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배의 명복을 빌며

in kr •  3 years ago 

최호준 학형의 명복을 빌며
586 물러나라는 소리가 높고 무슨 뜻인지 이해는 가지만 찬동하지는 않는다. 국민의 힘같은 정당이나 각종 기업체 안에도 이른바 ‘586’들이 즐비한데 그 또래들을 싸그리 몰아내자는 주장이 아닌 이상, 이 주장에는 80년대 전두환이라는 빌런의 폭압에 맞서서 젊음 걸고 싸웠던 사람들 전반에 대한 독화살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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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가운데 ‘꿀을 빤’ 사람도 많고 무능한 주제에 깝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똥팔육’으로 통째로 매도되기에는 ‘짧았던 젊음’들을 불쏘시개로 아낌없이 내던졌던, 그리고 그 이후로도 빛날 것도 없고 여봐란 듯 잘난체 하지도 않으면서 치열한 일상을 살아낸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욕도 하지 말라는 거냐?”라고 입술 말아 올리지는 말아 주기 바란다. 들어 마땅한 욕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송두리째 통틀어 모욕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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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의 끄트머리, 나와 같은 공간에서 치열하게 살았던 한 사람의 부고를 듣는다. 고려대학교 농경제학과 87학번 최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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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독철’ 활동을 했다. 이 으스스한 느낌의 이름 ‘독철’은 ‘독일철학강좌회’의 준말이다. 함께 뭘 해 본 적은 없었지만 워낙 학생회관 죽돌이였기에 그와 조우할 기회는 엄청나게 많았다. 특히 시위 현장에서는 그 큰 키에 덥수룩하게 난 수염난 마스크를 안보고 지나치는 날은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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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른바 ‘노학(勞學연대’의 선봉이었고 이런 저런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나섰던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워낙 튀는 사람이라 공연한 쑥덕거림도 있었던 것 같으나 별로 개의치 않던 대범한 사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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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후 나는 그를 방송 업계에서 만났다. 한국 방송가에서 6mm 카메라 혁명(?)을 불러온 <VJ 특공대>를 만든 이가 그였다. 술자리에서 만나면 PD 특유의 무용담으로 이야기 꽃밭을 만들었던 그는 툭하면 부상을 입을 만큼 몸을 험하게 썼다. 다리가 부러져서 목발을 짚고 다니거나 그 다음 만날 때에는 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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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형은 보기엔 소도 때려잡을 거 같으면서 왜 맨날 어디가 부러지고 다니쇼.” 타박을 하면 “아 그거 하나 찍겠다고 좀 오버를 하다가..... 아오 근데 그 커트가 꼭 필요했단 말이야.” 하며 능글능글 웃었고 참인지 뻥인지 (구라는 좀 있었다) 어디 가서 불량한 친구들과 몇 대 1의 격투를 벌이다가 입은 부상이라고 눙을 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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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04년 크리스마스 어간에 들이닥쳤던 남아시아 대지진을 취재했었다. 그는 사건이 나자마자 바로 푸켓으로 날아갔고 (현장에 있었다는 것도 같은데 잘 기억이......) 쓰나미가 쓸고 지나간 직후의 모습을 낱낱이 영상으로 담았다. 술을 연거푸 들이키다가 그가 한 얘기는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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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내가 그렇게 많은 시신을 보게 될 줄 알았겠냐. 보트를 타고 촬영하는데 그냥 노에 걸리는 게 흑백황인종 시신이야. 노를 젓기가 무섭다고 할 정도였어. 바로 며칠 전까지 얼마나 즐거워하면서 여기 온 사람들이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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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쓰나미 한 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우주가 사라져 버린 거 아니냐. 찍다가 이유없이 눈물이 나더라. 산다는 게 이렇게 바늘 끝에 서 있는 건가. 나도 그런 건가. 그래도 찍었지 뭐. 방송엔 못 쓸 그림이라도 엄청나게 찍었어. 남겨는 놔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늘 끝에서 떨어지더라도 떨어지기 전까지는 열심히 살아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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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받아서 내가 했던 말이 지금도 후회스럽다. 괜히 말이 씨가 된 것 같아서. “열심히 사는 건 좋은데 어디 좀 부러지지 말고 응? 형 얼굴 지금 시커매. 열심히 살다가 빨리 가면 안되잖아요. 몸 좀 아끼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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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는 턱수염 덥수룩한 얼굴에 파안대소를 지으며 “내가 임마 너보다는 오래 살 거야.”하고 자신했었는데 그건 오늘 빈말로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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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머리 속이 80년대의 끄트머리로 돌아간다. 어느 날인가의 전교조 집회. 전교조 집회라면 학교 침탈이 어김없던 때라 전경들이 정문과 후문 모두를 치고 들어왔다. 지랄탄 연기가 민주광장을 뒤덮은 가운데 정통으로 지랄탄 가스를 들이마신 나는 그날 먹은 점심을 게워내며 엎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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왝왝거리는 중 흰 연기 사이로 최호준이 보였다. 붉은 스카프 입 가에 두르고 쇠파이프를 손에 들고 전경들에게 돌을 던져 대고 있었다. 그러면서 가끔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선생님들은 학생회관으로! 선생님들은 학생회관으로!” 그 목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맥락없고 새삼 되새길 이유도 없는 단말마의 외침이지만 그 쨍쨍거림의 여운까지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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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시오 최호준 학형 . 좀 이따 영정에서 마지막으로 그 얼굴 봅시다. 함께 불렀던 노래 가사 혀 끝에 대롱거리면서 열심히 살았던 한 586을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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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날리던 그 깃발은 가슴 동여맨 영혼이었소.
치던 바람 그 함성은 검푸른 칼날이었소
우리 지금 여기에 발걸음 새로운데
머물 수 없는 그리움으로 살아오는 동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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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요....공감합니다.
얕은 생각으로 그렇게 도매금으로 넘기기엔
던져버린 청춘의 시간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