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을의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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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긴급출동 SOS 24'라는 프로그램을 하던 시절 한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갓 개발되기 시작한, 그래서 외지인들이 사는 빌라들이 간간히 들어선 시골 마을의 익명의 시청자였습니다. 끝내 만나기를 거부하셔서 만나지는 못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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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인즉슨 어느 시골 유지 집에서 어느 할아버지가 머슴 같이 일하는데 그 생활환경이 짐승처럼 열악하고 간간이 폭행까지 당하는 걸 봤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만나 주시지를 않으니 제보의 신빙성도 의심됐고 더 깊은 정보도 구할 수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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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유용하게 써먹었던 포스트가 그 동네 교회입니다. 직접적으로 가 보지 않는 다음에는, 일단 기초적인 사실 확인은 그 동네 교회를 통하는 게 가장 빨랐습니다. 대한민국 어느 외딴 마을이라도 십자가 하나쯤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역시 저희는 그 동네 교회에 연락을 했고 작가는 이런 말을 해 왔습니다. “목사님이 처음 들어 보신다고 그러시더니 교인들은 누군지 짐작이 간대요. 와 보라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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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서글한 인상의 시골 개척교회 목사님이셨습니다. 교회 2층 목사님 방에서 얘기를 나누는데 창밖을 내다보던 목사님이 저를 부릅니다. “저 분인 것 같습니다.” 가물가물하게 먼 논에서 누군가 짐 가득 실은 리어카를 끌고 가는 게 보입니다. 허리 굽은 노인이었지요. 우리는 나는 듯이 달려 나가 대충의 상황을 파악했습니다. 그 주인(?)이라는 사람도 만났고 할아버지의 상태도 보았지요. 어떻게 되겠다.....는 감이 왔습니다. ‘노예 할아버지’라는 호칭이 그다지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불러도 무방한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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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수요일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수요 예배가 끝난 뒤 믿을만한 교우들을 모아 놓고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혈연과 혼맥이 이리저리 얽혀 있는 마을, 한 치 건너면 이웃이고 두 치 건너면 친척이 되는 곳인지라 사람들의 말길은 조심스러웠지만 할아버지의 상태가 지극히 불량하고 이른바 주인이라 불리는 사람에게 심한 학대를 받고 있다는 증언의 모서리들이 줄을 세우기 시작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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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목사님은 한동안 고민에 빠지신 듯 했습니다. 알음알음으로 죄다 연결된다는 마을 분위기를 들었을 때 저 자신 이 교회에 피해가 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으니 이 시골 마을에서 어렵사리 교회를 개척해 오신 목사님의 고민은 넉넉히 짐작할 수 있었지요. 제보자가 사라진 상황에서 교회가 제보자 아닌 제보자로 보여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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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여기에 미치다 보니 더럭 겁이 났습니다. 이 교회 분들이 노예 할아버지를 데리고 있다는 주인에게 가서 "어떻게 좀 하세요 방송국에서 나왔더라구요." 한 마디 걱정스레 하면 그대로 상황종료 사이렌이 울려 퍼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동네망신 아니냐’ 누가 한 마디만 던지면 두어 시간 내로 주인이 알게 될 판이었습니다. 다급해진 마음에 짐짓 정색을 하고 애꿎은 하나님을 끌어다 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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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조금 곤란해지더라도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 하나님 기뻐하실 일 아닐까요? 그게 교회가 할 일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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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목사님은 싱긋 웃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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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하나님 찾을 일이 아니구요. 이건 사람의 일입니다. 그런 분이 있다면 당연히 구해드려야죠. 굳이 방송하지 않고 어떻게 할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 본 겁니다. 교회에 피해가 갈까 봐요? 에이 그런 건 문제가 아니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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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찾을 일이 아니다...... 발바닥에 티눈이 나도 하나님 뜻으로 돌리는 것이 습관이자 미덕이라고 어릴 적 교회에서는 배웠었는데 이분은 좀 특이하다 싶었습니다. 어쨌건 취재는 시작되었고 점차 '현대판 노예'의 실체는 점점 가시권에 들어왔는데 그 과정에서 저희는 목사님에게서 엄청난 신세를 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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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상태에 가슴 아파하고 그분이 '편한 곳으로' 갈 수 있기를 바라며 보고 들었던 이야기를 토로해 주신 마을 주민들은 거의 전부 목사님의 소개로 만난 분들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관계 때문에 대답을 망설이는 분들은 목사님이 직접 설득까지 하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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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라도 그분을 도울 수 있으면 돕는 것이 우리 기독교인들의 의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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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일이 넘도록 취재를 하고 사람을 만나고 돌아다녔지만 그리 넓지 않은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취재 사실은 끝까지 비밀로 지켜졌습니다. 볼 일 다 보고 찍을 그림 다 찍은 뒤 공개 취재로 전환한 지 1시간도 안돼서 문제의 주인(?)이 득달같이 달려와 우리 앞에 나타난 것에 비하면 놀랍기까지 한 일이었습니다. 그 고마운 침묵의 중심에도 역시 목사님이 계셨고 취재 도중 가끔 만났을 때에는 PD의 섣부른 생각을 바로잡아 주시기도 했습니다.
“옛날에는 그랬다 치고 어떻게 요즘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모를 수가 있을까요. 이건 방조 같아요. 아우 열 받어.”
“요즘 시골이라는 게 PD님 생각대로 밥숟갈 숫자까지 알아맞히던 예전 같지 않습니다. 남의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사는 건 도시 아파트 주민들하고 다르지 않아요. 오지랍 넓다는 게 흉이 된 지 오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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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웠던 건 방송을 만들 때 교회와 목사님의 도움을 최소화해서 넣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목사님의 도움을 받아 만난 증언자들도 우리가 취재해서 만난 것으로 했고, 교회 집사님들의 인터뷰도 그냥 동네 주민으로 나갔습니다. 혹여 방송 뒤에 마을 사람들에게서 "동네 망신 시켰다"는 화살을 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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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방송의 파장이 상상 이상으로 커지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제 머리를 들쑤시는 가운데 매우 난처한 지점에 이르게 됐습니다. 시청자와 네티즌들의 비난의 쓰나미가 가해자 당사자를 넘어 마을 전체를 뒤덮는 가운데 제작진을 돕고 비밀을 지켜 주시고 요긴한 정보를 제공해 주셨던 교회와 목사님마저 휩쓸고 지나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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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 다 악마 새끼들이다." "그런 분을 옆에다 두고 아무 일도 안한 그 교회 놈들은 뭐냐?" "방송이 와서야 쫑알쫑알대면서 그 전엔 뭐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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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후속편을 만들라는 지시를 받고 그를 제작하면서 저는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교회 교우들이 어떤 도움을 주었고 목사님이 어떻게 나서 주셨는가를 상세히 밝히는 것이 정도이기는 하겠는데 만약 그리 된다면 마을에서 교회의 입지가 어찌 될지 불투명하고, 또 교우들과 목사님이 원하시는 바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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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목사님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이유는 마을 사람 전체가 도매급으로 넘어가고 있으니 그를 해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말씀이셨지요. 교회와 목사님이 한 일을 밝히시려나 보다 하고 카메라를 들고 인터뷰를 하러 갔는데 목사님은 그러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분의 관심은 별안간 악마 동네가 돼 버린 그 마을 사람들 전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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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할아버지를 긍휼히 여겨 옷도 갖다 주고, 따뜻한 밥이라도 주면서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어쩔 방법을 몰랐던 게 크고, 또 방송사가 취재한 정도까지인지는 몰랐던 게 가장 큽니다. 그러니 지나친 비난을 안해 주셨으면 합니다.....”
“어? 목사님. 목사님이 어떻게 해 주셨다고 말씀을 좀......”
“그건 왜요?”
끝끝내 목사님은 교회와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는 말씀을 아끼신 채, 아니 아예 입을 잠근 채 인터뷰를 끝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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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할 때 저는 꽤 오랜 시간을 고민했습니다. 이 인터뷰를 붙이면 또 정의로운 네티즌들이 “뻔뻔스러운 것들이 변명한다.”고 들고 일어날 게 눈에 선한데, 그 마을 내부 사람에게는 목사님의 말씀을 붙여 넣는 게 목사님의 입장을 한결 편하게 할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무지하게 고민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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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가 타 준 커피가 냉커피가 되도록 고민을 한 끝에 결국 목사님의 인터뷰를 붙였는데 아니나다를까 방송 후 인터넷에서는 또 난리가 났습니다. 담당 PD입니다~~ 하고 게시판상에서나마 그를 변호해 주고 싶었지만 그러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하는 게 당장 제 속은 편할지 모르나 교회와 목사님의 행보에 어떤 영향을 줄지 몰랐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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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프로그램 인터넷 게시판에 목사님이 쓰신 글이 올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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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에서 목사로 일을 하면서 할아버지의 상황을 진지하게 인지하지 못한 것을 목회자로서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두 번째 방송의 인터뷰는 면죄를 받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라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철없는 어린 학생들까지도 이 마을에 산다는 것 때문에 극단적인 이야기를 듣는 것이 마음 아팠기에 그 부분에 관한 저의 생각이었음을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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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어진 여러 상황에 대해 변명하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할아버지를 향한 저의 게으름과 무관심 때문에 돌을 맞아야 한다면 피하지 않겠습니다. 앞으로도 제 몸에 남아 있는 타성과 게으름을 이겨 내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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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글을 읽으면서 저는 실로 오랜만에 제가 기독교인으로 자처한다는 사실이 기쁘면서도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하나님 찾을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이라고 하셨을 때 목사님은 아마도 비슷한 사태를 예견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출석 교인 수십 명의 개척 교회와 그를 둘러싼 마을, 그리고 그 마을에서 발견된 '현대판 노예'의 날선 삼각형 안에서 방송의 파장이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심대하리라 짐작하셨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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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목사님은 한 사람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당신의 개척교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방송이라는 예측불명의 후폭풍이 함께 얹혀진 십자가를 져 주셨고 그 뒤 마을 전체에 내리쳐진 비난의 불벼락에 물 한 바가지라도 끼얹고자 또 한 번의 십자가를 자처하셨으며 그 못들이 손과 발에 내리꽂히는 끔찍한 과정에서도 그 무고함이나 억울함을 호소하지 않으시며 자신 역시 죄인임을 고백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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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광경을 지켜 본 로마 병정으로서 저는 내가 저 분과 같은 종교를 믿는다고 '자처하는' 것이 기뻤지만, 저것이 진짜 기독교인이라는 생각에 그만 범접할 수 없는 무거움에 사로잡히고 말았던 기억이 납니다. “나는 평생 이 경지에는 이를 수 없겠구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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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입니다. 요즘 광화문에 나가면 정말 기독교인이라고 말하고 다니기 창피하게 만드는 전빤스 목사 이하 개독교인들의 짐승 울음이 너무나 창대하고 참혹합니다. 저런 것들도 메리 크리스마스를 부르짖을 것을 알았다면 아기 예수는 마리아 배 속에서 스스로 탯줄을 끊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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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늘도 그 시골 마을의 교회에서는 탄일종이 울리고 예수를 닮은 목사님이 교우들과 넉넉한 성탄 인사를 나누는 것을 상상하면 광화문 개독교에 대한 분노의 창끝도 눅어지고 예수가 이 땅에 오셨음에 무한히 감사하게 됩니다. 당신을 닮은 자들이 끊어지지 않고, 그들을 알아보는 자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자들보다 더 많기에, 그래도 선으로 악을 이기려는 사람들이 많기에 오늘 우리가 이렇게나마 살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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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기쁘다 구주 오셨네
전빤스라 부르는군요. ㅎㅎ
그분이 기독교에 많은 먹칠을 하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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