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한 언론노동자의 노동절 단상

in kr •  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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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부장 : "1일은 노동절이니 쉬고 싶은 분은 눈치보지 말고 연월차를 쓰고 쉬도록 하세요."

ㄴ차장 : "야 언제 근로자의 날 쉰 적 있어?"

ㄷ기자 : "쉬고 싶은데 차장한테 조심스럽게 말해봐야 겠습니다."

ㄹ기자 : "노동절에도 노동하고 있을 shiho야."


우리 회사 사람들 얘기지만 어디 우리회사 뿐이랴. 노동절에 노동을 안하는 언론사는 거의 없다. 신문의날에도 신문을 만들기 위해 나온다. 창립기념일엔 특집을 만든다고 몇달 전부터 고생한다.

안다. 언론고시생 때부터 이럴 줄 알았다. 빨간 날 없이 일할 줄 알고도 들어왔다. 문제는 뭐냐. 노동인권에 소홀하고 근로기준법 등을 준수하지 않는 조직을 비판하는 언론사가 정작 자신들 기본 인식이 모자란다는 거다.

노동절? 공휴일 아니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이 규정하는 법정 유급휴일이다. 빨간 날이다. 연월차 쓰고라도 쉬고 싶어서 전자결재 시스템에 연월차를 입력하려고 해도 시스템이 막아서 안된다. 빨간 날에 연월차를 쓰고 쉬는 건 말이 안 되니까.

쉬는 게 디폴트다. 쉬는 게 원칙이고 나와서 일한 사람은 대체휴무를 쓰거나 상응하는 수당을 받아야 한다. 물론 우리회사도 시스템으로 그렇게 돼 있다. 안 그러면 법에 어긋나니까. 하지만 기자들이 그걸 모른다. 노동절에 쉬는 걸 미안해하고, 죄의식을 느낀다.

노동절 뿐인가. 연월차도 마찬가지다. 쓰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다들 제대로 쓰질 못해서 수십일씩 다음해로 이월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산업부 와서 격주로 금요일마다 연차를 내고 쉬고 있지만 아직도 21일이나 남았다. 언론사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심각한 곳은 연차 보상 수당도 받지 못한다.

몇 번이나 강조하지만 지키지 않는 것보다 인식을 못하는 게 더 심각한 문제다. 모르는데 어떻게 기사를 쓰나? 인식이 없는데 어떻게 노동인권을 조명하나?

하나만 더 꺼내볼까? 곧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작된다. 각 언론사는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나부터도 대기업이 먼저 주 40~52시간 근무제를 시험도입한다는 기사를 썼다.

그런데 기자 본인들은? 어디까지를 근무로 보느냐에 따라 하루에 16시간 일하는 셈이 될 때도 부지기수다. 매주 5일씩 근무하는 건 극히 일부다. 대체로 한주 걸러 주 6일씩 하면 감사하다.

정치부에 처음 갔을 때가 2015년 11월이었는데 총선이 있었던 2017년 4월까지 명절 빼고 주5일 근무한 건 딱 한주였다. 오전 7시 15분에 출근해서 늦으면 11시까지 일했다. 근데 일간지는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방송은 아예 특례 업종으로 지정됐고, 통신사처럼 실시간 처리해야 하는 회사는 업무 시간이 더 길다. 쉬는 날 집에서라도 언제든 노트북을 펼치고 기사를 써야 한다.

그럼에도 주 52시간 근무에 관해 아직 내부에서 논의조차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언론사가 부지기수다. 서로들 타사가 어떻게 하는지 눈치만 보고 있다. 답은 나와 있다. 사람을 더 뽑으면 된다.

하지만 언론사 살림살이는 점점 더 안 좋아져서 뽑던 수습도 안 뽑는 판이다. 각종 편법이 난무할 것 같다. 서류 상으로는 쉬고 있는데 실제로는 일하고 있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왜냐면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노동절, 연월차와 마찬가지다. 쉴 때 쉬지 않는 걸 당연시하고 어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저 위에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 기자질 할 때와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쉬는날 일한 대가로 주머니에 꽂히는 돈도 다르고, 보람도 다르다. 어찌 보면 시대 변화에 가장 민감해야 할 조직이 언론사인데 항상 가장 늦게 변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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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된다 아직 스팀이 10만원이 안 됐어!

ㅎㅎㅎㅎㅎㅎㅎ 스팀아 얼른 10만원 가즈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0만원 되는 그날이 빨리오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댓글 보다가 빵터졌네요 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ㅠㅠ

ㅋㅋㅋㅋㅋㅋㅋ 두분다 화이팅!

갑시다 가즈아!

쉬는 게 디폴트인데 쉬면 좋은 회사 다닌다고 축하받는 더러운 세상....

법정공휴일을 온전히 지킬수만 있어도 행복한 직장이네요 ㅠㅠ

👍🏻👍🏻👍🏻👍🏻

사람 부족하면 일을 줄이든지 사람을 더 뽑든지 해야할텐데 그냥 일을 떠넘겨버리니까요 ㅠㅠ

언론사가 '기사'로 멋지게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 세상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은 듯 합니다.

경쟁은 치열해지고
언론사간의 차별점도 점점 없어져가고...

예전엔 그래도 신문을 돈내고 구독이라도 했는데
요즘은 기사를 돈주고 본다는 생각은 더 안하는거 같아요...
슬픈 현실입니다. ㅠㅠ

소식은 가장 빨리 전하는 언론사가 변하는 건 가장 느리다니.. 조금 역설적으로 느껴집니다..

법으로 보장된 날도 쉬기 힘든게 현실이네요! 다행히 저는 쉬었답니다^^

저같아도 근무시간 같은거 안따지고 일하고 있습니다.. 아직 아랫목만 따끈하죠..ㅎㅎ

너무 좋은 포스팅이네요 팔로우 합니다~! :)

아직도 저희 아버지는 토요일날 왜 쉬는지 , 일주일에 40시간만 일한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십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살아오신 삶과 일이 동일시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재 아버지가 하고 계신 일이 1인 사업이기 때문인 점도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저희 아버지 세대만 해도 그런 인식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언론사의 경우에는 기사 작성을 위한 소재가 주 40시간에 맞춰서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는 점에서 그런 인식이 조금 옅지 않나 추측해보네요.

근로자의 날에도, 대체휴일에도 일하는 많은 사람들을 대변하는 글입니다ㅠㅠㅠ..

노동절날 부당노동행위 취재한다고 노동해야 하는 기자의 현실이 안타깝네요

오늘 한국이 노동절이었군요. 어쩐지 낮부터 글이 좀 많이 올라온다 했습니다. 기자분들 노동 시간이 긴건 알았는데 핵심을 집어주신 것 같네요.

"우리가 지키지 않는 데 어떻게 그것에 대해 기사를 쓴다는 말인가."

Shiho님이나 afineword님 같은 분들이 선배 기자가 되셔서 그런 문화를 선도해주셨으면 좋겠네요!

5월1일이 노동절입니다. 만국공통이죠

한국사회에서 흔히 회자되는 말이죠. 밖에선 민주주의,사회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안에선 지키지 않는다는....

이글이널리널리퍼졌으면좋겠습니다 진심으로요 저화요일날일한일인입니다 헤헤ㅜㅜㅋㅋ

주당 52시간 근무라는 것은 상징적인 정책이지, 현실적으로 저 근로시간 준수가 다 지켜질 것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겠지요. 그리고 현실적으로 기업체에서 일을 하는 것이 일이 밀리고 밀리면 근무시간이 훌쩍 넘어가는 것은 기본이지, 어떻게 시간을 저렇게 딱 맞출수 있을까요? 한국사회의 산업구조 전체가 그러한 틀에 이미 갇혀져 있는 상태인데,

그런 인식이 문제라는 얘깁니다.

한국이 너무 빠르게 발전한 것에 대한 부작용이 아닐까 싶어요.
세대가 바뀌기 전에 선진국을 넘볼 위치에 오르다보니...이런 간극은 시간이 답일것 같네요.. 안 그러면 바뀌기가 너무 어렵죠~

그렇군요.ㅡㅡ
전 쉬었답니다. 감사해야 겠네요.
디폴트로 쉴 수 있게 되길 빕니다.

연차 보상수당도 못받는 곳은 정말 일하기 힘들것같아요. 일을제대로 하려면 쉼도 필요한데.. 당연한것을 꼭 해야해? 라고 인식하는것 자체에서 문제가 시작돼는것같아요. 이런일이 더이상은 당연되지 안길 바랄뿐입니다..

노동절도 일하고 신문의 날도 일하고 창립기념일도 일하고... ㅠㅠ 요즘 언론사 사정이 그렇게 안 좋은가요?

사정이 좋은건 아니지만 사정과는 상관없다는... 다음날 휴간이 아닌 이상 전원 다는 못 쉽니다.

언론사의 고충이라고 봐야겟군요.
제가 다니는 직군에서만 저도 항상 불평을 하고 그랬었는데 시호님이 써주시는 글들을 보면서 사람 사는게 다 비슷하구나 이런 생각을 매번 합니다^^

작년 대선 때 휴일수당 역대 최고치를 받았어요.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그치만 저보다 통신사, 방송사 친구들 넘 고생ㅠ

알아주지도 않고 글재주도없는 건설업 종사자는 코박죽 하고 싶네요
언론종사자도 힘들군요.....

ㅠㅠ 저희 가족 중에서도 기자분 있는데 너무 힘들어하시더라구요 .. 시호님도 힘내세용

노동절.. 쉬어본 적이 언젠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다같이 좀 쉬고 다같이 좀 일했으면 좋겠어요 좀

ㅠㅠ고생이 많으십니다. 위로는 전혀 안되시겠지만 뭔가 위로해드리고싶네요. 어흐...ㅜㅜ 글만 읽어도 없던 피로도가 상승하는 느낌적인 느낌

흠 복지 국가 대빵이신 덴마크와 비교해보면
대체적으로 우리나라 기업들은 인력을 넉넉히 안 뽑는 듯 해요. 덴마크서 일할 때는 그냥 쉬고 싶으면 휴가를 내는 게 아니라 2~3주 전에 스케줄 조정으로 일을 뺐으니깐요?

그런데 기업이 가져야 할 인식 전에, 삶의 여유를 갖는 것보다 그냥 더 일해서 월급을 갖겠다 라는 노동자의 인식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자신이 쓰고 있는 기사와 다른 삶을 살고 있군요. 기자님들이...
항상 티비 뉴스나 인터넷 기사를 보면서 '빨빠르게 움직여주는' 것에만 고맙다고 생각했는데, 미안한 생각이 드네요.
그러게요. 답은 인력 증원인데... 내부 사정은 녹녹지 않다니...
생각이 많아지네요...

-눈치보지말고- 란 말만없었어도..

우리나라도 노동자들의 휴일에 대해서는 성역과 같이 되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노동절에 일하는 직종도 많다보니 상대적으로 우울해지죠..
스팀 10만원 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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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부족... 특히 윗사람들의 인식이 부족한게 크죠.. 현재보다 옛날엔 이랬다며 과거에 사시는 분들이 많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