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빅이슈 판매원과의 만남

in kr •  7 years ago 

페북 과거의 오늘을 보다 보니.... 2년 전의 일이 가슴 한 자리를 눅눅하게 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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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에 늦어 홍대입구 전철역까지 택시를 탔습니다. 딱 5천원이 나와서 만원을 내고 받은 거스름돈을 주머니에 구겨 넣고 역으로 들어가는데 역 입구에 빅이슈 판매하시는 분이 서 계시더군요. 주머니 속 5천원을 꺼내서 빅이슈 한 권을 받아들다가 언뜻 보니 포장 안에 뭔가 더 들어 있습니다. 그건 그 분이 육필로 쓴 ‘이야기’였습니다. 열 아홉 번째 이야기라고 돼 있는 걸로 봐서 이전에도 이렇게 써 오셨던 모양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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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훑어 읽으니 아저씨의 사연도 기구했습니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다가 다친 뒤 보상을 받았지만 이래 저래 쓰고 나니 남은 건 단돈 백만원. 병원비라도 아끼려고 퇴원을 했는데 오갈데 없어 여관방 하나를 얻고 어쩌고 하니 남은 건 20만원. 결국은 여관방도 나와 숙소가 제공되는 인력사무실을 구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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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사무실 소장은 이분의 다리를 보고 일할 수 있겠냐고 고개를 젓는데 이분은 필사적으로 매달렸다고 합니다. 절박한 심정이고.... 작업 현장 정리 정도는 할 수 있다고.... 그것도 안되면 떠나겠다고..... 그랬더니 소장은 곰곰 생각하다가 얘기했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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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곳 숙소에 계세요. 할 만한 일 나오면 보내 드릴 테니 있어 보세요. 대신 4~5일에 한 번 정도밖에 일 못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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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지내다가 사흘에 한 번 꼴로 실내 인테리어 공사 현장에 가서 일을 하게 됐는데 쓰레기 청소하며 정리하는 아주 쉬운 일이었다고 합니다. 다시 없는 행운이었다죠. 그런데 나중에 이분은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 실내 인테리어 사장과 인력 사무실 소장은 친구 사이였고 굳이 사람이 필요하지 않아도 와서 일하게끔 해 주었다는 거지요. 대충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까요 (이건 제 추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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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필요 없는데?”
“정리 좀 시키면 되잖아. 너무 사정이 딱해서 그래. 일당은 내가 챙겨 줄게. 일 없이 돈 주는 것도 웃기잖아.”
“아니 일은 내가 시키고 니가 왜 일당을 줘? 그럼 3일에 한 번씩이라도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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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목마르고 절박함이 목에 차올랐을 때 누군가의 선의로 숨을 돌렸던 아저씨는 이렇게 감사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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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을 절망적으로 만들지만 살리기도 하는구나.... 30대 주반 때 도움을 주신 인력사무실 소장님 인테리어 사장님. 숙소에 있던 동료분들과 잡지 구매하시는 독자분들게 큰 감사를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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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사람 때문에 세상이 싫어지기도 하지만 또 사람들이 없으면 세상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저 역시 1달에 한 번씩은 꼭 빅이슈를 사 보겠다는 약속을 스스로 하게 됩니다. 제가 내미는 5천원 지폐와 힘내세요 한 마디가 누구에겐가는 물살 센 삶의 개울을 건널 때 작은 징검돌 하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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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이슈.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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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산하님!!
저도 이분이 꼬박 꼬박 쓴 육필 편지에 감명 받아서
그분의 글을 소셜 미디어에 정기적으로 올려볼까 이야기도 했었더랍니다.
페이스북에 페이지라도 만들어서 그분의 글을 소셜미디어에 좀 올려도 되겠냐고, 허락도 받았었어요. (일 년 전쯤)
투박하지만 진솔하고, 사람의 마음을 끄는 그런 이야기들이 꽤 있었어요.
다만 저도 바쁜 생활을 보내다가 그걸 못 해드리고 잊고 있었어요.

최근에 스팀잇을 알게되고 홍대입구역에서 그분을 다시 찾아보았더랍니다.
너무 알려드리고 싶었었어요.
이분 같은 분이 글로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노숙인이시지만, 글에 재능이 있으신데 그걸 살려볼 수 있지 않을까?

혼자서 이분께 스팀잇을 알려드리고 싶다고...마구마구 머릿속으로 상상만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분이 일단 컴퓨터가 없으시고, 휴대폰만 있으시다고 알고 있었어요. (컴퓨터는 피씨방에서 쓰신다고)
복잡한 가상화폐 계좌 쓰는 법이라던지...
컴퓨터 없는 상태에서 비번관리는 어떻게? 막 이런 ㅜㅜ 걸 상상하다 결국 좌절.
컴퓨터 없는 사람이 대리인 없이 이런 걸 사용한다는 게 얼마나 장벽이 높은 지.

지난해 까지 그분이 있는 걸 보았는데, 최근에 나오시는 걸 못 보았어요.
혹시라도 이분 스팀잇 쓰는 걸 도와주실 생각이 있는 분들이 더 계신다면,
빅이슈에 연락해서라도 이분과 연락을 한번 시도해 보겠습니다! ㅜㅜ

저만 그런 경험한 게 아니군요 ㅠㅠ 부디 좋은 결과 있으시길 기원하겠습니다

글이 정말 따듯하네요.. 잘 읽고 갑니다. 느낌 잘 간직하겠습니다.

사람 때문에 세상이 싫어지기도 하지만 또 사람들이 없으면 세상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저 역시 1달에 한 번씩은 꼭 빅이슈를 사 보겠다는 약속을 스스로 하게 됩니다. 제가 내미는 5천원 지폐와 힘내세요 한 마디가 누구에겐가는 물살 센 삶의 개울을 건널 때 작은 징검돌 하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서입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오랜만에 포스팅 보면서 다시... 빅이슈 사기를 시작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같은 분께 빅이슈를 산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음에 그 분께 빅이슈를 산다면 스팀잇을 꼭 알려드리고 싶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분이면 충분히 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빅이슈안에 저런 사연들도 있었군요. 정말 사람의 일생은 예측할 수 없고 각자의 사연이 있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네 참 많은 사연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빅이슈 소리 높여 외치는 분들 한 분 한 분 마다요

도와주는 사람도 그 도움에 감사를 표하는 사람도 모두 아름답네요 ^^

네 그렇습니다....

따듯한 이야기네요^^
개인이 돕는것도 좋지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은 국가가 보장해주면 좋겠습니다
그분이 스팀잇을 해보시는 것도 좋을것 같은데
스마트폰으로도 올릴수 있긴하니 시도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따듯한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