의의 기역자도 모르는 일자무식의 제주도민일지라도 그들의 만행 앞에서는 치를 떨 수 밖에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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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군정은 무장 봉기를 즉시 진압하라고 명령하지만 김익렬 중령은 제동을 건다. “극렬 분자는 2-300명에 불과한 만큼 화평 선무 귀순 공작을 펴 보고 그 뒤에 토벌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 뿐 아니라 김익렬 대령은 실로 대담한 ‘선무 귀순’ 공작을 펼친다. ‘인민 유격대’ 사령관이라는 김달삼을 직접 만나기로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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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4월 28일 오후 1시 제주도 주둔 국방경비대 최고 지휘관 김익렬은 운전병과 장교 한 사람만 거느리고 인민유격대가 지정한 회담 장소로 향해. 5시간의 밀고 당기는 협의 끝에 그들은 즉각적인 전투 중지, 무장해제 및 투항, 범법자 명단의 자발적 제출(명단 이외의 사람은 수사와 처벌 대상에서 제외) 등 파격적인 합의를 끌어냈어. 이 약속의 이행을 보증하기 위해서 김익렬 중령은 또 한 번의 결단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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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족을 인질로 삼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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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인민유격대 사령관 김달삼은 이렇게 대답한다. “노인을 산중에 머물 게할 수는 없으니 우리 무장대가 감시할 수 있는 민가에 머물도록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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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삼
이 협상이 순조롭게 이뤄졌다면 제주 4.3은 소수의 희생자를 낳았던 며칠 간의 소요 사태로만 역사에 기록됐을지도 몰라. 공권력에 맞서 일어선 이들일망정 궁극적으로 자신이 보호해야 할 대상임을 포기하지 않았던 국군 지휘관과, 무기를 들었을망정 최악의 사태는 피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이는 ‘인민 유격대’ 사령관은 평화를 되찾은 제주 바다를 바라보며 술잔을 나눴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 평화를 못 마땅해 하는 사람들이 있었어. 좌익들과의 평화란 있을 수 없으며 그들을 근절해야 진정한 평화가 온다고 믿은 이들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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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오라리(里)라는 마을에 방화가 일어나 10여 채의 민가가 불탔다. 경찰은 좌익들의 소행이라고 우겼지만 김익렬 중령측의 조사 결과 우익 청년단이 경찰의 비호 아래 저지른 짓이었지. 또 봉기에 가담했다가 평화 협상에 따라 마을로 복귀하던 이들이 총격을 받는 일도 벌어졌어. 이것도 경찰과 우익의 소행이었다. 그러나 미 군정은 이를 무시했어. 미 군정은 김익렬을 제주 주둔 국방경비대 9연대장에서 해임하고 9연대도 11연대에 편입시켜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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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11연대장으로 새로이 부임한 사람이 박진경 중령이라는 군인이었어. 김익렬과는 달리 박진경 중령은 미 군정과 공권력에 저항하는 이들은 물론 그들에 동조하는 이들 모두를 적으로 돌려 버리는 사람이었어. 그의 취임 훈시는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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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독립을 방해하는 제주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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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특유의 과장된 표현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말은 엄청난 살기를 띠고 있었지. 그는 행동으로 그의 취임사가 과장이 아니었음을 증명했어. “폭도와 구분이 애매하기 때문에” 한라산 중턱의 중산간 지역 주민들을 쓸어 담다시피 체포해 버렸으니까. 부임한지 불과 한 달 열흘(48년 5월 6일~6월 18일)만에 대부분이 10대와 부녀자 그리고 노인들인 '포로'가 무려 6천여 명에 달했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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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지구 미군 책임자 브라운에 따르면 "제주도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휩쓸어버리는 작전"이었지. “경비대의 힘을 과시함으로써 일반 민중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고, 유격대와 그들을 분리시켰으며 유격대를 더욱 깊은 산 속으로 몰아넣었다는 점에서는 성공이었다. 그러나 그의 작전은 민중들이 그때까지 갖고 있던 경비대에 대한 상대적 호감을 반감으로 전환시켰으며 경비대 내부를 동요시켰고 유격대에게 경비대도 경찰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적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어 더 큰 대립과 갈등을 불러 일으켰다." (박명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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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끝이 박진경 중령
하지만 미 군정은 박진경에게 대령 계급장을 달아주며 공로를 치하한다. 박진경 중령 아니 박진경 대령은 제주도 유지들과 거창한 진급 축하연을 가지고 크게 취해서 부대로 돌아와 잠들었는데 다음날 아침 그는 깨어나지 못했어. 휘하 3대대장 문상길 중위 등 부하들이 그를 암살해 버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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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경 대령을 암살한 이들은 남로당, 즉 남조선 노동당의 조직원들로 알려져 있어. 하지만 주범이라 할 문상길 중위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어. 즉 최소한 유물론을 받아들인 공산주의자는 아니었다는 얘기지. 하지만 그는 제주도민들, 즉 자신이 지켜야 할 국민을 적으로 몰고 그 삶의 터전을 초토화해 버린 공로로 승진한 상관을 용서하지 못했어. 그의 최후 진술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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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박진경 연대장과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저 세상 하느님 앞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인간의 법정은 공평하지 못해도 하느님의 법정은 절대적으로 공평하다.” 문상길은 사형 선고를 받고 처형된다. 대한민국 성립 후 사형 1호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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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의 폭풍이 몰아치던 제주도에 있었던 세 명의 군인의 삶과 죽음을 곱씹어 보자. 그들의 행적은 이후 우리나라가 맞닥뜨려야 했던 상황과 얼추 비슷하다. 해방 공간을 장악했던 것은 결국 우리 편 아니면 죽여야 할 적이라는 극단적 논리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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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불사할 수 있고 그에 반하는 이들을 악마로 몰아 전멸시킬 수도 있다고 살기등등했던 세력과, 그 반대편에서 그들을 타도하자고 부르짖던 세력이 자석의 양극처럼 버티고 서 가운데, 엉거주춤 주변에 널려 있던 보통 사람들은 자력에 휩쓸리는 쇳가루처럼 양극 주변으로 빨려 들어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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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렬처럼 양극의 중간에서 조율을 해 보려던 이들은 설 곳을 잃었고 끝내 박진경과 문상길처럼 죽고 죽이는 참극으로 치달았던 바, 제주도에서만 수만 명이 죽어갔고, 한반도는 전면전이라는 끔찍한 운명을 맞이하게 됐던 거야. 우리가 4.3을 제주도에 국한된 사건으로 기억해서는 안되는 이유야. 우리가 4.3을 처절하고도 철저하게 돌아봐야 하는 까닭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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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하여 가장 중요한 것. 1948년 4.3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자신이 돌보고 지켜야 할 국민들을 팽개치고 학살했던 범죄를 저질렀음을 인정해야 해.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고 인간의 존엄성을 근간으로 한 민주주의 국가라면 결코 그러지 못했던 과거와 마주하고 머리 숙이는 일에 게으르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야.
30만 명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 라... 사람을 숫자로 치환하는 행위는 언제나 역겹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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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시울을 붉히네요. 다시 그런일이 일어난다면 난 어떤 선택을 하게될까. 국민에게 비겁을 강요하는 나라가 아니라면, 이러한 역사의 어두움을 밝은 광장으로 끌어내어 양심의 볕에 말려야 할텐데. 양심을 택한 이들이 기림을 받을 수 있어야 할 텐데요. 문상길 중위님 늦게나마 애도드립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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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가슴아프고 슬픈 역사입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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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요..... 어찌 이럴 수 있나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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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쓴신잡에서 누가 그러셨죠, "4.3 당시 우리 가족을 이웃집에 누가 죽였고, 우리 가족이 이웃의 누구를 죽였는지 서로가 알고 살고 있다" 라고.
참 아픈 역사입니다.
깊이 있는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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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다시는 그런 사람잡는 살벌함이 우리 역사에 깃들지 않아야 할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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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슬을 보고난 후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프로에서 김익력 9연대장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참된 군인을 장군으로 진급시키지는 못하고...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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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 진급은 했습니다.... 6.25에도 참전했고 중장으로 전역하죠....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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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그와중에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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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중요한 이유
역사를 공부해야하는 이유
그들이 역사를 숨기고 싶어하는 이유
에휴...
보팅하고 갑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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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이 알고 있던 것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잊지 않도록 해야겠어요.
많은 분들 보시라고 @홍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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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정말 잊지 않아야 할 것이 넘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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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제주여행가서 그현장에 가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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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할 슬픈 일입니다. 참여정부가 유일하게 인정하고 사과한 행정부였다는게... 참 통탄스럽고 그런 사람을 잃었다는 것이 많이 슬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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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제주도민들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마음이 남다르다지요. 암튼 참 오래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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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정치적 금전적 이득을 위해 힘없는 백성들이 도륙된 시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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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륙... 정말 그 말이 실감났던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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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이 사건의 본질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오늘도 이 사건과 관련해 망언을 하시는 분의 목소리가 뉴스에 오르락거리네요. 아픔에 대한 공감이 필요한 일에 끼어드는 정치적 발언들. 아픈 분들을 더 고통스럽게 하는 정치인들이 무슨 소용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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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미몽에 사로잡혀서 역사를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겠지요... 반성 없는 역사는 결코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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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하게 몰랐던 4.3 사건의 이야기를 요즘에 많이 접하면서 다시한번 우리나라의 슬픈 근현대사를 느낍니다. 팔로우하고 갑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좋은 글들이 많은거 같네요. 자주 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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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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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얼마나 야만적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가장 적절한 역사일 것입니다.
70년이 지나서야 이제 겨우
그 역사를 치유하는 과정을 이제 겨우
시작하는 단계라 생각합니다.
아프지만 한걸음씩 나아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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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4.3 당시의 대한민국 정부, 그리고 전쟁 때 보도연맹원들을 학살한 대한민국 정부는 부끄러워하고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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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 기사 그대로 가져오신 것 같은데 문제 되지 않나요 ㅇㅅㅇ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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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 필자라서요.... 스팀잇에 싣는 거 정도는 양해받을 수 있을 겁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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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왓 그렇군요.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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