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와 서부의 화합을 기원하며

in kr •  4 years ago  (edited)

오늘은 재판이 있어 서부지방법원에 다녀왔다. 남부나 북부와 달리, 서부는 갈 때마다 긴장된다. 나는 동부에서 왔기 때문이다. 동부와 서부가 처음부터 이렇게 반목하지는 않았다. 투팍과 비기는 남부럽지 않은 사이였다. 그러다 사소한 오해가 끝내 그 둘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각각 동부와 서부를 대표하던 천재들이 사라지고 남은 자리를 채운 것은 상대 진영을 향한 원망과 분노의 목소리였다. 그뒤로 수십 년이 흘렀다. 갈등의 골은 여전하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유도 모른 채 그저 학습된 분노를 표출한다. 너는 서부를 왜 미워하는가. 미워하도록 배웠기 때문입니다. 너는 동부를 왜 비하하는가. 비하하도록 배웠기 때문입니다. 의미없는 질문과 공허한 대답만이 쓸쓸히 마주보았다. 잿빛 자화상이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는 법. 누군가 나서야했다. 물론 나였다. 나는 주소지를 서부로 옮겼다. 사무실은 동부에 둔 채로! 매일 동서를 오가며 나 스스로 걸어다니는 비둘기가 되고자 했다. 누군가는 나를 무모하다고 비난했고, 누군가는 나를 법조계의 화개장터라며 칭송하였다. 나는 그 어떤 비난과 칭송도 초탈하려 애썼다. 그럼에도 내가 몸을 실은 지하철이 동서의 경계선이라 할 동작(현충원)을 넘어 노량진에 진입할 때면 일종의 보호막이 옅어지며 위험에 노출되었다는 불안감에 어쩌면 현충원에 묻힐 수도 있겠다는 공포마저 느껴야했다. 그렇게 매일 동서를 오가길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조금씩 해빙의 기운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동부의 구내식당 식권으로 서부에서도 식사가 가능하게 엠오유를 체결한다는 소식마저 들려온다. 서부의 복사기 카드로 동부에서도 복사가 가능하게 한다는 꿈같은 계획도 불어오는 서풍이 전해주었다. 밥에 독을 탈 지언정, 토너는 셀프일지언정, 당장은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다. 겸손한 척 하지 않으련다. 나의 업적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내 하루하루의 발걸음이 그 자체로 우아한 운율로 뒤덮힌 노트였으며, 나스가 말했듯, i made you look, you are slave to the page of my rhyme book이기 때문이다. 무심코 언급한 후배 법조인이 동부인걸 보니, 동서 화합 운운하지만 나 역시 어쩔 수 없이 뼛속 깊이 동부의 일원인가 보다. 한편, 요즘 재건축 완화라는 호재를 기화로 목동을 중심으로 남부가 세력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개의치 않는다. 남부는 티아이라는 구심점을 잃은 지 오래기 때문이다. 티아이가 선보였던 그루브 넘쳤던 변론을 지켜보며, 저 호랑이 새끼가 성장하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싹을 잘라내야한다며, 암암리에 조세법을 강화하여 티아이의 아킬레스 건이었던 탈세 의혹을 만천하에 공표하게한 건 누구의 탁견이었을까. 나는 그저 침묵할 뿐이다. 남몰래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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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의 전경이다. 벽에는 아직도 투팍의 늑골을 스친 흉탄이 박혀있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그날의 총성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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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서야했다. 물론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