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코리아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을 만든 적이 있습니다. 그 중 한 코너는 <그곳에 가면>이었는데 서울에서 '오래 되고, 크지 않고, 주인이 직접 요리하는' 음식점을 찾아서 거기에 담긴 사연을 소개하고 맛집 탐방도 겸하는, 그런 컨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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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리포터 데리고 가서 호들갑 떨다가 상다리 골절상 입을만큼 떡벌어진 음식으로 시청자들 기를 죽이는 게 음식 관련 프로그램의 정석이긴 합니다만 원래 '리얼코리아'는 음식보다는 사람이나 사연을 캐내는 것을 주종목으로 삼고 있으므로 참 무얼 찍어야 될지 무슨 인터뷰를 해야 될지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40년째 장사를 해 오고 있다는 모녀식당이란 곳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죽었고 그 딸이 대를 이어 하고 있는데 그 딸도 이젠 할머니가 다 되었죠. 그 집은 또 낮보다는 밤에 장사가 잘된다고 해서 꼴딱 밤을 지새워야 했던 이른바 재수없는 아이템이기도 했습니다. 가게래야 한 다섯평쯤되는 허름한 분위기, 또 40년의 역사를 가졌다고는 하지만 그게 그곳에서 파는 감자탕이 신통방통해서라기보다 시장 사람들이 그냥 단골로 와 먹다가 연륜만 쌓인 곳이었기에 정말 찍을 거 없는 집이었습니다. 거기다 동대문시장 최대의 불황기라는 한여름 저녁이어서 감자탕 먹으러 오는 사람도 귀하디 귀했으니.... 이 아이템을 펑크를 내고 들어갈까 어쩔까 고민 중에 문득 일과는 무관하게 어떤 생각이 스쳐서 심드렁하게 물었습니다.
"아주머니 여기서 40년 하셨다고요?"
"예"
"전태일도 아시겠네요?"
"태일이? 알죠. 진 단골 (단골 중의 단골)이었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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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랄라? 그때 제 눈은 동태눈에 갑자기 보석이 날아와 박힌 듯 했을 겁니다. 사실 전 전태일 열사를 아는 사람을 첨 만난 거였거든요. 물론 이소선 여사야 몇 번 뵙긴 했습니다만....그건 또 다른 이야기고... 전태일 열사가 단골로 다녔던 식당에서 내가 서 있다는 자체가 무슨 역사의 현장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지 뭡니까.
촬영을 제치고 자리에 앉은 나는 전태일 열사 얘기를 해 달라고 청했지요. 아주머니는 태일이는 지금도 얼굴이 생생해! 라는 말로 그때 그시절로 돌아갔습니다.
"조기 저 자리에.... 잘 앉았었어요. 일끝나고 와서 감자탕 한 그릇 먹고.... 참 맘이 좋았어요. 시다들 데리고 와서 자기는 안먹고 애들 사줄 때도 있었어. 그래서 내가 한 그릇 슬쩍 더 주니까 끝까지 배부르다고 안먹어. 그래 난 정말 밥 먹은 줄 알았어요. 근데 그 사람도 저녁 먹은게 아니었어요. 시다애들한테는 자기는 밥 먹었다고 그랬는데 (내가) 준다고 덥석 받아먹으면 애들 무안해할까봐 그랬다는 거야 나중에...... 그래서 내가 에이 바보야 그랬거든. "
전태일 열사가 조직했던 '바보회'가 설마 여기서 나왔을리야 없겠지요.. 하지만 문득 그 생각이 떠올라 새삼 바보..바보를 중얼거리고 있는데 아줌마가 얘기를 계속하시더군요...
"무슨 일을 계속 꾸미고 있다는 건 알았어요. 그래서 걱정도 되고 그래서 태일이가 왔길래 앉혀놓고 이야기를 했지요. 야 이 바보야. 네 일이나 걱정해라고 타일렀어요. 그러니까 밑도끝도없이 내일이면 결판이 난데요. 결판은 뭔 결판? 그러고 말았는데 다음날 점심 끝나고였나? 누가 와서 태일이가 죽었다고 불타 죽었다고 엉엉 울더라고요. 난 그때 불타 죽었다는게 무슨 말인지도 몰랐어요. 그냥 공장에 불이 나서 죽었나 했지요.“
1970년 11월 13일. 젊은날의 아주머니가 저녁나절의 감자탕을 위해 뼈다귀를 다듬고 있을 무렵에 한 청년은 그 죽음을 헛되지 말라며 몸을 불살랐고 그 날 저녁에도 피곤에 지친 노동자들은 감자탕 한 그릇으로 등에 달라붙은 뱃가죽에 윤기를 불어넣었겠죠. 그로부터 30년 뒤의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카메라 앞에서 어느 손님은 이런 이야기를 합디다.
“여기 맛이요? 뭐 맛보다도 우린 이 냄새 맡으면서 큰 사람들이에요.” 그 분 역시 청계천 재봉사 출신의 상인이었습니다.
촬영 끝나고 즉 밤을 새고 나서 괜히 청계천을 걸었습니다. 칠흑같은 밤 쓸쓸한 청계천 팔가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흥얼거리면서요. 어슴푸레 밝아오는 새벽빛 속에서 전 전태일 열사 분신한 장소를 표기한 동판이라는 걸 찾아 몇 번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 동판이 대체 어느 골목에 처박혀 있는지 끝내 발견하지 못했지만서도요. 지금도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전 지금 글자 그대로 소시민입니다. 보너스 많이 나오면 기쁘고 말도 안되는 상사의 명령도 말이 되게 받아들이는 조직원이며 파업 기사 나면 언제나 끝날까..우리집 전기엔 이상 없겠지 걱정하는 속물일 뿐이지요. 하지만 가끔씩.. 아주 가끔씩 그렇게 소시민이 되기 전의 추억을 맞닥뜨릴 때가 있습니다. 그때 기분 참 더럽습니다. 하지만 그 기분 더러움이 때론 그립다는 것이 불가사의할때가 있습니다.
전태일 열사의 희생에도 근로기준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현실이 통탄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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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길고도 지난한 과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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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내용 중에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이 자신의 차비로 소년소녀공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자신은 걸어서 집으로 갔다던 내용은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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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탕집에서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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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장소지만, 서로 보듬어주고, 기억해주고 산다는 거. 그게 그 장소의 소중함 같습니다. 저도 그런 단골집이 하나 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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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하나 만드시면 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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