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아닌 척]한 번 써 보는 군대이야기-(2)터틀배럭

in kr •  7 years ago 

나중에 알고 보니, 싸움 잘 할 것 같은 몸매의 형은 대대 신병교관이었다. 또 나중에 알고 보니, 대대 신병 교관은 부대에서 정기적으로 치르는 PT테스트에서 안정적으로 만점을 받아 'PT마스터'라는 칭호를 받은 병사 중에 똑똑하고 유식하고 성격 좋은 사람을 선발하는 거였다. PT테스트는 미군부대에 있는 체력검사였는데 2마일 런,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세 종목이다. 이 세 종목을 모두 만점 받으려면 약 3.2km를 12~13분 안에 뛰어야 하며,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각각 2분 안에 80개 해야 한다. 특히 이 세 종목 측정은 쉬는시간도 없이 연속으로 치러진다.

이 교관이 성격 좋고 체력 좋고 똑똑한, 지덕체를 두루 갖춘 훌륭한 사람이라는 게 결론이다. 그런데 왜 자꾸 우리한테 욕을 했는지 당시엔 알 수 없었다. 교관은 우리를 인솔해 카투사 물품을 보급하는 부대 같은 곳으로 데려갔다. 우리는 거기에서 6주 간의 훈련병 시절엔 구경도 못했던 고퀄의 군복과 프로스펙스 조깅화, 무려 면도크림 등 엄청난 보급품을 받았다. 그리고 거기 담당 병사와 이야기 하는 교관의 모습은 우리가 신병에서 풀릴 때까지 다시는 보지 못한 상냥한 모습이었다.

우리를 태운 미니버스는 자유로를 타고 북쪽으로, 북쪽으로 올라갔다. 교관의 명령에 따라 상방 15도를 향하고 있는 시선 저 앞에 '통일의 관문'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통일대교였다. 일반 차량은 거기서 군인의 안내에 따라 차를 유턴시켜서 돌아 내려가는데 우리가 탄 차는 바리케이드를 열고 그대로 북으로 올라갔다. 어수룩하게 땅거미가 내리는데 노란 조명을 밝힌 이상하게 생긴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외계에 온 듯한 낯설음을 느꼈다. 그런데 1년여 뒤, 외박에서 복귀하며 저 풍경이 내 집 같이 포근하게 느껴졌으니...

'캠프 보니파스'

2년 동안 생활할 부대의 이름이었다. 부대 이름에 관해서는 나중에 쓸 테다.

우리는 '터틀스배럭', 즉 거북이 막사라는 기이한 이름이 붙은 건물로 들어갔다. 거긴 대대신병 막사였다. 미군들은 신병을 거북이라고 부르나보다. 따블백이니 뭐니 짐을 잔뜩 든 채 건물로 들어가자마자 교관은 "신발색기들아 다 엎어"라고 낮게 말했다. 우린 들고있던 것들을 다 던지고 바닥에 엎드려 뻗쳤다. 그는 "하나"라고 말했다. 팔을 굽히라는 거다. 굽혔다. 그런데 "둘"을 안한다. 우리는 엎드려서 팔을 굽힌 채로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우리가 "쳐 빠져" 있으며, 그래서 "이빨을 보이며 쳐 웃었다"고 했다. "둘"을 한 뒤 머라머라 했는데 우리가 "예"라고 했더니, 그는 다시 "하나"를 외쳤다. 그 부대에서 "예"는 없다고 한다. "네, 알겠습니다"로 대답을 하란다. 머 그런 부대 고유의 말투를 알려주면서 그는 수없이 하나 둘을 외쳤다.

한참을 구른 뒤, 땀에 범벅이 됐다. 교관은 갑자기 저쪽에 차려 자세로 서 있던 뽀얀 추리닝 차림 병사들에게 "이 색기들 한국군 짬내 안나게 다 빨아"라고 했다. 우린 개처럼 구르느라 거기 그 추리닝들이 서 있는지도 몰랐는데, 우리보다 조금 먼저 터틀스배럭에 들어온 한 기수 위 신병들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입고, 들고 온 의류를 싹 다 벗겨서 세탁기에 넣었다. 그리고 우린 머리부터 발끝까지 미군 제품으로 샤워를 했다. 빤쓰부터 추리닝까지 전부 미군제품으로 갈아입었다. 처음 터틀스배럭에 들어갔을 때 맡았던 외국냄새가 우리한테도 나는 것 같았다.

터틀스배럭 생활은 정말 힘들었다. 제대할 때까지 따라갈 신상 카드를 쓰고, 출입증을 만들고, 부대 시설에 익숙해지고 하는 것들을 제외하면 전부 체력단련이었다. 매일 2마일 시간을 재고, 뻑하면 윗몸일으키기와 팔굽혀펴기를 했다. 다른 운동도 엄청 시켰다. 한 번은 어디로 간다 말도 안하고 달리기를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6마일이었다. 6마일을 슬슬 뛰는 게 아니고 무려 PT마스터께서 뒤쳐지는 신병을 발로 차 가며 빨리 뛰도록 채찍질 하는 달리기였다. 앞서 가던 신병들은 뒤쳐진 신병이 따라올 때까지 팔굽혀펴기를 하는 등 생지옥의 레이스였다. 어떻게 완주했는지도 모르게 완주를 한 뒤 저녁을 먹으라고 식당에 풀어놨는데, 된장 밥이 넘어갈리가 없었다. 동기 하나는 허겁지겁 입에 넣은 것을 도로 게워내기 위해 화장실로 튀어갔다.

6마일을 뛰고 나서 전화찬스를 줬다. 집에 한 통, 당시 여친에게 한 통 했는데 집에 했을 때는 목소리 좋은 척 하느라 진땀을 뺐다. 여친한테 전화해서 개힘들어 죽을 뻔 했다는 얘기를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끊고 나서 생각해 보니 걔 생일이었다. 생일 축하한단 말을 안 해줬다며 편지인지 이메일인지 뭘 보내서 엄청 머라고 했다. 그래 죽을 죄를 지었다. 그래서 선배랑 바람피웠냐.

대대신병 생활은 그랬다. 거기가 지옥인 줄 알았는데 다음 코스인 소대신병으로 가니까 대대신병은 천국이었다. 소대신병이 진정한 지옥인 줄 알았는데 신병이 풀리고 나니 소대신병도 천국이었다.

나는 이병이 끝날 때 쯤부터 입에도 안 댔던 담배를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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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의 핵심내용에 친절하게 줄까지 쳐주시다니... ㅜㅜ

핵심 내용 아닙니다!!! (아내님 정말 핵심내용 아닙니다)

그래서 선배랑 바람피웠냐


ㅋㅋㅋ . . . . 이웃님덜~~~~📣📯🔊📢

이런건 위로 위로~ㅋㅋㅋㅋ

아악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핵심 내용 잘 보고 갑니다~~~~~ ㅎㅎㅎㅎ

이거 점점 일이 커지는군요 ㅋㅋㅋ

I enjoyed reading your post. There is a lot of good stuff.

군시절은 누구에게나 짠~ 하네요!

그렇죠... 짠내나죠...

ㅎㅎ 네! 어찌보면 삶 그자체가 짠내나는 것일수도 있지만...
오랜만에 군대 이야기나 포스팅 해볼까요? ㅋㅋㅋ

기대하겠습니다! ㅋㅋㅋ

아내분이 보시면 안되겠는데요???ㅋㅋㅋ

저의 아내는 관대해서 이 글을 보더라도 허허허 웃으며 넘겨 줄 겁니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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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보고갑니다

고맙습니다!

알고보니 시호님의 군생활은 천국의 연속이었네요. ㅋㅋㅋㅋ
다만 지나고 나서야 알았을 뿐. ㅋㅋㅋ
앞선 군생활을 천국으로 만들어 버리는 놀라운 다음 이야기도 기대하겠습니다. :)

ㅋㅋㅋㅋ 다음 행선지가 레알 생지옥이었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ㅋㅋㅋ