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락치의 추억 , 그리고 친구 소개

in kr •  6 years ago  (edited)

프락치의 추억 과 친구 소개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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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등장하는 '프락치'는 이 포스팅을 보신 후 제기된 여러 사람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공안당국에 의해 고용돼 학원을 사찰하던 프락치는 아닌, 당시 꽤 많던 '가짜 대학생'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잘한 일은 아니었겠으나 프락치로서 못할 짓을 했던 건 아니었고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도 있다 하니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옳을 듯 합니다. 하지만 28년 전에는 그렇게 의심될 수 밖에 없었고, 그런 분위기에서 벌어진 일임을 감안하고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프락치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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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인의 추억"의 한 장면. 쏟아붓는 빗 속에서 눈이 뒤집힌 서울 형사 김상경은 유력한 용의자 박해일을 무자비하게 구타합니다. 나쁜 새끼... 왜 그랬어... 이때 박해일은 눈을 똑바로 뜨고 김상경을 쳐다봅니다. 그 얼굴엔 분노같기도 하고 후회같기도 하고 실망같기도 하고 겁에 질린 것 같기도 한 감정들이 비벼지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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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화를 본 뒤 그 얼굴이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을 한동안 지울 수가 없었는데 한참을 머리를 쥐어짜다보니 어느 날 밤이 떠올라 왔습니다. 경기도 화성의 연쇄살인마가 마지막 살인을 저지르기 1년쯤 전의 역시 비오는 날 밤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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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의 주인공은 "조석"이라는 인물이었습니다. 조씨 성 가진 외자 이름 석인지, 아니면 성을 내가 몰라서 조석으로만 기억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이름 자체가 그의 본명이 아닌지도 모르지요. 조석은 90년도였던가 우리학교 모 단대 간부였습니다. 그 직책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사회부장 아니면 부짱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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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단과대학은 학생 수는 많지만 학생회를 꾸려갈 인자는 심히 부족한 곳이었는데다 한 학년만 다섯개 정도의 반으로 나뉘어 있었기에 동급생끼리도 채 이름과 얼굴을 조합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습니다. 조석은 자칭 2학년 때 홀연 뜻한 바 있어 학생회 활동을 시작했고 학생회 일꾼 기근에 시달리던 그 단대에서 꽤 열심히 하는 일꾼으로 부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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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간다고 거한 환송회까지 치러 줬는데 갑자기 "징집부적격자"로 판정났다며 학교에 다시 나타나는 등 '까놓고 보니 석연치 않은' 구석도 있었다고는 합니다만. 물론 학적부에 비슷한 이름도 없는 유령 학생이었구요. 프락치였다는 소문이 교내를 싸고돌았고 실제 그로 인한 피해 사실이 열거되기도 했습니다. 맙소사. 단과대학 간부가 프락치였다니.

그가 사라진 뒤도 몇 주일이 지났습니다. 비 오는 주말 밤이었습니다. 공연 연습 때문에 자정을 넘기고서야 학교를 나온 저는 여자 동기 하나와 후배 하나와 더불어 제기시장으로 향했습니다. 비오는 날 술은 땡기고, 어차피 차는 끊겼고 택시비로 술이나 먹자는 계산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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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어진 형제집이라는 단골 곱창집에서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소주 병 까는 제 손을 여동기가 덥석 움켜 잡습니다. 난데없이 여자한테 손목잡힌 기분 묘합디다. 왜? 하고 고개를 드는데 그녀의 얼굴에서 이상한 빛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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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냐?"
"저 안에 조석이 있어. ,,,,,돌아보지 마!"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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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지 마라는 당부도 헛되이 저는 냉큼 고개를 돌렸습니다. 처음 보는 얼굴, 하지만 결코 그 이름만큼은 낯설지 않으며, 요즘들어선 그 누구보다 한 번 보고 싶었던 사람이 역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약간 당황한 얼굴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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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여자 동기가 말을 걸었습니다.
"안..녕... 하세요?" 하고 고개를 까닥해 보이자 조석 또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목례를 해 보입니다. 저 때려죽일 놈이 인사를 받네. 이쪽은 여자 빼고 둘, 저쪽은 하나. 후배놈은 덩치가 산만한데다 쌈박질이라면 90학번 중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친구..... 제압하는 건 어렵지 않아 보였습니다. 저 새끼를 끌고 가자. 가서 아작을 내 주자. 그의 프락치 행각(?)에 희생된 (또는 그랬다고 소문났던) 몇 몇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까지 떠오르자 내 얼굴도 시퍼래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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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술잔 채우는 용도가 아닌 용도로 소줏병을 거꾸로 잡으면서 남자 후배에게 나직하게 이야기했지요. 저 새끼 덮치자. 남자 후배도 주먹을 불끈 쥐면서 일어나는데 여자 동기가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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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 뭐하게?"
"학교로 끌고 가게....."
"끌고 가서 뭐하게?"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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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 죽여야지 라는 말이 입밖으로 나오질 못했습니다. 우린 그를 처벌할 수 있는 권리도, 고발할 수 있는 권리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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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동기 옥자가 한 마디를 보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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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새끼 두들겨 팬다고 해결될 거 아무것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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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에서 그토록 보고 싶던 범인의 얼굴을 독기품은 눈으로 지켜보는 것 밖에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옆에 있던 후배는 딱 한대만 때리게 해 달라고 졸랐지만 그때는 내가 말렸습니다. 조석도 저희를 계속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코 피하진 않더군요. 눈 똑바로 뜨고, 우리의 눈길을 받아내고 있었습니다. "분노같기도 하고 후회같기도 하고 실망같기도 하고 겁에 질린 것 같기도 한" 박해일의 표정..... 바로 그 표정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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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조석과 동석한 이가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 사람이 먼저 셈을 치르고 나가자 조석이 느릿느릿 우리 앞을 지나칩니다. 그때 씩씩거리고 있던 후배와 제 앞에서 술만 연거푸 마시던 여자 동기 옥자가 그의 목덜미를 잡듯 말을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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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이 형 왜 그랬어요?"
"........"
"왜 그랬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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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조석의 표정이 약간 일그러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곤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옆의 후배는 영화 속의 김상경이 총을 겨누던 것처럼 그 뒷덜미를 잡아채서 한 방 날리고 싶어 주먹을 부르쥐고 저는 송강호처럼 그의 어깨를 잡아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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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랬냐니까......" 여자 동기가 지극히 심드렁해진 말투로 다시 물었을 때, 그는 어깨를 움찔하더니 다시 걷기 시작했죠. 아무 말 없이요. 대신 고개를 숙이고요. 그가 문턱을 넘을 때쯤 대답을 듣지 못한 여자 동기 옥자가 넋두리하듯 한 마디를 보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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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보지 맙시다. 근데 안주는 다 먹고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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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듣고 그는 또 한 번 멈췄습니다. 흘낏 우리를 뒤돌아보더군요. 그때 그의 표정을 저는 기억합니다. 아까와 같은 '무표정의 비빔밥'은 아닌, 확실하게 축축해진 눈빛을 말입니다. 그 눈빛을 끝으로 그는 형제집 여닫이문을 열고 비오는 심야 골목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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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조석이 지금 어디가서 뭐하고 사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조석과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했던 여자 동기 옥자가 오늘 뭐하는지를 소개해고자 이 포스팅을 올립니다. 어떤 일을 해 왔는지는 링크를 참조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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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얘기에서 보듯 상당히 강단 넘치고 촉 좋고 사리 판단 뛰어난 녀석인지라 어떤 일을 하든 능력 발휘를 잘하리라 생각합니다. 많이 찾아 주시기 바랍니다. 단 단순 일상적인 지식은 좀 부족합니다. 대학 시절 베트남 혁명 공부하는데 “베트남은 남미에 있잖아.”라고 확언하여 좌중을 경악시킨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법률적인 질문 외의 다른 건 묻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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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새출발을 축하합니다. 공유도 해 주시면 감사하죠 격려 댓글도 아울러 ㅋ

http://news.hankyung.com/article/201810248413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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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knowledgement - God B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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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웹툰 작가 조석씨가 떠오르다가, 갑자기 "베트남은 남미에 있잖아"가 명 대사로 등극합니다. 사람에게 못할 짓 시키던 그 사람들은 지금 뭐하나 궁금합니다.

ㅎㅎㅎㅎ 그러게 말입니다.... 그때 그 인간들 지금 뭐할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