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아닌 척]한 번 써 보는 군대이야기-(5)애증의 사수

in kr •  7 years ago  (edited)

군생활을 같이 했던 사람들에게 내 최고의 악연을 꼽아보라면 백이면 백 사수였던 C씨를 꼽는다. 소대 전입 당시 그는 상병 말호봉인 부분대장이었고 참 오랜 기간 부사수 없이 군생활을 해오고 있었다. 그는 병장이 다 돼서 자기 일을 이어 할 부사수를 받은 거고, 나는 그가 제대하고 나면 일병 나부랭이가 분대를 이끌 판이었다. 빡세게 가르쳐야 다른 분대에 무시 안 당하고 본부분대를 이끌 수 있으니 "너는 죽었다고 생각하고 배우라"고는 했지만...

그는 참 지독하게 괴롭혔다. 너무 완벽한 그의 눈 높이에 맞춰 일을 해 내기가 버거웠다. 주된 업무가 서무이니, 그래봐야 종이쪼가리 만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천성이 덜렁이였다. 그의 눈은 내가 틀린 자간 1%도 놓치지 않았다. 나는 입대 전까지 '독수리 타법'의 사실상 컴맹이었는데, 그는 띄어쓰기 하나에도 눈이 뒤집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워드프로세서에 선 굵기 조절이 있는줄도 몰랐는데, 그는 선굵기가 0.01포인트만 틀려도 일일보고서를 하늘로 집어던졌다.

C씨는 무려 S대를 다니다, 자원입대했다고 한다. 자원입대라고 표현한 것은 그가 군대를 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 그는 미국 시민권자였지만 굳이 군대에 와서 나를 괴롭혔다.

그는 피지컬을 제외하고는 나무랄 데가 없는 인재였다. 부대의 모든 업무를 꿰고 있었다. 영어도 탁월했다. 미군과 같이 생활하는 부대라, 동시통역이 필요할 때가 많았는데 미군 부대대장의 말을 자연스럽게 동시통역했다. 제대할 때가 다가오자 한 3일 영어 책을 들여다보더니 토플을 거의 만점을 받아 왔다. 알고 보니 아버지는 1등대학 교수, 어머니는 2등대학 교수란다. 누나는 사시를 패스한 법조인이었다.

C는 완벽주의자로서 업무적으로도 나를 자주 나무랐지만 인격적으로도 힘들게 했다. 일전에 적은 '계급장 사건' 당시 이마에 왕병장 계급장을 붙이고 생활하게 했고 매일 아침 30분 이상씩 갈궜다. 그럼에도 그를 미워할 수만은 없게 만든 일이 있었다.

언제였던가 부대에 가족초청행사가 있었다. 장병들의 가족이나 애인, 친구 등이 부대를 방문해 판문점 투어 등을 한 뒤, 장병들은 초대한 친지들과 함께 외박을 나가는 행사였다. 당시 나는 무슨 다른 이유가 있어서 가족초청행사만 참석한 뒤 부대에 남게 됐고, C는 초청한 사람이 없어서 부대에 남았다.

당시 미군식이었던 부대 막사는 2인 1실이었다. 2층 침대에서 C는 1층, 나는 2층을 썼다. 오랜만에 얼굴을 본 가족들을 보내고 서운한 마음으로 자리에 누웠는데 밑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참 뒤 C가 불렀다. "자냐." 안 잔다고 했더니 넋두리를 시작했다. 그의 말은 대강 이랬다.

오늘 너의 가족을 보면서 너무나 부러웠다. 넌 가족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것 같다.
나는 그렇지 못했다. 부모님은 항상 바빴다. 어릴 적부터 항상 집 열쇠를 갖고 학교에 다녔다. 너는 항상 집에 엄마가 있었지? 나에게 집은 항상 아무도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늘 집에 가기 싫었다. 그래서 많이 비뚤어졌고 노는 애들과 어울렸다.
어릴적부터 내가 하는 어떤 일에 부모님이 참여한 적이 없었다. 오늘 가족초청행사도 마찬가지다. 내가 입대하고 행사를 몇 번 했는데 부모님은 한 번도 온 적이 없었다.
내가 평소에 괴롭혀서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냥 내가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라는 것만 알아줬으면 좋겠다.
날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난 니가 너무 부럽다.

중간에 목소리가 떨리기도 하고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던 걸로 기억한다. 어느 순간엔가 그는 말을 멈췄고 둘 다 잠이 들었다.

나는 항상 집에 엄마가 있어서 좋았다. 학교 끝나고 딴 데로 샐 일도 없었다. 조금만 늦으면 엄마가 걱정을 했다.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C에겐 그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는 밖에 나가면 요즘말로 '금수저'였다. 하지만 그는 집안에서는 열등한 아들, 문제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름대로 엇나가고 어디서 좀 놀았나보다. 그래서 S대 1등학과에 들어가지 못했나보다.

그날 이후에도 많이 혼나고 갈굼을 당했다. 하지만 나도 이를 악물고 배웠고 타자도 검나 연습했다. 그러다 한 사이클 동안 업무적으로 한 번도 안 까이고, 그의 입에서 "완벽하다, 완벽해"라는 소리까지 나오게 될 즈음 그의 전역이 눈앞에 왔다.

그가 전역하면 일병임에도 소대본부 업무의 절반을 책임지는 부분대장, 그리고 2주 뒤 분대장이 되는 수순이었는데 그 사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우리 부대를 한국군 소속으로 다시 창설하는 바람에 다른 부대에 있던 인원들이 편입하면서 '다행히' 그런 영광은 누리지 못하게 됐다. 자신이 전역한 뒤 낮은 계급으로 중한 일을 맡게 될 테니 일을 철처하게 배워야 한다며 그 동안 나를 검나 굴렸던 C는, 타 부대에서 편입 온 인원이 내 위로 2~3명이나 들어오자 머쓱해졌다.

그는 제대하면서 미안하다는 얘기를 계속 했다. 나는 계속 괜찮다고 했다. 사실 그리 밉지 않았다.

그는 제대한 뒤 바로 하와이로 유학을 갔다. 다녀와서는 무슨 경영을 컨설팅하는 글로벌 회사에 들어갔다. 잘 나가는 것 같았다. 어리고 똑똑한 여성을 만나 결혼도 했다.

나중에 회사에 들어와서 보니 그의 아버지는 그냥 교수도 아니고 엄청 유명한 교수였다. 오피니언 필진으로 섭외하기 위해 전화를 건 적이 있다. 승낙은 안 해줬지만, 아드님과 군대에 같이 있었다는 얘길 했더니 반가워 했다. 노교수는 아들 얘기를 한참 하셨다. 말에서 사랑과 인정이 느껴졌다.

당시 본인이 아무리 열등감을 갖고 살았어도, C 역시 아버지에겐 자랑하고 싶은 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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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소설 같은 느낌이네요 ㅎ
역시 세상 사는 인생은 좁고 그리고 사람의 속은 깊네요^^

그렇게 읽어주셨다니 고맙습니다. 맞습니다. 사람 속, 알 수 없지요.

우오아ㅏ...단편소설을 읽은듯한 흡입력이예요! 완벽해 보이는 C에게 있던 상처를 아는 사람이 평생 몇이나 있을까요....?

ㅋㅋ 고맙습니다. 어쩌면 저 뿐일 수도 있어요. 그런 얘기 입 밖에 잘 내는 사람이 아니었으니..

  ·  7 years ago (edited)

C 씨를 생각하면 엄마인 입장에선 많이 안타까운 맘이 듭니다.
저도 분명 자식을 외롭게 하지 않기 위해 포기한 것들도 많지만
자식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훨씬 가치 있었단 생각을 해요.
그 시간들은 다시 돌아 올 수 없기에...
잘 읽었어요~^^

저희 부부도 아직 자식은 없지만 그 점이 마음에 걸려요. 부모가 둘다 기자라서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많이 부족할 것 같아서요.

좋아하는 한 선배가 옛날에 임신 중에 이런 말을 했어요. "나는 엄마가 항상 집에 있어서 너무 좋았고 행복했어. 그건 내 복이었던 것 같아. 근데 아이는 부모가 다 직장을 다녀서 학교 끝나고 집에 와도 엄마가 없을 때가 많을 거야. 이건 아이 복이겠지."

근데 그 아이가 내년에 초등학교 들어가는데, 그 동안 보면 선배 부부는 없는 시간 최대한 내서 아이랑 보내려고 애 써 왔고 아이도 두 분 사랑 듬뿍 받으며 밝게 자라고 있어요. 이 아이 입장에서는 부모가 늘 집에 있지 못하는 게 아직까지는 그렇게 결핍으로 와닿지 않는 거죠.

그러고 보면 스타주노님 말처럼, 자식 성장 과정을 한 치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싶은데 직업이 있어 더 그러지 못하는 것도 부모 복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요즘은 맞벌이가 많고 또 여자들도 사회에서 얼마든지 커리어를 쌓을 수 있어서 시대가 다르긴 해요.
저도 제 자식보고 직장을 관두고 아이만 키우랄까?... 고민은 되지만
요즘 부모들은 현명하게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번갈아 아이 일에 참여할 수 있다고 봐요.
부모가 최대한 아이에게 관심을 주고 있단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면
그 군대의 C 씨 같은 아픔을 갖진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 하시면 아이도 행복하지 않을까요?
대댓글에 미리 걱정하시는 걸 보니 잘 하실 분인 것 같아요^^

와..마지막 문단에서 소름돋았어요... 아버지는 무뚝뚝한 분이셔서 아들이 느끼기엔 사랑을 못받은 것 같았지만, 사실은 엄청 사랑하고 계셨네요... 너무 좋은 글입니다.. 기자님의 글은 확실히 다르네요 ..

칭찬 고맙습니다^^ 저도 그 통화 뒤에 가슴이 따뜻해져서, 그만 10여년 만에 C에게 연락을 할 뻔했지 뭡니까.

애증의사수라는 말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글이었습니다.
현재 군생활을 하고 있으며, 병장계급을 단 지금까지 저를 막 대한 선임이 없었는데, 제가 혹시 후임한테 필요이상의 업무적 능력을 요구하고 있는건 아닌지 되돌아 보게 되네요.

그들도 누군가의 자랑하고 싶은 아들이라는 걸 다시한번 깨닫게 됩니다.

이런 말을 들었어요. "너의 군생활은 선임이 평가하는 게 아니라 후임이 평가하는 것"이라고. 예비군도 끝나고 민방위 5년차에 접어들었지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선임으로 남으실 것 같아요.

으 읽으면서 닭살이...
정말 애증이네요ㅎㅎ
보이는게 다가 아니라는 말이
생각나며 그래도 훈훈한 결말이라
다행이에요ㅋ.ㅋ
잘보고 갑니다~!!^^

옛날에 갈굴 때 그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납니다. "야 나 치고 싶지? 쳐봐. 쳐봐. 사회에서 만나면 한주먹 감도 안 될 것 같잖아. 쳐봐"

최고의 악연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글을 읽다보니 오히려 뭔가 애증 비슷한 정이 느껴지는 듯 한데요? 그 당시에는 굉장히 미웠을 것 같기도 하지만요.ㅎㅎ
밖에서 보기에 아무리 대단한 사람도 다들 자신만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듯 합니다.

그쵸. 애증이죠. 군대에서 자살 or 살인 둘 중 하나를 고민하게 한 장본인이었어요. ㅋㅋㅋ 덕분에 담배도 배웠구요.

확 흡입되네요 ㅎㅎㅎ

최고의 아들이 되고 싶은 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네요.

노교수는 아들 얘기를 한참 하셨다. 말에서 사랑과 인정이 느껴졌다.
이부분을 보고 느낀건

아버지 어머니에겐 자신의 아들, 딸이 당연 최고이고
어떤 잘못에도 저를 보듬어 주시고 지지해주시는
저희 부모님 생각이 났어요~

잘읽고가용

고맙습니다. 팔로우 했어요!

글을 읽을수록 여러가지 감정이 요동치네요 (ㅠㅠ) 마지막 문단을 읽고 나니 그래도 아버지의 사랑이 부재했던 것은 아니어 안심이 됩니다. 그 사수분도 지금은 아시겠지요?

모른다면 알려주고 싶기도 하더라구요. 근데 몇 년만에 연락하기 편한 사이도 아니고 ㅋㅋ 잘 살고 있으니 머.

와 멋진글 너무너무 재밌게 잘 보았습니다.
저는 군대있을당시의 사수가 철학을 공부하는 분이여서 그때 그분이 해주신 말씀이 지금의 저를
이끌고 있는것 같습니다.
“1등은 남들보다 50m, 100m 더 나아가야 1등이 아니야.... 1등은 남들보다 딱 한발짝만 더 나아가면 되는거야.....”
아마 평생을 이 말을 되새기며 살 듯 하네요^^

1등을 하고 싶진 않고, 1등이라고 나보다 크게 뛰어날 것도 없다는 생각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역시 시호님은 기자여서 그러신지 한편의 짧은 소설을 보는 기분이네요~
아버지에겐 역시 자랑하고싶은 아들... 훈훈한 결말이네요.^^

한 편의 기사를 보는 것 같으셔야 하는데 ㅋㅋㅋ 역시 저는 기사를 잘 못쓰는 기자인가봐요.

앜ㅋㅋ저는 기사라기보다는 글솜씨가 뛰어나셔서... 소설같은 느낌이ㅋㅋ

군대는 그런관계가 한명씩은 있는것 같아요.
많이 공감되는 이야기였네요!

고맙습니다!

저희 집도 부모님께서 맞벌이를 하고 계셔서 학교에 갔다오면
집에 누가 있던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친구들 집에 가면 친구 어머니께서 해주는 간식이 너무 부럽고 따뜻했지요.
한번은 (어릴때) 어머니 전자제품 영업을 하는 곳에 따라 갔다가 그집 아들과 싸워서 쫓겨나다 시피 한적이 있었는데 . 지금 생각 하면 그때 어머니께서 마음이 많이 아프셨을것 같네요.
글 잘 봤습니다.

아이고 그런 기억이 있으시군요. 기왕 싸울 거 뚜디 패야 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아주 가능성 있는 좋은 인연이었군요. 나름대로는 배울 점이 참 많으셨겠어요.

맞습니다. 덕분에 지금 워딩 받아칠 때 자판 안 보고 칠 수 있으니까요. ㅋㅋㅋ 부대에서 한창 일할 때는 한국군 전환 뒤 미군이 DMZ패스카드 용지를 돈을 받고 판매한다고 해서 워드프로세서와 프린터, 색도화지만으로 용지를 똑같이 만들어버렸던 기억이. ㅋㅋㅋ

이번엔 어떤 악마(?)가 나오려나, 같이 욕해줘야지 하고 읽다가 한방 먹었네요. 역시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가 없군요. C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좀 더 사랑응 표현해주었더라면 좋었을 텐데. 부모님 세대는 자식들에게 직접 표현하는데 서투르시죠.

그래도 저에겐 악...ㅁ

글을 읽는 동안.. 머릿속으로 저도 제 군생활을 시간여행하고 왔습니다.
누군가에겐 좋은 선임이었고, 누군가에겐 불편하고 힘든 선임이었겠지요.
아버지가 사랑하는 자식...
자식의 시각에서는 다르게보일 수 있지만, 부모님의 마음은 다 같은 것 같습니다.
1995년에 개봉했던 쥬만지에서의 아버지가 생각나네요.

시간여행 하고 온 기분입니다.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