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3월 28일 김옥균 암살과 홍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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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3월 28일 김옥균이 상하이에서 암살된다. 스물 두 살에 과거에 장원급제한 수재였을 뿐 아니라 주색잡기부터 바둑과 투전까지 두루 넘나드는 풍류를 즐겼던 풍운아였던 개화파의 거두 김옥균은 천만리 머나먼 이국 땅 상하이의 호텔 방에서 마흔 넷의 젊은 나이에 그 파란만장한 삶에 종지부를 찍히고 말았다.
왼쪽이 김옥균 오른쪽이 암살자 홍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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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과 민씨 일족의 증오는 끈질기고도 지독했다. 갑신정변의 주역들이었던 김옥균, 박영효,서재필,홍영식,서광범 등은 대역부도한 5적으로 지목되어 그 일가붙이들은 몰살당했고, 당사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홍영식은 국내에 남았다가 사형당했고, 서재필과 서광범은 미국으로 건너갔고, 박영효는 도미했다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친일파의 길을 걷게 된다. 그 가운데 조선 정부가 어떻게든 때려잡으려고 눈에 백열등을 켰던 인물은 바로 개화당의 수괴 김옥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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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조정은 집요하게 암살자를 파견하여 김옥균의 목숨을 노렸다. 후일 악질 친일파로 이름을 날린 송병준도 그 중의 하나였는데 이 암살자는 되레 김옥균의 풍모에 감화되어 그 동지가 됐다. 종두법을 들여온 것으로 유명한 지석영의 형 지운영도 암살자로서 일본에 파견됐지만 일본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실패의 연속, 그러나 고종과 민씨 일족은 김옥균의 목숨에 관한한 의지의 조선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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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자객으로 파견됐던 이일식은 프랑스 유학을 다녀왔다는 젊은 조선 청년 하나를 포섭한다. 그가 홍종우였다. 이일식은 중국의 실력자 이홍장과의 대화를 주선하겠다는 속임수를 써서 김옥균을 상해로 유인했고 홍종우는 권총 세 발로 김옥균의 목숨을 빼앗는다. 그런데 죽은 김옥균도 풍운아 중의 풍운아였지만 김옥균을 죽인 홍종우 역시 범상치 않은 이력의 소유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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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가 고향이지만 전라도의 외딴 섬에서 자라났던 그는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가 아사히 신문 식자공을 하는 등 갖은 노력 끝에 돈을 모아 법률 공부를 위해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국내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이었다. 그는 항상 한복을 입고 다녔고, 심지어 무도회에서 두루마기를 펄럭이며 왈츠를 추어 프랑스 사교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프랑스에 유학했으되 한복을 벗지 않았던 모습에서 보듯, 그는 개화의 필요성을 분명히 인식했지만, 외세 의존적인 개화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고종의 초상화를 품고 다닐 정도의 근왕파이기도 했던 그는 외국 종교의 제국주의적 면모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 그를 돕던 프랑스인들과 마찰을 빚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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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레가미는 홍종우를 두고 이런 말을 한다. "그를 보자 나는 신비로운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예전에 동양에서 봤던 큰 호랑이를 본 느낌이었다. 홍종우는 배우려는 욕구가 아주 강하다. 그는 자기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 유럽 문명 흡수를 열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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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사람이 기가 질릴 만큼 성실했던, 그러나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려고 발버둥쳤던 홍종우가 보기에, 일본 이름을 하고 돌아다니면서 곳곳의 여자들하고 정분이나 나고 (사후 김옥균의 위패를 모시겠다고 나선 여자가 7명) 혁명가랍시고 이곳저곳에서 돈이나 뜯고 다니는 김옥균은 한심하기 그지없는 외세의 앞잡이일 뿐이었을 것이다. 홍종우가 암살 성공 후 체포되었을 때 남긴 말은 그가 어떤 생각으로 김옥균을 죽였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나는 조선의 관원이다. 옥균은 나라의 역적이요 동양 3국의 평화를 깨뜨릴 우려가 있어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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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의 시신은 조선으로 돌아온 뒤 양화진에서 능지처참이 된다. 시신에 대한 형벌을 하지 말아 달라는 호소가 제기됐지만 조선 조정은 김옥균에 관한한 그렇게 결연할 수가 없었다. 썩어들어가던 시체에 칼탕이 퍼부어지고 당대의 재사 김옥균의 시신은 토막이 난다. 이 끔찍한 이벤트 후 수구파 대신들이 거사 성공의 주역 홍종우에게 환대를 베풀자 홍종우는 그를 물리치며 “자신은 국적을 죽인 것 뿐, 환대를 받으려 한 것은 아니다.”라고 의연한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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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황국협회를 이끌며 독립협회와 충돌하는 등 수구적인 면을 보여 주기도 하지만, 그는 외국군의 철수와 방곡령 등을 주장하는 상소를 계속 올리며 부패하고 구태의연했던 관료들과는 다른 모습을 지속적으로 드러냈다. 평리원 (요즘으로 하면 대법원) 재판장으로 재직할 무렵, 극렬 개화파의 일원으로서 자신과 대항해서 싸웠던 한 단체의 핵심 인물의 목숨을 살려 주게 된다. 사형이 확실시되었지만 무기징역에 태형 100대를 선고했고, 그나마도 ‘상처 하나 안 나도록’ 태형을 사실상 무마해 주었다. 그 개화파의 이름은 이승만이었다. 봉건 왕국의 개화파의 거두를 죽인 홍종우가 후일의 공화국 대통령을 살린 장본인이 된 것이다. 어쩌면 이리도 얄궂을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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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의 격변기 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포부와 열정을 가지고 기울어가는 나라를 구해 보겠다고 나섰고, 함께 싸우기도 했지만 정반대의 입장에 서서 서로를 죽이고 해치기도 했다. 김옥균과 홍종우는 개화가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공유했던 사람들이었고 어쩌면 쉽게 한 편에 설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딛은 첫발에 따라, 이어지는 보폭에 따라 그들의 길은 천양지차로 갈라졌고, 종국에는 죽이고 죽음을 당하는 자로 악연을 쌓고 말았다. 역사는, 특히 우리네 역사는 종종 이런 심술을 부린다.
역사를 제대로 아는 세대가 미래를 정직하게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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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합니다.... 제대로 안다는 게 참 힘들긴 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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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나마 역사를 깨우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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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많은 일들이 있어서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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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슬슬 내리다가
아... 탄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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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홍종우는.... 비참하게 살다가 굶어죽었다고 합니다..... 일본에 빌붙을 만큼 찌질한 이는 아니었던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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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승만에게 사형을 내렸으면 지금 같은 친일파 세상이 되지 않았을까요...
역사란 참 알면 알수록 오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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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역사는 참 오묘합니다......이승만을 죽였던들 또 다른 이승만이 나오긴 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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