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에 대하여

in kr •  6 years ago 

거짓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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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00 엄마를 때렸다구요?"
"네 어제 그러셨잖아요. 부인 때리셨잖아요."
"내가..... 00 엄마를.... 때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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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출동 SOS 24> 에서 가정폭력 아이템을 진행하던 중 나는 꽤 기세등등하게 남편을 몰아부쳤다. 현장을 이미 잡았기 때문이다. 어제 멀리서 부부를 지켜보던 중 남편이 부인을 모질게 때리는 걸 카메라에 담았기 때문이다. 요즘 말로 '빼박캔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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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할 테면 부인해 보라..... 고 시작하여 "어 그러셔요?" 비아냥 한 번 쳐 주고..... "선생님 한 번 보시겠어요? 이게 누굴까요?"라고 카메라를 들이밀어 주는 시나리오까지 완성하고 나선 터였다. 결코 내가 밀릴 이유도, 가능성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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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순박한 표정의 남편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데 일단 눈싸움에서 졌다. 매서운 눈초리였다면 마주 쏘아 보면서 기를 죽였을 텐데 그 눈망울은 호수같이 맑았고 송아지의 눈처럼 무던했다. 울먹이기듯 하는 그의 목소리가 이어지자 나는 나도 모르게 시선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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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내를 때리다니오...... 어떻게 그런... 누가 그럽니까? 누가 봤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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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가 깨졌다. 여기서 "아하 그러십니까? 글쎄 본 사람이 있는데....... 허허" 하면서 눙치면서 상대를 궁지로 몰아야 하는데 그만 타이밍과 주도력을 다같이 놓치고 말았다. 어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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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 정말 안그러셨다구요" 말이 흔들리고 혀가 말렸다. 가만 우리가 어제 찍은 게 분명 이 사람이 맞는데..... 그러고보니 키가 좀 컸던 거 같기도..... 아닌데 맞는데... 실루엣이 이 곱슬머린데...... 그리고 돌아볼 때 얼굴이 분명히 찍혔잖아... 맞는데..... 머리가 분주히 돌아가는데 결정타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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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송아지같은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흐른 것이다. 울음 가득한 목소리와 함께. "제가 아내를 때리다니오. 전엔 그랬습니다.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혼 소송 말 나온 뒤엔 그런 적 없습니다. 와이프에게 물어 보세요." 눈물은 여자의 무기만이 아니다. 그 눈물은 내 턱을 강타하는 강펀치였다. "뭔가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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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나갔다 오마 한 뒤 나는 밖에서 대기 중이던 조연출에게 달려갔다. 어제 찍은 테잎 좀 보자. 조연출이 되물었다. 왜요 ? 그래서 혹시 아닐까 해서 확인 좀 하자 했더니 깔깔대고 웃는다. "선배님 분명히 보셨으면서....." 그러게 말이다. 근데 다시 한 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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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어김없었다. 그 송아지눈이 아내를 때린 게 맞았다. 와아 이놈 보게..... 카메라를 들고 달려갔다. 달려가는 도중에 나는 "아 그러셨어요? 모드로 돌아갔고 재차 눈물을 흘리려는 송아지 앞에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그때 내가 쓴 멘트. "여기 이 사람은 어디 사는 누굴까요." 화면을 들여다보며 송아지눈은 정지화면이 됐다. 하지만 소리는 들렸다, 탱크 캐터필러 소리가 들렸다. 그 사람 머리 돌아가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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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보고 난 송아지는 이렇게 말을 꺼냈다. "제가.... 제 정신이 아니었던 거 같습니다. 기억이...... 제가 어제 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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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인정하나 '심신미약'으로 도망가려는 의도. 에라이 소새끼야 욕이 혀끝에 걸려 대롱거렸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이 송아지의 눈물로부터 배운 건 "사람 말 믿지 마라."였다. 사람은 말을 배울때 거짓말을 함께 배우고,대여섯살도 거짓말을 한다 다년간 교육받고 훈련받은 그 거짓말은 사람에 따라 예술적 경지(?)에 이르기도 한다는 걸 송아지는 가르쳤던 것이다. 눈물을 흘리든 혈서를 쓰든 목을 매든 사람은 거짓말을 하면서 그 일을 할 수 있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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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모르지 않았고 분명히 내 눈으로 몇 번을 본 사건을 나는 왜 또 확인했을까. 그건 아마도 달리 믿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차라리 내가 잘못 본 것이길 바란 것도 같다. 이 송아지 눈매의 남자의 선함이 내 착각을 누르고 그 존재를 입증하길 조금은 바라고 있었다는 뜻이다. 어쩌면 그 사람이 “이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내 집 나간 쌍둥이 동생이에요!”를 부르짖었다면 또 그 말에 혹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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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고 쌍둥이 문제 유출 사건을 지켜보면서도 그랬다. 아직 명확한 증거는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누가 봐도 저건 시험 문제 유출”이라며 단정짓는 아내를 비롯하여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런 저런 정황을 얘기하며 기정사실로 수용할 때에도 그래도 저렇게까지 부인하는데 아닐 가능성이 1%라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사실이 아닐 경우 아버지 교사도 그렇지만 두 쌍둥이에게 얼마나 큰 시련일까 혀를 차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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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으로 보면 시험지 유출이 맞다 싶었지만 경찰도 그 ‘증거’를 못 잡는다면 그들을 징계하거나 처벌할 수는 없다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마치 내가 찍은 영상을 못 믿고 다시 확인하던 순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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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늘 경찰의 발표를 보면서 또 한 번 마음 한구석이 허물어져 내렸다. 아무리 부인해도 어쩔 수 없을 듯한 증거들이 제시되는 걸 보면서 게임은 이미 끝났다 싶었다. 그래도 아버지와 딸들은 부인한다고 한다. 앞서 사람은 거짓말을 잘하는 존재라고 했지만 사람은 자신의 거짓말을 믿어 버리는 특이한 재주도 가지고 있다. 자신이 하는 거짓말을 사실로 재구성해 머리 속에 프로그래밍해버리는 것이다. 무너지면 끝이라는 강박은 프로그래밍의 속도와 수준을 높인다. 그때 만났던 송아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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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학교를 간 적이 있다. 저 학교에 수십 년 사진사로 근무했던 ‘개미 아저씨’를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개미 아저씨는 학교와 학생들에게 고마워하며 이런 말을 했다. “사회에 있었으면 참 상처 많이 받았을 겁니다. 그런데 이 학교 안에 있으면서 나는 오히려 보호받았어요. 애들 웃음 보며 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았는데요.” 개미 아저씨가 오늘 이 꼴을 보지 않고 돌아가신 게 다행이다 싶다.

https://www.facebook.com/88sanha/videos/309016079143584/?hc_location=ufi
개미아저씨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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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개인의 일탈일 것이다. 그러나 꼴뚜기가 망치는 건 꼴뚜기 자신이 아니라 어물전이다. 이 꼴뚜기는 한국 교육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 꼴뚜기가 어디 하나 뿐일까 하는 눈초리가 태산처럼 일어섰고 꼴뚜기가 망가뜨린 어물전은 무력하기만 하다 . 그래도 어물전을 믿어야 하는데. 꼴뚜기같은 놈들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은데.

꼴뚜기가 똥칠을 한 어물 한국 교육을 당최 어디서 어떻게 손 봐야 할 지를 모르겠다. 내가 고민할 일도 아니고 해 봐야 별 수 없긴 하지만. 누군가 "내가 한국 교육을 해결하겠다"고 거짓말을 한대도 그게 그럴듯만 하면 막 믿어주고 싶다. 그리고 잊어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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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뭔 죄겠습니까. 규정대로 처벌 해야하는게 당연하겠지만, 아니라고 발뺌하는 모습도 결국은 다 부모 모습이 투영된 것이겠지요.
저런걸 애들한테 저질렀을때는 이미, 좋은 대학교를 가는게 부도덕해지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전제가 있었던 것이겠지요.
애들은 퇴학보다는 자퇴처리하는게 맞다고 생각하구요.
부모는 가중처벌하고, 아이들은 나라에서 정신적 의료행위를 지원해주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될리 없지만)
저러고나면 커서 뭐가 되겠습니까.
학벌과 돈이 우선하는 사회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자퇴가 안된다더군요... 자퇴는 그 성적을 그대로 안고 자퇴하는 거라서..... ㅠㅠ 반발이 심하다고 합니다.
0점 처리 후 퇴학이 결정된 이유죠

예 그런 문제가 있다고 하더군요. 성적을 0점 처리하고, 반성의 기회를 주면 좋겠지만, 무거운 주제라 그렇게 흘러갈 것 처럼 보이지 않네요.
받아들여야지요.

애들도 큰 죄인인것 같네요.
그 아이들때문에 열심히 공부한 다른 아이들이 얼마나 큰 박탈감을 느꼈을까요?
얼마나 큰 좌절을 맛봤을까요?
내신 1등 모의고사는 459등
하지만 지들은 교과우수전형으로 명문대 입학하고 다른 아이들은 수능을 잘 치뤄도 명문대를 갈까말까 한것이 현실입니다.

대학졸업장이 지성인의 상징은 아니지만 저런것들은 대학입학 기회를 원천 차단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안타깝네요. 아이들의 인생과, 저런 선택을하게 만든 학벌주의 한국사회도요.

과연 숙명여고만의 일일까요?
입학사정관제를 거쳐 이름만 바뀐 학생부 종합전형은 현재의 숙명여고 사태와 같은 일을 아주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줄만한 그런 제도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학교관계자 누구라도 행할수 있는것이고 다 알고 있는 비밀로 여러곳에서 행해지고 있구요.

꼴뚜기한마리가 문제가 아니라 고민없이 정책을 만들어내는 공직자들이 문제인듯합니다. 조금씩 손볼것이 아니라 갈아엎어야 하지만 교육제도가 너무 급하게 바뀌면 손해보는 이들이 많을 것이니 그러지 못하고 있는것뿐이지.......

글 잘읽었습니다. 좋은 오후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